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존재의 의미'를 묻다

이한나 2022. 10. 7. 17: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10월 30일까지 아트선재센터
할아버지를 잃은 상실감
공동체 분열 역사와 연결
태국 토속음악·서구 테크노
어우러져 새로운 삶 노래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의 `죽음을 위한 노래·삶을 위한 노래`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아트선재센터]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지하 소극장에 입장하니 화면이 거꾸로 설치돼 있었다. 기존 객석이 아니라 스크린이 있던 무대 위에 비정형 의자와 각종 설치물이 함께 있다.

태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망 작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36)의 작품 '죽음을 위한 노래·삶을 위한 노래'를 감상하려면 일단 이처럼 전복된 공간과 어두움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기 위해 다른 차원으로 유도하는 듯하다. 무대 한편에 켜진 촛불들이 그런 의심을 더한다. 마치 유령 같은 형광색 몸체에 긴 머리를 한 인체 형상과 토끼 인형들 옆에 앉아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비디오 영상을 보았다.

국내에서 처음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201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휘트니 비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이어 2021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죽음을 위한 노래'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그는 회화와 영상, 퍼포먼스 등을 통해 샤먼(주술)과 시각 매체를 연결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마치 콜라주 기법처럼 연결된 영상은 다양한 음향과 음악으로 풍성하다. 방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간 작가가 어린 시절을 함께했고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해주던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상실을 제주 4·3사태, 태국 민주화 시위 등 공동체 간 분열이나 폭력의 역사와 엮어 풀어냈다.

작가가 병원에서 할아버지 임종을 지키고 직접 노래를 불러드리는 장면에서는 그리움이 절절하게 배어 나온다. 코로나19로 주변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어본 이라면 쉽게 공감할 만하다. 굿하는 제주 무당과 태국 주술사가 겹치는 장면에서는 내가 영적인 존재들과 함께 현장에 있는 듯싶고 이 세상이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듯하다. 태국 시위대가 한꺼번에 스마트폰을 켜는 시위 장면이 느린 화면과 음악이 어우러져 환상적으로 표현돼 인상적이다. 죽음과 소멸이라는 과정은 노래를 통해 치유의 힘을 얻는다. 태국 토속 음악과 서구 테크노 음악이 묘하게 어울린다. 문지윤 아트선재센터 디렉터는 "자칫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는 개인적 서사와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영(靈)적인 차원으로 연결되는지 살피면서 서양의 존재론적 사고 외부에서 존재와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개막에 맞춰 방한한 아룬나논차이는 "형태를 가진 것이 소멸되는 과정이 죽음이라면 삶이란 그 반대로 형태를 가지게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며 "전작(죽음을 위한 노래)은 석양과 밤, 우주의 푸른빛 색조로, '삶을 위한 노래'에서는 해가 뜨는 붉은 빛깔을 써서 구분하려 했다"고 밝혔다. 후반작인 '삶을 위한 노래'는 지난해 여름 코로나19 봉쇄가 풀리던 시점에 뉴욕에서 촬영하고 환경디자이너 알렉스 그보익(38)과 협업했다. 모닥불을 피워 춤추는 젊은이들 모습은 주술적이면서도 몽환적이다.

정치적 격동기에 명확성을 위해 싸웠던 작가 시몬 베유, 체스와프 미워시 등의 문학 텍스트를 내레이션에 넣어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려고 시도했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열리며 예약제로 감상할 수 있다.

[이한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