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진짜 돈밖에 모를까
[똑똑! 한국사회]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출판인
40년 전 의대에 들어갔다. 어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돈 잘 벌겠네!” 갑자기 부모의 생계까지 책임지게 되어 교수 되기를 포기하고 개원했을 때도 주변의 반응은 똑같았다. “돈 억수로 버시겠네요!” 24년 전 의약분업 때 파업 투쟁에 동참했다. 햇병아리 개원의의 눈에 의료 현장은 엉망이었다. 보장성, 접근성, 의료 정의, 과학과 비과학 등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었다. 그중 단 하나도 제대로 된 담론의 장에 오르지 못했다. 여론은 오직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돈밖에 모르는 의사들이 밥그릇 지키려고 저런다!” 언론은 대중의 구미에 맞추기 바빴고, 정부는 은근히 그걸 부추겼다. 이성적인 분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뒤로 의료 현장은 계속 황폐해졌다. 급기야 필수의료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국민은 불안하고 화가 나 있지만, 정부는 무책임하고 무관심했다. 의사들은 무기력하고 불행한데, 의대 경쟁률은 끝없이 치솟았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의사를 “돈밖에 모르는 나쁜 놈”이라고 보는 태도다. 마치 변방 너머에 도사린 야만족처럼, 태초부터 존재해온 적대적 타자로 보는 것 같다.
의료도, 의사도 우리가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생로병사라는 삶의 국면에서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쳐 의사를 만든다. 특별히 돈을 좋아하는 사람, 인성이 못된 사람만 가려서 의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대에 들어간 순간부터 주변에서는 그를 “돈밖에 모를 것”이라고 단정한다. 모든 의사가 결국 그렇게 된다면 그건 사람 탓일까, 제도 탓일까?
여기 용한 마법사가 있다. 지팡이를 한번 휘두르자 의사들은 한명도 남김없이 화성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 가장 이타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들을 추천받아 그들을 의사로 만든다. 그러면 의사의 문제가, 의료의 문제가 해결될까? 아닐 것이다. 나는 어떤 집단이든 10·80·10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본다. 10퍼센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키고 정도를 걷는다. 10퍼센트는 자신의 이익밖에 모른다. 나머지 80퍼센트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 사회의 기풍이 바르고 제도가 합리적이라면 좋은 쪽으로 행동하고, 반대라면 그릇된 쪽으로 기운다. 의사든, 법조인이든, 교사든, 상인이든 마찬가지다.
의사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가 불의한 집단을 응징하자는 구호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좋든 싫든 의사는 의료 전문가다. 또한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안다. 그러니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의사’라는 단일 집단은 없다. 개원의와 의대 교수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같은 개원의라도 내과의사와 안과의사의 입장은 정반대일 수 있다.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고강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는 말할 것도 없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모순을 찾을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필수의료가 문제라고 하니 당장 내년 의대 정원을 우수리 없이 2000명 늘리겠단다. 논리도 근거도 없다. 교육은 누가 하나? 교수를 1000명 증원한단다. 의대 교수를 연탄처럼 공장에서 찍어낼 모양이다. 전공의들이 반발해 사직하면서 크든 작든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표면적으로는 필수의료와 의대 정원 문제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에는 그간 쌓여온 의료 현장의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충심이 깃들어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의협은 소통 전문가를 모셔서라도 의료의 모순을 차근차근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정부는 어떤 식으로 필수의료를 확충할 것인지 명확한 논리와 근거로 국민과 의사를 설득해야 한다. 국민은 이 국면이 선악을 가리는 장이 아니라, 모두 안심하고 의료 혜택을 누릴 방법을 찾는 과정임을 이해해야 한다. 의사를 “돈밖에 모르는 나쁜 놈”으로 몰아붙이는 데 휩쓸려서는 안 된다. 악당은 응징했는데 의료는 그대로라면 우리 사회가 치른 희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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