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이름 찍힌 훈장 몸서리쳐져" 안 받겠다는 교수

박지윤 2024. 10. 2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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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훈장 ‘미신청 확인서’ 낸 김철홍 교수
"윤석열 수여하는 훈장은 받고 싶지 않아"
인천대 김철홍(왼쪽 사진) 교수, 김 교수가 쓴 훈장 거부 취지서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 김철홍 교수 제공

퇴임을 앞둔 김철홍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가 퇴임식에서 수여되는 대통령 훈장을 받길 거부했다. 김 교수는 “상을 수여하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대통령 윤석열’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훈장은 받고 싶지 않다”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2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근정훈장 미신청 확인서를 제출했다”며 “민중의 삶은 외면한 채 자신의 가족과 일부 지지층만 챙기는 대통령이 수여하는 훈장이 우리 집 거실에 놓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근정훈장 수여 대상자였다. 근정훈장은 재직기간이 30년 이상 33년 미만인 퇴직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 등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그는 근정훈장 자체에 대해서도 “대학교수처럼 이미 사회적 기득권으로 많은 혜택을 본 사람이 개근상 같은 훈장을 받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가 거부의 변을 담아 쓴 글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는 이날 내내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누리꾼 다수가 “대학에 아직도 이런 분이 계시다니 참지식인이다”, “윤석열 이름이 적힌 훈장을 받아놓으면 처리하기도 곤란하겠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의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등 김 교수의 결정을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

김 교수는 1993년 3월 1일에 인천대 조교수로 임용된 뒤 32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퇴임 시기는 4개월 후인 2025년 2월이다. 그는 90년대부터 인천의 노동 현장을 찾아 산업재해와 노동자 건강권에 관련된 연구를 계속해 왔다. 2002년 ‘건강한 노동세상’을 창립해 지난해까지 초대 대표를 지냈고, 2001년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를 창립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에선 2000년부터 2023년까지 국공립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아래는 김 교수의 글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의 전문이다.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 - 김철홍 인천대 교수
며칠 전 대학본부에서 정년을 앞두고 훈·포장을 수여하기 위해 교육부에 제출할 공적 조서를 작성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공적 조서 양식을 앞에 두고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먼저 지난 시간 대학 선생으로 내가 한 일들이 어떤 가치가 있었기에 내가 훈장을 받아도 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훈장이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뚜렷한 공로를 세운 자에게 수여되며, 공로의 정도와 기준에 따라 받는 훈장이 다르다고 한다. 대학의 교수라고 하면 예전보다 사회적 위상이나 자긍심이 많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일정 수준의 경제 사회적 기득권층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이미 사회적 기득권으로 많은 혜택을 본 사람이 일정 이상 시간이 지나면 받게 되는 마치 개근상 같은 훈·포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훈·포장 증서에 쓰일 수여자의 이름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훈포장의 수여자가 왜 대한민국 또는 직책상의 대통령이 아니고 대통령 윤석열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윤석열은 선출된 5년짜리 정무직 공무원이다. 나는 만약에 훈·포장을 받더라도 조국 대한민국의 명의로 받고 싶지,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 무릇 훈장이나 포상을 함에는 받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그 상을 수여하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제대로 축하하지도 못하는 분위기 조장은 물론, 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으로 매도하고, 급기야 유해도서로 지정하는 무식한 정권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할 연구 관련 R&D예산은 대폭 삭감하면서, 순방을 빙자한 해외여행에는 국가의 긴급예비비까지 아낌없이 쏟아붓는 무도한 정권이다. 일개 법무부 공무원인 검사들이 사법기관을 참칭하며 공포정치의 선봉대로 전락한 검찰 공화국의 우두머리인 윤석열의 이름이 찍힌 훈장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나라를 양극단으로 나누어 진영 간 정치적 이득만 챙기는, 사람 세상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들어 놓고, 민중의 삶은 외면한 채 자신의 가족과 일부 지지층만 챙기는 대통령이 수여하는 훈·포장이 우리 집 거실에 놓인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친다.

매 주말 용산과 광화문 그만 찾게 하고, 지지율 20%이면 창피한 줄 알고 스스로 정리하라. 잘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 그만 내려와서, 길지 않은 가을날에 여사님 손잡고 단풍이라도 즐기길 권한다. 훈장 안 받는 한풀이라 해도 좋고, 용기 없는 책상물림 선생의 소심한 저항이라고 해도 좋다.

“옜다,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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