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8세대 5시리즈의 순수 전기차 버전인 i5. 지난달 우리나라에 전 세계 최초로 들어오며 소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인증 주행거리가 의문이었다. 국내 기준 ‘384㎞’로, 배터리 용량 대비 수치가 꽤 낮다. 경쟁자와 비교해도 아쉬운 숫자다. 그래서 테스트에 나섰다. i5 eDrive40을 타고 서울-가평을 왕복하며 ‘실제 주행거리’를 알아봤다.
글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사진 BMW, 서동현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파르나스타워에 기자들이 모였다. 장소 선정의 이유는 지난 8월에 날아온 보도자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지하 4층 주차장에 자리한 ‘BMW 차징 스테이션’ 때문이다. BMW 코리아가 국내에 보급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 시설로, 앞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와 파라다이스 시티, 경북 힐튼호텔 경주에도 설치를 마쳤다.
덧붙이자면, BMW 코리아는 내년에 누적 충전기 보급 대수를 2,100대 규모까지 늘릴 계획이다. 올해까지 보급 대수(약 1,100대)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핵심은 BMW나 MINI가 아닌 다른 전기차들도 차징 스테이션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단순히 전기차를 보급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고, 충전기 부족 현상 해결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자 충전을 마친 i5가 우리를 반겼다. 시승차 트림은 i5 eDrive40. 뒤 차축에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0.8㎏·m를 내는 전기 모터 1개를 얹었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정확히 6초. 최고속도는 시속 193㎞다. 리튬이온 배터리 용량은 i5 M60과 같은 81.2㎾h로 삼성 SDI가 납품한다. 주행거리는 복합, 도심, 고속 각각 384, 392, 375㎞다.
트림에 따른 5시리즈의 명확한 인상 차이
신형 5시리즈의 실물을 처음 마주한 이날, 예상보다 훤칠하고 강렬한 외모에 놀랐다. 시승차에 적용한 ‘M 스포츠 프로’ 전용 디자인 때문이다. 얼마 전 후배 기자가 시승한 기본형 530i의 얼굴은 다소 밋밋했다. 공기 통로를 최소화한 매끄러운 범퍼와 19인치 휠은 역동성보다 차분함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M 스포츠’ 옵션을 선택하면 우락부락한 앞뒤 범퍼와 M 에어로다이내믹 투톤 휠, 블랙 윈도우 몰딩, 리어 스포일러가 들어간다. 최상위 트림 M 스포츠 프로는 블랙 키드니 그릴 테두리 및 헤드램프, 20인치 휠, 레드 브레이크 캘리퍼로 장식했다. 그릴 테두리를 밝게 빛내는 ‘아이코닉 글로우’도 기본 사양.
반면 인테리어 차이는 아주 적다. 기본형이 2-스포크 스티어링 휠과 우드트림으로 실내를 꾸몄다면, M 스포츠 프로는 전용 3-스포크 스티어링 휠과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으로 고성능 분위기를 냈다. 12.3인치 계기판과 14.9인치 인포테인먼트 화면을 엮은 커브드 디스플레이와 은은하게 빛나는 크리스탈 인터랙션 바, 크리스탈 기어노브는 똑같이 넣었다.
인증 수치를 손쉽게 뛰어넘는 실제 주행거리
이날 시승 코스는 삼성동에서 경기도 가평 아난티 코드 리조트를 왕복하는 길. 길이는 약 66㎞로 고속도로와 국도를 골고루 지나는 구간이다. 한 대에 두 개 매체 기자들이 탑승,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을 때 누가 가장 높은 전비를 기록했는지 맞대보기로 했다.
출발 직후 배터리 잔량은 98%, 잔여 주행거리는 441㎞였다. 충전을 막 끝낸 뒤엔 99%와 451㎞를 띄웠는데, 우리를 기다리면서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당시 외부 온도는 영상 6℃. 에어컨은 23℃로 맞췄다. 주행모드를 기본으로 설정하고 회생제동은 ‘적응식’으로 맞췄다. 앞 차와의 거리나 신호를 감지해 회생제동 강도를 실시간으로 바꾸는 기능이다.
초반 20분은 빽빽한 시내에 갇혀있었다. 회생제동을 자주 반복한 탓인지, 4.0㎞/㎾h로 시작한 평균 전비는 순식간에 4.5를 넘어 5㎞/㎾h에 도달했다. 이미 복합 전비인 4.1㎞/㎾h를 가볍게 넘어섰다. 이어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팔당대교에 다다를 때까지도 전비는 미세하게 올라갔다. 똑똑한 적응식 회생제동 시스템 덕분에 발목에 힘을 주지 않고도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서도 전비는 쭉쭉 올랐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시속 100㎞로 설정하고 유유자적 달리다 보니, 어느새 평균 전비는 6㎞/㎾h를 돌파했다. 이는 낮은 공기저항계수의 영향도 있다. 각진 외모와 달리 i5 eDrive40의 공기저항계수는 ‘Cd 0.23’에 불과하다. 고성능 버전 i5 M60 xDrive(Cd 0.25) 및 내연기관 모델인 520i·520d(Cd 0.24)과 비교해도 가장 낮다.
