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O 리포트] 방카슈랑스 규제, 이제 풀 때가 됐다

낡은 규제의 틀 새로운 환경변화 반영해야

보험 신뢰회복 출발 상품판매단계부터 시작

보험 판매채널 경쟁구조, ‘게임의 룰’ 바꿔야

방카슈랑스 제도를 볼 때마다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경원선 철도 중단역(연천군 신탄리역)에 세워진 낡은 푯말(‘철마는 달리고 싶다’)이 생각난다. 방카슈랑스 규제는 지난 20년 가까이 화석처럼 정지된 화면으로 남아 있는 대표적인 금융규제의 한 장면이다.

외환위기 이후 규제완화 대세에 편승해 2003년 8월 은행 창구에서도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저축성보험 중심이기는 했지만, 제도 시행 첫해인 2003년 생명보험사 초회보험료 기준으로 방카슈랑스 채널의 판매 비중이 40%에 육박했으니 생보사와 보험설계사의 위기감이 대단히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방카슈랑스 제도를 도입한 지 21년이 지났지만 보험권의 생존을 내건 반대로 규제완화 수준은 도입 초기 시점에 멈춰 있다. 이런 영향으로 올해 8월 누적(월납환산초회보험료, 생명보험업협회)으로 생보사 전체 신계약 중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판매된 건수는 전체의 4% 수준인 2만759건이고 보험료 기준으로도 1448억원(14%)에 불과하다. 그 중 수수료가 낮아 보험대리점(GA)이나 보험설계사가 선호하지 않는 저축성보험만 떼어내 살펴보면 방카채널 비중이 판매건수로는 25% 수입보험료로는 48% 정도를 차지한다.

방카슈랑스를 옥죄는 수많은 규제는 요지부동인데 고객정보보호, 내부통제 등 추가 규제만 지속적으로 강화돼왔다. 더구나 IFRS17 회계제도 시행으로 보험사가 판매하는 저축성보험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방카슈랑스 사업에서 철수하는 보험사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판매가능상품 제약으로 방카채널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손보사의 방카슈랑스 참여가 저조하다. 올해 4월 손보 업계 1위 삼성화재가 방카슈랑스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제 KB손보, 현대해상, DB손보, NH농협 등 4개 손보사만 남았다. 저축성 중심으로 허용된 규제의 영향으로 생보사보다 손보사의 이탈이 앞으로 더 확산될 수 있다.

방카슈랑스의 소위 ‘5대 규제사항’은 판매상품, 판매비율, 판매인원, 모집방법, 취급업무 등이다. 이들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관련 금융사들이 지난 20년 가까이 숱하게 논의를 이어왔지만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판매가능상품은 2006년 만기환급형 보험상품을 마지막으로 실손보험, 종신보험, 자동차보험, 만기미환급형보험 등이 여전히 제외돼 있다. 또 특정 회사에 상품 판매가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25%규제룰 역시 도입 초기(50%)보다 강화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은행 점포당 보험판매인력 2명 이상 보유를 금지하거나 전화, 우편, 통신 등 비대면 모집을 제한하는 것은 최근 변화된 경제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규제지만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디지털경제 확산과 핀테크 활성화로 비대면 규제완화 추세가 확산되면서 방카슈랑스 채널이 그나마 경쟁할 수 있었던 저축성보험을 올해 1월부터 시행된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서비스’에 포함했다. 손발이 다 묶인 방카슈랑스 채널에 새로운 경쟁 채널만 늘어나는 모양새다.

올 8월부터 금융당국은 보험산업의 신뢰 회복과 혁신으로 보험을 국민이 믿는 ‘든든한 동반자’로 거듭나게 한다는 목표 아래 ‘보험개혁회의’를 의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보험개혁회의 10대 추진전략 가운데는 GA 등의 불완전판매 책임과 내부통제규율 강화를 포함한 ‘소비자 우선 판매문화’ 정착이 핵심 과제로 포함돼 있다. 금융상품은 판매 단계에서 판매인과 회사의 이미지가 신뢰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보험연구원(2024년 9월)에 따르면 생보사 민원의 52.3%가 보험모집 단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 신뢰도 개선을 위해서는 모집 단계에서부터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전체 금융상품의 신뢰도는 예적금, 신용카드, 저축성보험, 보장성보험 순으로 보험상품이 중간 수준으로 평가된다.

하나금융연구소(2020년)에 의하면 금융소비자는 ‘이상적 금융기관의 이미지’로 안정성을 바탕으로 고객자산을 먼저 고려하는 정직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회사를 상상한다. 소비자 이익의 관점에서 정보제공과 상품권유로 보험의 신뢰를 회복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상품가입 채널’을 대폭 개방해 판매 채널의 ‘경쟁’을 확대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보험개혁회의 추진과제에 더해 보험상품 판매 채널 개방 등 보다 더 과감한 조치가 마련돼야 바닥에 떨어진 보험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판매수수료 차익거래 방지를 위한 선지급 방식 조정 등 보험업 내부에 국한된 불건전관행 개선으로 보험에 대한 국민적 신뢰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보험의 신뢰를 회복하는 수단으로 모집 단계의 건전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방카슈랑스 채널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보험 신뢰도 저하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는 ‘판매자의 잦은 이직’과 ‘실적 비례 수수료’ 인센티브 구조를 정규직이 있는 방카슈랑스 채널이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방카슈랑스 운영주체인 은행은 인적역량과 시스템 확충을 위한 투자재원도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 노하우도 충분하다.

특히 부유한 액티브시니어가 주류를 이루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 진입을 앞두고 건강보험 수요와 함께 은행 PB고객 등 고액자산가 개인의 자산부채관리(퍼스널 ALM) 니즈는 증가하고 있지만, 여러 규제의 영향으로 대응이 효과적이지 못하다. 방카슈랑스 채널의 진화된 모습과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금융 서비스의 규제와 공급 시스템은 은행, 증권, 보험 등 업권별로 분절화돼 운영되지만 현장의 금융소비자는 금융업권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서비스를 요구한다. 방카슈랑스 채널은 금융소비자의 관점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허정수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