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걷고 파고 맛보고 즐기는 물고기

이영완 기자 2024. 9. 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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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로 모랫바닥 걷는 성대과 물고기
일부 종은 모래 파서 숨은 먹이 잡아
모래 파는 종은 다리에 미각 수용체 가져
촉감 신경 먼저 진화, 미각은 나중에 발달
다리로 모랫바닥을 걸어다니고 모래도 파는 북방성대(학명 Prionotus carolinus). 다리에 미각 수용체가 있어 모래 밑에 숨은 먹이도 찾아낸다./Anik Grearson

한 제약사가 잇몸 치료제 광고에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라는 카피를 사용해 큰 인기를 얻었다. 잇몸이 튼튼하면 음식을 즐기는 데 지장이 없다는 의미다. 바다 밑바닥에 사는 물고기는 ‘걷고 파고 맛보고 즐기고’다. 다리 모양의 부속기관으로 해저에서 걷다가 땅을 파서 먹이를 찾아 잡는다.

미국 하버드대 분자세포생물학과의 니컬러스 벨로노(Nicholas Bellono) 교수와 스탠퍼드대 의대의 데이비드 킹즐리(David Kingsley) 교수 연구진은 27일 “바다 밑바닥을 걸어 다니는 물고기의 다리는 보행뿐 아니라 해저를 맛보기 위한 용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북방성대(학명 Prionotus carolinus)가 걸어 다니다가 모래에 묻힌 먹이를 찾기 위해 다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성댓과 물고기의 유전자도 해독해 다리의 진화 역사를 밝혀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논문 두 편으로 발표됐다.

◇다리로 걷고 맛도 느껴

성댓과(科) 물고기는 다리 모양의 부속기관으로 바다 밑바닥을 걸어 다닌다. 영어로는 바다울새(sea robin)라고 하는데 우리말이나 영어 이름 모두 물 밖으로 나오면 꾸륵꾸륵하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붙여졌다.

성대는 여러 동물을 합친 것처럼 생김새가 독특하다. 눈은 개구리처럼 튀어나왔고, 지느러미는 새의 날개와 비슷하다. 게다가 물고기에는 없는 다리도 있다. 다리는 가슴지느러미의 연장선으로 양쪽에 세 개씩 있다. 스탠퍼드대 의대의 발생학자인 킹즐리 교수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이상하고 멋진 물고기”라고 말했다.

다리가 달린 성댓과 물고기(Prionotus scitulus)./Anik Grearson

성대는 헤엄과 걷기를 번갈아 했다. 먹이가 보이지 않아도 모래를 파서 홍합 같은 조개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성대의 다리가 기계적 자극과 함께 화학적 자극에도 민감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성댓과 물고기가 홍합 분쇄물이나 여과된 홍합 추출물, 심지어 단일 아미노산까지 감지하고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물고기의 다리 끝을 조사해보니 혀에 있는 것과 같은 유두 모양의 돌기가 있었다. 유두는 촉각에 민감한 신경세포뿐만 아니라 미각 수용체도 있었다. 성대는 다리로 먹잇감의 맛을 감지해 모래를 파고 찾아냈다.

킹즐리 교수는 “다리에 있는 감각 구조가 성댓과 물고기마다 얼마나 다른지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줄무늬성대(Prionotus evolans)는 유두에 촉감 신경이 있지만 미각 수용체는 없었다. 이런 물고기는 모래를 파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촉감 신경과 미각 수용체가 다 있는 북방성대는 말 그대로 걷고 맛보고 땅을 파서 먹이를 잡아 즐겼다. 모래를 파는 다리는 삽 모양이었다. 모래를 파지 않는 성대의 다리는 막대기처럼 생겼다.

◇촉각과 미각의 진화도 밝혀

연구진은 두 번째 연구에서는 이 물고기의 독특한 다리의 유전적 기초를 더 자세히 조사했다. 전 세계 성대 13종의 유전자를 비교하고 진화 가계도를 그렸다. 그 결과 걷기 위한 다리가 먼저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각 기관은 일부 종의 다리에서 나중에 진화했다.

그래픽=정서희

성댓과 물고기들의 유전자를 모두 해독한 결과, 성대의 감각 다리 발달의 주요 결정 요인은 TBX3A라는 전사 인자 유전자였다. 연구진은 유전자 DNA를 잘라내는 효소 복합체인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로 북방성대의 TBX3A 유전자를 돌연변이시키자 유두와 모래를 파서 먹이를 찾는 능력을 잃었다.

Tbx3a는 유전자의 기능을 조절하는 전사인자 단백질을 만든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가 다리 발달과 미각에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확한 경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앞으로 유전자 가위로 성대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실험을 하면 더 많은 사실을 알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콜로라도대 의대의 발생학자인 토마스 핑거( Thomas Finger) 교수는 이날 네이처지에 “정말 멋지고 중요한 발견”이라며 “이번 연구는 기존 유전자 세트를 조정해 새로운 형질을 형성함으로써 그 능력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Current Biology(2024), DOI: https://doi/org/10.1016/j.cub.2024.08.014

Current Biology(2024), DOI: https://doi/org/10.1016/j.cub.2024.08.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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