그런데 막판에 난관을 마주했다. 전비에 초점 맞춘 시승이라고 들었는데, 하필이면 내비게이션이 중미산 굽잇길로 안내했다. ‘배터리를 아낄까, 신나게 타볼까...’ 나는 고민 끝에 손맛을 즐겨보기로 했다. 최소한의 코너링 실력을 느낄 만큼만. 그렇게 이리저리 운전대를 돌리다 보니,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전비는 4.1㎞/㎾h로 뚝 떨어졌다. 이후 내리막길 회생제동에 의존해 전비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 총 주행거리는 66.8㎞며, 전비는 5.0㎞/㎾h를 기록했다. 굽잇길에서 욕심을 참지 못해 최고의 효율은 내지 못했다. 시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승한 기자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다행히 복귀길 내내 부드럽게 달린 결과, 우리 시승차는 최종 전비 ‘6.0㎞/㎾h’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성인 남성 3명이 탑승한 채 복합 전비의 약 150%를 끌어낸 셈이다. 하지만 이 기록은 세 대 중에서 꼴찌였다. 나머지 두 대는 전력을 알뜰살뜰하게 아껴 6.5, 7.5㎞/㎾h를 달성했다. 각 전비에 배터리 용량을 곱하면 527.8, 609㎞가 나온다.
이처럼 i5는 국내 인증거리를 손쉽게 넘어설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실제 전비를 나타냈다. 여기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우리나라 판매를 위해 인증용 i5를 들여왔을 때, 실제 판매 사양이 아닌 21인치 휠 모델을 가져왔다. 보통 휠의 직경과 무게는 비례하므로 직경이 클수록 주행거리는 내려간다. 따라서 384㎞의 복합 인증거리는 꽤 보수적인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서스펜션으로 성격 확 바꾸는 신형 5시리즈
전비도 전비지만, i5의 주행 능력도 인상 깊었다. 사실 ‘이전보다 부드러워진 5시리즈’라는 평가를 접했을 땐 내심 아쉬웠다. 동급에서 가장 재미있는 핸들링 성능으로 뚜렷한 정체성을 자랑했던 5시리즈였으니까. 그러나 직접 몰아본 i5는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탄탄한 주행 질감을 뽐냈다.
비결은 ‘M 스포츠 서스펜션’이었다. 일반 5시리즈의 하체에는 평범한 댐퍼가, M 스포츠 패키지 모델에는 감쇠력을 바꿀 수 있는 전자제어식 댐퍼가 들어간다. 기본형 5시리즈를 타본 후배 기자의 말에 따르면, M 스포츠 서스펜션 덕분에 요철을 넘을 때 앞뒤로 출렁이는 느낌이 분명히 적다고 한다. 코너에서 차체가 좌우로 기우는 현상도 마찬가지.
내연기관 5시리즈보다 약 350~410㎏ 묵직한 공차중량도 안정감을 더했다. 무게감 적당한 운전대까지 더하니 의심할 여지 없는 BMW다. E-세그먼트 세단답게 조향 감각이 아주 날카롭진 않다. 대신 정직하고 명확하다. 시선과 운전대 각도, 차의 진행 방향이 곧장 맞아떨어진다. 시트 포지션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두 가지 파워트레인 탑재를 고려해 배터리를 최대한 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닥이 한껏 올라온 제네시스 G80 전기차와 비교하면 확 와닿는다.
배터리로 인한 추가 하중과 밸런스 변화는 ‘에어 서스펜션’으로 보완했다. 등급에 상관없이 i5 모든 트림 뒤 차축에 들어간다. 노면을 다독이며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확보하다가도, 본격적으로 달릴 땐 누구보다 듬직하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느낌도 수준급이다. 불필요한 여진을 억제하면서 깔끔하고 담백하게 달린다.
결론적으로 신형 5시리즈의 나긋나긋함을 나쁘게만 볼 필요가 없었다. 안락한 승차감을 원하면 기본 모델을, 이전 세대의 스포티함을 추구한다면 M 스포츠 모델을 고르면 된다. 소비자층의 폭을 확장하기 위한 BMW의 전략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100% 장점뿐인 시승은 아니었다. 순정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 방식은 조금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진행 차로를 알리는 화살표가 너무 작고, 고속도로를 빠져나갈 때도 구체적인 보조 화면을 띄우지 않는다. 도어트림과 운전대, 방향지시등 레버 등 일부 플라스틱 부품은 저렴한 느낌이 강하다. 1억 원 넘는 프리미엄 세단임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시승으로 i5 eDrive40의 실주행거리는 물론, 달리기 실력까지 고루 알아볼 수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400㎞ 미만 인증거리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 출력에 심취해 가속 페달을 거칠게 다루지만 않는다면 장거리도 충분히 운행할 수 있다. 운전 스타일에 따른 두 가지 하체도 마련해 선택지도 넓다.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