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먹는 두통약 한 알, 생리통 완화를 위한 진통제 한 포.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집어드는 ‘그 약’이 실은 당신의 신장을 조용히 망가뜨리고 있을 수 있다. 최근 약사들과 의료계가 긴급 경고에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일반의약품 진통제의 무분별한 복용이 급성 신부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먹는 진통제, 당신의 콩팥을 공격한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8명이 상비약으로 갖고 있는 두통약과 소염진통제. 약국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효과도 빠르다는 이유로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한신장학회가 2025년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진통제 장기 복용자의 약 25%가 신장 기능 저하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다.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약물은 콩팥으로 흘러가는 혈액량을 줄여 신장의 여과 기능을 저하시킨다. 경희대병원 신장내과 이태원 교수는 “과다한 소염진통제의 장기적 복용은 신장 사구체를 손상시켜 결국 신장이 망가져 투석이나 신장이식이 필요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정량의 2배 이상만 복용해도 영구적인 신장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일 두통이 있다고 진통제를 하루 2~3회씩 장기간 복용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위험 신호가 켜진 상태일 수 있다.

타이레놀도 안전하지 않다, 간 손상 위험 급증
“진통제 중에서는 타이레놀이 제일 안전하다”는 말을 믿고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타이레놀을 상시 복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미국 FDA 자료에 따르면, 아세트아미노펜 과다 복용으로 인한 급성 간 손상으로 매년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
특히 술을 마신 후 숙취 해소를 위해 타이레놀을 복용하는 행위는 극히 위험하다. 2025년 10월 헬스조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숙취 상태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할 경우 되돌리기 어려운 간세포 손상이 발생하며, 이는 간경화나 급성 간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이 간에서 대사되는 과정에서 약 5%가 독성 물질로 변하는데, 알코올과 함께 섭취하면 이 독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루 최대 복용량인 4000mg을 초과할 경우 심각한 간 손상이나 간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는 이미 여러 차례 나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권장량을 넘기고 있다.
약사들이 경고하는 ‘상비약의 함정’
2025년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 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집중 조명됐다. 대한약사회는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도 일반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용법을 지키지 않으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의약품 오남용에 대한 경고를 강화하고 있다.
약사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전문가의 복약지도 없이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약을 선택하고 복용하는 관행이다. 약국에서조차 제대로 된 상담 없이 진통제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기존에 복용 중인 약과의 상호작용, 개인의 신장·간 기능 상태, 기저 질환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위험한 행동이다.

실제로 2025년 8월 대한약사회는 일반의약품 부작용 보고 활성화 이벤트를 진행하며, 안전상비의약품에서 발생하는 이상사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약들의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방증한다.
진통제 부작용, 신장·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통제의 부작용은 신장과 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기 복용 시 위장관 출혈,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 고혈압 악화, 심부전 환자의 부종 조절 실패 등 전신에 걸친 문제를 유발한다. 특히 NSAIDs 계열 진통제는 장기 복용 환자의 약 25%에서 위장관 출혈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에서는 진통제 오남용으로 인해 지난 15년간 16만여 명이 사망하고 210만 명이 중독 증상을 겪었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매일경제 2016년 보도에 따르면, 진통제의 습관적 복용은 혈압 조절을 방해하고 고혈압 환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
또한 진통제는 혈압약의 효능을 떨어뜨리고,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으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밝은미소약국 배현 약사는 “해열소염진통제는 신장으로 흘러가는 혈액량을 줄여 체액을 정체시켜 몸이 부을 뿐 아니라 심한 경우 신장독성이 발생해 급성신부전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전하게 진통제 복용하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권하는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최소 기간·최소 용량 원칙을 지켜라. 미국 FDA와 국제 관절염학회(OARSI)는 진통제를 복용할 때 가능한 한 짧은 기간, 가장 낮은 용량으로 복용할 것을 권고한다. 통증이 사라지면 즉시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둘째, 신장 기능이 약한 사람은 NSAIDs를 피하라. 대한신장학회 자료에 따르면 사구체 여과율이 30mL/min/1.73㎡ 이상인 경우에 한해 5일 이내로만 복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만성 신장 질환자나 고령자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복용해야 한다.
셋째, 공복 복용을 피하고 미지근한 물과 함께 먹어라. 타이레놀은 위장 부담이 적어 공복에도 복용 가능하지만, NSAIDs는 반드시 식후 30분에 물과 함께 복용해야 위 손상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술과 절대 함께 먹지 마라. 알코올과 진통제의 조합은 간독성을 극대화한다. 특히 타이레놀은 숙취 상태에서 복용하면 간세포 손상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다.
다섯째, 약사와 반드시 상담하라. 기존에 복용 중인 약이 있거나 만성 질환이 있다면,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매할 때 반드시 약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상담을 받아야 한다. 약물 상호작용을 확인하지 않고 복용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는 더 조심해야
일반 진통제로 통증이 조절되지 않을 때 처방받는 마약성 진통제(모르핀, 코데인, 트라마돌 등)는 중독성과 호흡 억제, 변비 등 더 큰 부작용을 동반한다. 의료용 마약류 진통제 안전사용 기준에 따르면, 처음 처방 시 1회 7일 이내로 단기 처방하며, 추가 처방의 경우 최대 3개월 이내로 제한한다.
마약성 진통제는 반드시 전문의 처방이 필수이며, 자기 판단으로 용량을 늘리면 과다 복용 위험이 크다. 중단할 때도 갑자기 끊지 말고 용량을 서서히 줄여가는 방법을 사용해야 금단 증상을 피할 수 있다.
대안은 없을까? 비약물 통증 관리의 중요성
전문가들은 만성 통증 관리에서 약물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비약물적 방법을 병행할 것을 강조한다. 물리치료, 온열요법, 스트레칭, 체중 관리, 생활습관 개선 등이 장기적으로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통증 관리법이 될 수 있다.
또한 통증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받고 근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증상만 억제하는 진통제에 의존하다 보면, 정작 숨어있는 질병을 놓칠 수 있고 장기 손상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금 당장 약 봉투를 확인하라
당신이 지금 집에 두고 습관적으로 먹는 그 진통제, 과연 안전한가? 복용 기간은 얼마나 됐는가? 신장이나 간 기능 검사를 최근에 받아본 적이 있는가?
약사들이 긴급 경고에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무심코 먹는 한 알의 진통제가 당신의 콩팥과 간을 망가뜨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리함 뒤에 숨은 위험을 이제는 직시해야 할 때다. 진통제를 복용하기 전,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고, 최소 용량으로 최단 기간만 복용하라. 당신의 건강은 한 번 망가지면 되돌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