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 줄 알았다. 신축 빌라 전세 계약 후 벌어진 일
부동산 전세 사기 기승
부동산 시장이 폭풍 전야다. 다양한 피해 사례가 나올 조점이다. 특히 ‘갭투자’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보증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까지 생기고 있다. 최근 전세 시장을 점검했다.
◇전세가율 100% 넘는 곳도
수도권 빌라 밀집 지역일수록 ‘깡통 전세’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깡통 전세는 매매가격이 전셋값과 비슷해지면서, 세입자가 계약 만료 후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생긴 전셋집을 뜻한다. 통상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이80%를 넘으면 깡통 전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3개월을 기준으로 전국 지역별 빌라 전세가율 자료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전국 평균은 83.1%로 집계됐다. 빌라의 전세금액이 집값의 평균 83.1%에 달한다는 뜻이다.
시군구 별로 수도권은 경기 화성(107.7%), 안산 상록구(94.6%), 고양 일산동구(93.8%), 인천 미추홀구(93.3%) 순으로 전세가율이 높았다. 전셋값이 집값에 비등해지거나 심지어 높은 것이다.
전세가율이 높은 집들은 집들은 전세금을 떼이는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고가 10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10월 전세금 반환 보증 사고 건수는 704건으로 집계됐다. 9월 523건과 비교해 35% 급증한 것이다. 세입자들이 받지 못한 보증금 액수는 1526억원으로, 9월 1098억원과 비교해 39% 급증했다. 건수와 사고액 모두HUG가 보증 상품을 출시한 2013년 9월 이후 역대 최대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특히 신축 빌라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깔끔한 외관과 잘 갖춰진 옵션에 현혹되기 쉬운데, 그만큼 높은 전셋값을 받아 깡통전세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아예 사기 의도로 깡통전세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신축 빌라는 거래 사례가 적어 시세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분양업자가 일단 높은 값에 전세입자를 구한 후 그보다 싼 가격에 팔아버리는 식의 사기 사례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전세 사기 범정부 조사
문제가 심각해지자 국토교통부는 최근 전세 사기로 의심되는 거래 106건을 적발해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 사례 687건 중 피해자가 다수이거나, 여러 사람과 공모해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건들이다.
전세 사기 의심 거래에 연루된 법인은 10곳이며, 혐의자는 42명으로 조사됐다. 임대인(25명)뿐 아니라 공인중개사(6명)와 건축주(3명)도 전세 사기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 지역별로는 서울이 52.8%로 가장 많았고, 인천(34.9%), 경기(11.3%)가 그 뒤를 이었다. 수사 의뢰 대상에는 빌라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숨진 이른바 ‘빌라왕’ 관련 사례도 16건 포함됐다고 한다.
피해자는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30대(50.9%)와 20대(17.9%) 청년층이 대다수였다. 피해액은 171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조직적 사기 기승
사례를 보면 기가 막힌다. 40대 임대업자 3명은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며 서울 소재 빌라 9채를 사들였다. 전세 보증금으로 모두 매매 가격 이상을 받았다. 자기 돈은 한 푼 들이지 않고 빌라를 취득한 셈이다.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다.
이 계약이 계속 유지되려면 같은 전세 보증금으로 다음 세입자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침체기에 가능할 리 없다. 결국 일당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법인(페이퍼 컴퍼니)에 빌라를 떠넘긴 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했다. 조직적으로 공모한 전세 사기인 것이다.
또 서울에서 19가구 규모 빌라를 건축한 A씨는 브로커와 결탁해 세입자들에게 이사비를 지원한다고 꾀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했다. 이후 건물을 통째로 소득과 재산이 전혀 없는 제3자에게 넘겼다. 결국 세입자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됐다.
이처럼 전세 사기는 거래가 적어 정확한 시세를 확인하기 어려운 신축 빌라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임대차 계약이 만료된 뒤에야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증금은 이미 일당이 나눠 가진 상태고, 빌라를 경매에 넘겨도 보증금이 집값보다 높아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체납 세금이 있는 경우엔 1순위 채권자에서도 밀려나게 된다.
전세 사기를 피하려면 세입자 스스로 주변 시세를 확인하는 등 발품을 파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이나 인근 다른 중개사무소를 통해 주변의 전세 시세를 따져보고,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거나 임대인의 신원이 불확실하다면 계약을 피하는 것이다. 가급적 전세보다는 보증금이 작은 반전세나 월세로 하는 게 좋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 계약 전 주변 시세나 권리 관계를 꼼꼼히 따져보고 불안한 부분이 있으면 보증금을 낮추거나 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게 좋다”고 했다.
/박유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