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내리치며 폭발 왜? 이정후, 홈런 3개 잃었지만 슈퍼캐치로 다이나믹 플레이어 입증
이정후(25, 샌프란시스코)가 그라운드를 내리치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뛸 당시에도 좀처럼 보지 못했던 장면. 슈퍼캐치로 경기 아쉬움을 모두 털어내며 다이나믹 플레이어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정후는 3일(한국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 원정경기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 4타수 무안타 기록했다. 시즌 타율은 0.250으로 내려갔다. 보스턴 3연전서 3일 연속 잘 맞은 홈런성 타구가 구장 특성상 외야 뜬공으로 잡힌 아쉬운 상황이 연출됐다.
3연전 내내 경기별로 가장 멀리 뻗은 타구를 계속해서 날리고도 12타수 1안타에 그친 아쉬운 상황. 거기다 3일 경기에선 아쉬운 수비 실책이 나온 것을 압도적인 슈퍼캐치를 통해 스스로 만회했다. 그런 복잡한 상황이 겹쳐서일까, 좀처럼 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이정후답지 않게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강하게 그라운드를 내리치며 쌓였던 감정을 털어낸 그다.
1회 말 첫 타석에 들어선 이정후는 상대 선발 조시 윈코우스키의 초구 96.4마일 싱커를 강타해 우측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 속도 103마일(165.7km) 발사각도 29도의 배럴(barrel) 타구를 날렸다.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타구 속도 98마일(약 157.8㎞) 이상이면서 발사각도가 26~30도 사이에 형성되는 타구는 가장 이상적인 장타가 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기대 타율이 5할이 넘고 장타율은 1.500인 타구를 뜻하는데, 한 마디로 홈런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타구들의 통계 수치가 이에 해당한다. 이정후의 초구 타구 역시 정확히 배럴 타구의 영역에 속했다.
그러나 상대 중견수 제이렌 듀란이 보스턴의 펜웨이파크 가장 깊은 코스에서 잡아냈다. 비거리는 무려 400피트(121.9m)가 나왔다 이날 경기 양 팀 타자들이 때린 타구 중 제일 먼 거리를 날아갔다. 홈구장 오라클 파크를 비롯한 10개 구장에서 담장을 넘어갔을 타구였다. 기대 타율(xBA)이 0.800로, 사실상 장타 혹은 홈런에 가까웠을 타구가 이번에도 잡히고 만 셈이다.
중앙 펜스와 우측 펜스까지의 거리가 매우 먼 펜웨이파크의 특성에 도합 3연전서 최소 2~3개 정도의 홈런을 잃는 불운을 경험한 이정후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이정후의 이 타구는 30개 구장 가운데 26개 구장에서 홈런이 될 타구였다. 보스턴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와 함께 캔자스시티-오클랜드-워싱턴의 홈구장 단 네 곳에서만 홈런이 되지 않는 타구였다는 셈이다. 투수 친화적인 홈구장이었더라도 담장을 넘겼을 대형 타구는 하지만 펜웨이파크란 특성 탓에 뜬공이 됐다.
이정후는 이날 경기 앞선 3번째 타석에서도 좌완 브레난 버나디노를 상대로 중견수 방면 잘맞은 타구를 날렸지만, 역시 중견수 글러브에 잡혔다. 이정후의 3번째 타구와 4번째 타구는 1일 경기서 나온 전체 타구 가운데 비거리 부문 1,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먼 거리까지 날아갔지만 팬웨이파크의 특성상 홈런이나 장타가 되지 못했다.
2일 경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정후는 5회 초 1B-1S 카운트에서 3구째 82마일 스위퍼를 강타했고 이 타구가 우측으로 다시 멀리 뻗었지만 이번에도 우익수 뜬공으로 아웃됐다.
역시 타구 속도 99.4마일(159.9km)-타구 각도 22도에 배럴에 근접한 타구로 비거리가 360피트(109.7m)가 나왔다. 이 타구 역시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전체 구장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14개 구장에서 홈런으로 기록될 타구였다. 우측 외야가 긴 펜웨이파크의 특성 탓에 이틀 연속 1개씩 도합 홈런 2개를 놓친 셈이었다.
그러나 이날 이정후가 감정적으로 폭발한 상황은 따로 있었다.
4회말 1사 후 이정후는 세단 라파엘라의 평범한 뜬공을 잡지 못했다. 햇빛으로 정확한 포구 지점을 파악하지 못하며 그대로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그사이 타자주자가 2루까지 가면서 샌프란시스코는 득점권 위기를 맞이했다. 공식 기록은 2루타였지만, 사실상 이정후의 실책성 플레이였다. 선글라스를 착용했고, 손으로 해를 가려가며 애썼지만 강한 햇볕에 가려 평범한 타구를 놓친 당황스러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2사 후 슈퍼캐치로 자신이 초래한 위기를 결자해지 했다. 2사 2루에서 재런 듀란이 날카로운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날렸고, 이를 몸을 던져 잡아내는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기대 타율 0.660의 타구를 막아내며 실점을 막았다.
발사각도를 조정하고 배럴 타구를 날리며 타구의 질을 개선했음에도 여러모로 풀리지 않았던 3연전과 앞선 수비의 아쉬움이 컸기 때문일까. 늘 빅리그를 처음 경험한 루키 답지 않게 베테랑처럼 담담한 모습을 보여줬던 이정후가 그답지 않게 격렬한 감정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3연전의 내용과 함께 지옥과 천당을 오간 이날 이정후의 수비 장면들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현지 방송을 비롯한 미국 언론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SNS나 온라인상에서 팬들의 반응도 우호적인 편이다. 아직 적응기를 거치고 있지만 충분히 다이나믹한 플레이를 통해 여러 가능성들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여전히 기대감이 훨씬 더 큰 반응이다.
실제 스포츠 전문매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I) 역시 이정후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했다. 4회 1사에서 실책성 플레이를 한 이후 곧바로 이어진 상황을 슈퍼캐치로 바꿔놓은 담대한 모습과 빠른 멘탈 회복에 주목했다. 해당 매체는 “이정후가 외야에서 (평범한 뜬공을 놓치는) 당황스러운 실책을 저지른 이후 (슈퍼캐치로) 완전히 회복한 모습을 보여줬다”면서 반전의 상황을 호평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펜웨이파크의 독특한 구조는 외야수들의 수비를 어렵게 만들었다”면서 이정후의 실책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스턴과의 3연전 이전까지 타율 0.269를 기록하며 비교적 선전 중이었던 이정후는 시즌 한때 타율을 0.289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타구가 뜨지 않아서 배럴 타구가 자주 나오지 않았던 문제를 빠른 시일내에 개선해 보스턴 3연전에서 ‘충분히 멀리, 그리고 빠르게 공을 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당장은 홈런이나 장타라는 결과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잠재력에 주목한다면 극히 일부 한국 팬들 사이에서만 제기된 부정적인 반응은 걱정할 필요조차 없을 전망이다.
여러모로 힘들었던 보스턴 3연전을 마친 이정후는 4일 하루 휴식을 취한 이후 5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홈구장 시티즌 뱅크스 파크로 이동해 다시 원정 3연전을 소화한다. 펜웨이파크와 달리 우측 펜스의 거리가 짧고 타자 친화영 구장인 곳인 만큼 내셔널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좋은 마운드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이정후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관전 포인트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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