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임금체불 느는데 대지급금 받기 어렵게 지침 바꾼 노동부
‘대지급금용’ 체불확인서 줄고 ‘소송 제기용’ 늘어
이용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
이주노동자 A씨는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봉제공장에서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 일했다. A씨는 퇴직 뒤 “임금체불을 당했다”며 고용노동부 서울북부지청에 진정을 제기한 뒤 대지급금을 받으려고 체불임금 확인서 발급을 신청했다. 대지급금 제도는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일정 범위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A씨는 ‘58만6820원’이라는 액수가 적힌 체불임금 확인서를 받았지만 대지급금을 신청할 수 없었다. 체불임금 확인서는 대지급금용과 소송 제기용으로 나뉘는데 그가 받은 건 후자였기 때문이다. 곧장 대지급급 신청을 할 수 있는 대지급금용과 달리 소송 제기용은 월 평균 임금이 400만원 이하인 노동자가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소송대리 지원을 받는 데 필요한 확인서다.
A씨가 대지급금용 확인서를 받지 못한 이유는 지난 4월22일부터 체불임금 확인서 발급요건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은 4대보험 신고 자료가 없어 소송 제기용 확인서를 발급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대지급금을 받지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노동부가 체불임금 확인서 발급지침을 바꾼 뒤 영세 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각지대 노동자들이 대지급금을 빠르게 받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체불 노동자의 조기 생활 안정을 위한 대지급금 제도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노동부는 지난 4월22일 대지급금 청구용 체불임금 확인서 발급요건을 강화하는 지침을 시행했다. 일부 사업주가 체불 청산 노력없이 대지급금에 의존하거나 대지급금을 부정수급하는 사례를 막겠다는 이유에서다.
지침 개정 이전에는 노동자와 사업주 간 진술이 일치하고 고용보험, 교통카드 내역 또는 사업장 출입내역, 임금대장, 카카오톡 대화 등 자료가 있으면 대지급금용 확인서 발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개정 이후엔 4대보험, 국세청 소득신고 내역 등 ‘공공성이 담보된 객관적 임금자료’가 있어야만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 확인서 발급 시기도 ‘시정지시 전 발급 가능’에서 ‘시정지시 이후 발급’으로 바뀌었다. 개정 지침은 “당사자 진술 외에 객관적 자료 증빙이 어려운 경우 대지급금용 체불확인서 발급이 곤란하다. 근로자 권리구제를 위해 근로자 주장에 부합하는 자료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송 제기용 체불확인서 발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지침 개정 이후 소송 제기용 확인서 발급이 증가한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1월부터 지침이 개정된 지난 4월까지 매월 소송 제기용을 발급받은 인원은 한 번도 4000명을 초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5월 4229명을 기록했고 6월 4650명, 7월 6406명이었다. 8월 5236명, 9월 4620명으로 오름세가 꺾이긴 했지만 4000명 이상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지난해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대지급금용을 발급받은 인원은 매월 5000명을 웃돌았지만 5월 3934명을 기록했고 9월엔 2667명까지 떨어졌다.
노무사들 사이에선 4대보험 가입률이 낮은 영세 사업장 노동자,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각지대 노동자들이 지침 변경으로 피해를 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침 변경은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면이 있는 만큼 근로감독관의 소극 행정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특히 연장근로수당 체불의 경우 출·퇴근 시간 기록이 사업주 의무가 아니어서 노동자가 입증 자료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이 의원은 “지침 개정으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며 “올해 임금체불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다. 체불 피해 장기화를 막으려는 대지급금 제도 취지를 반영해 지침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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