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귀국길 막은 '프로젝트 L', 신동주의 자충수였다
'프로젝트 L' 거론에 대한 부담 커
계속 귀국 미루며 재판 불출석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2년째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신 전 부회장은 여전히 일본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그의 경영 방식을 비판하며 '나홀로' 경영권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롯데그룹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서 한국에 오지 않는 것은 다소 의아한 행보로 보입니다.
재계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한국에 오지 않는 것이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의 변호사법 위반 재판과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옵니다. 신 전 부회장이 이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되자 공판 출석을 회피하려고 한다는 주장입니다.
금 간 '우정'
신동주 전 부회장과 민유성 전 행장은 2015년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 롯데그룹을 흔들기 위한 '프로젝트 L'을 공모했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개인회사 SDJ코퍼레이션은 2015년 9월 민 전 행장과 자문계약을 맺었는데요. 민 전 행장은 2015년 1차 계약으로 1년간 105억원을 챙겼고, 이후 2차 계약으로 77억원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죠. 신 전 부회장이 동생 신동빈 회장에게 경영권 분쟁에 패하면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신 전 부회장은 2017년 8월 민 전 행장과의 계약을 해지했는데요. 민 전 행장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 당했다며 그해 말 신 전 부회장을 상대로 남은 계약 14개월 치 미지급 자문료 108억원을 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2019년 4월 신 전 부회장이 민 전 행장에게 75억원을 지급하도록 판결을 내리며 민 전 행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자 신 전 부회장은 2심에서 전략을 바꿨습니다. 과거 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이 맺은 계약 구조 자체가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한 겁니다.
변호사법 109조는 변호사가 아닌 자가 금품 등을 받고 소송 사건 등의 법률상담이나 법률 사무를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2심 재판부는 민 전 행장이 법적 분쟁에 관한 조언, 정보 제공 등 법률 사무를 하는 것이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 사이의 자문 계약이 애초에 무효이므로 신 전 부회장이 자문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죠.
하지만 이 민사소송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 재판에서 변호사법 위반 행위가 확인된 민 전 행장은 이후 검찰 기소를 당해 2022년 9월부터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데요. 신 전 부회장은 민 전 행장의 변호사법 위반 행위와 직접적으로 얽혀있는 인물이죠. 당연히 검찰은 올해 2월 15일 신 전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은 계속 해외에 머물며 공판 출석을 미루는 중입니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5월 30일 공판에 출석해야 했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형사소송법 제 151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증인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 불출석에 따른 소송비용을 증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신 전 부회장은 검찰 측에 '해외에 있어야 하는 사유'를 제출하고 증인 출석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명분 잃은 롯데 흔들기
이렇게 신 전 부회장이 민 전 행장의 공판 출석을 회피하는 이유는 뭘까요. 법정에 출석해 진술을 하게 되면 프로젝트 L을 다시 거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 L은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 동안 △호텔롯데 상장 무산 △일본 국적 프레임 구축 △신동빈 회장 구속 수사 등 롯데그룹에 심각한 피해를 주기 위해 추진했던 계획입니다. 프로젝트 L이 롯데그룹에 입힌 충격은 상당합니다. 지금도 이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기에는 어려울 정도죠.
이 프로젝트 내용이 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의 자문료 소송 과정에서 밝혀지면서 상당히 논란이 됐었는데요. 만약 신 전 부회장이 민 전 행장의 변호사법 위반 공판에 출석한다면 당연히 프로젝트 L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L이 민 전 행장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신 전 부회장은 지금도 롯데그룹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여전히 '신동빈 흔들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L은 그의 주장과 배치되죠. 프로젝트 L이 자주 거론될수록 신 전 부회장의 논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 전 부회장이 계속 귀국을 미루고 있다 보니 부친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선영을 찾지 않은지도 오래입니다. 신 전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 때부터 현재까지 자신이 신 명예회장의 정통 후계자라며 부친에 대한 효심을 강조하는 여론전을 펼쳐 왔습니다. 부친의 묘소조차 찾지 않는 그에게서 효심을 느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에 계속해서 오지 않는다면 부친에 대한 효심을 의심 받게 된다"며 "그렇다고 한국에 와 민 전 행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면 롯데를 무너뜨리려던 공모 내용이 다시 알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사면초가인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는 28일. 민유성 전 행장의 공판이 또 예정돼 있습니다. 신 전 부회장은 이 재판의 증인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재판정에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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