내·외국인 존중 어우러진 ‘작은 지구촌’

조재영 기자 2025. 9. 2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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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반월·시화 산단 조성
이주 노동자 자연스럽게 밀집해
2009년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
이색적인 먹거리·볼거리 다양
시, 관광명소 육성·행사도 다채
지역협의회 이주민 참여해 화합

[기획] 특화거리, 어디로 가야 하나

(5) 안산에서 하는 세계여행, 다문화특구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마을 특구. 다양한 언어로 쓰인 간판이 눈길이 끈다. /조재영 기자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있는 '안산 다문화거리'로 들어서면 마치 한국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가게 간판부터 이국적이다. 한자, 영어, 베트남어, 아랍어, 러시아어로 쓰인 간판이 한글보다 많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물건을 사러 온 사람도 외국인이 더 많다.

다문화거리 초입 한 채소가게. 직원 수 7~8명 정도로 꽤 규모가 큰 가게다. 직원들이 모두 중국어를 하고, 물건을 사러 온 손님도 모두 중국어를 한다. 이 주변 가게들이 대부분 그렇다. 마치 중국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대표는 "나는 조선족인데 여기서 장사한지 4년 정도 됐다"라며 "여기는 중국 한족이나 조선족이 많아서 다른 지역보다 마음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 반대편을 가리키며 "저쪽에는 구소련 국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곳에서 벗어나 거리를 따라 조금 더 이동하면 동남아시아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적 사람들도 보인다.
안산 다문화특구에 있는 네팔 음식 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는 네팔 전통 음식. /조재영 기자

대부분 주말에는 차량이 얽혀 복잡하지만, 주중에는 다른 여느 중소도시처럼 한산하다. 주말 북적이는 이유는 평일 인근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말에 이곳으로 모여들고, 관광객까지 찾아오기 때문이다.

네팔에서 왔다는 한 30대는 "주중에는 공장에서 일하는데 오늘은 자전거를 고치러 왔다"라며 "네팔 식당이 5~6개 있어서 주말에 여기서 식사하고 친구들도 만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번 돈으로 네팔 고향에 집을 새로 짓고, 땅도 많이 샀다고 자랑을 했다.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 다문화 밀집 지역이다. 마치 한국 속 작은 지구촌을 연상케 한다.

안산 다문화거리의 역사는 1980년대 안산에 조성된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에서 시작된다. 당시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허가했다. 원곡동은 안산이 계획도시로 개발될 때 가장 먼저 들어선 곳이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구도심.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업단지와 가까우면서도 비교적 주거비가 싼 이곳에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문화 촌이 되었다.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마을특구 일대. 주거비가 싼 구도심 지역에 외국인노동자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다문화마을이 형성됐다. /조재영 기자

초기에는 주로 중국 조선족과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자리를 잡았고, 이들을 겨냥한 식료품점과 식당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다문화거리가 시작됐다.

이곳은 2009년 다문화음식 특화거리,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됐다. 그러면서 내·외국인이 상호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안산'이라는 다문화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2024년 1월 기준, 안산시 전체 인구는 72만 4000여 명이고 이중 13.2%에 해당하는 9만 6300여 명(115개 국)이 외국인 주민이다. 그 중에서도 원곡동 다문화특구는 외국인 주민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전체 주민 2만 191명(49개 국) 중 1만 8014명(89.2%)이 이주민이다. 국가별로는 중국(한국계 포함)이 1만 2820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우즈베키스탄(1723명), 러시아(한국계 포함) 1484명, 카자흐스탄 663명, 네팔 190명, 인도네시아 174명, 베트남 111명, 키르기즈스탄 107명, 우크라이나 102명, 기타 640명 등이다.

다문화특구에서는 각국 음식을 맛볼 수 있고, 현지 식재료도 구입할 수 있다. 중국의 꼬치와 양고기 요리, 연변 순대, 태국 똠얌꿍, 베트남 쌀국수, 네팔의 난과 커리, 우즈베키스탄 볶음밥 등 각국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식당에는 현지에서 온 조리사들이 직접 요리를 한다. 이는 다문화특구로 지정되고서 안산시가 '고용추천서'를 발급해 완화한 기준으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 가능했다.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외국인주민지원본부와 외국인상담센터, 외국인미디어센터 등 외국인 관련 기관이 집중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재영 기자

또, 각국 현지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와 식재료를 판매하는 상점도 많아 외국인 거주자들에게는 생활의 일부가 되고, 한국인 관광객에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성남에서 왔다는 20대 커플은 "오자 마자 길거리에서 파는 양꼬치부터 먹었는데 맛있었다"라며 "마치 외국에 온 것 같다. 사람, 간판이 모두 외국처럼 느끼게 해서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안산시는 다문화거리를 관광 명소로 육성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65일 차없는 거리로 지정 운영하고 있고, 최근에는 '경기도 우수 관광테마골목 사업'에 선정돼 인프라도 확충할 계획이다.

시는 '다문화 미식 투어'와 같은 관광 상품도 운영하는 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싶은 관광객, 특히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다문화를 주제로 한 축제와 행사도 이 곳의 특징이다. 매년 5월 '세계인의 날(5월 20일)'을 기념해 세계인 어울림 한마당 축제를 연다. 외국인 주민과 내국인이 함께 참여해 각국 전통문화, 의상, 음식 등을 체험하고 교류하는 데, 화려한 퍼레이드와 공연이 단연 볼거리다.
올해 5월에 열린 안산 세계인 어울림 한마당 축제에서 각국을 대표한 어린이들과 이민근 시장 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안산시

안산국제거리극축제도 열리는데 세계 각국의 거리 예술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원곡동 꼬치축제' 등 각 국가별 외국인공동체를 위한 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지금은 우리나라 다문화의 상징처럼 자리를 잡아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과거에는 사건 사고가 잦은 지역이었다. 인근 주민들이 자녀들에게 원곡동에는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을 정도였다.

20여 년 동안 식당을 운영한 70대 할머니는 "10여 년 전만 해도 사건이 많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끼리 패싸움을 하기도 했다. 무서운 곳이었다. 지인들에게도 놀러오라고 권할 만한 곳이 못됐다"라며 "하지만 지금은 예전같은 사건·사고는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요즘은 단원경찰서가 주관해 매주 토요일마다 2시간씩 외국인자율방범대가 순찰을 하고 있다. 또 치안 문제가 생기면 외국인 간, 또는 외국인과 경찰 간 의사소통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통역인력풀을 운영하고 있다. 또 캄보디아, 베트남 출신 귀화인을 경찰로 채용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문화 차이에서 빚어지는 범죄를 예방하는 교육도 하고 있다.
안산시가 외국인주민지원본부 옆에 설치한 다문화마을특구 상징물. /조재영 기자

이주민 주민들을 위한 외국인주민지원본부도 있는 데, 공무원이 근무하는 정식 기구다.

외국인주민지원본부 관계자는 "각종 지역 협의회에 내국인과 외국인 대표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해 의견을 제시하고 사업 방향을 정하는 식으로 화합을 도모하는데, 이런 부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우리나라 다문화의 상징적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재영 기자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안산 다문화마을특구 중 특화거리로 지정된 다문화음식거리는 365일 차없는 거리로 운영된다. 차량 진입 금지를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조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