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년 동안 5000만원으로 묶였던 예금자보호한도가 1억원으로 상향된다.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된 가운데 정부는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시행령으로 금융시장에 혼란이 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시중·저축은행은 예보한도 상향으로 발생할 '자금 대이동(머니무브)'과 관련해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가운데 예보한도 상승과 관련해 가장 발 빠르게 나선 곳은 농협은행이다. 기존에는 금리 및 환율 우대만 가능했던 쿠폰 서비스를 강화해 예금, 적금, 대출, 환전 등의 금융거래 때 우대 혜택을 제공하는 'NH드림쿠폰'을 내놓았다. 예보한도 상향에 대비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선제 조치인 셈이다.
신한은행은 차별화된 자산관리, 충성고객을 겨냥한 우대금리 제공을 앞세워 수신자금 유출을 방어할 계획이다. 주거래은행의 편리성을 기반으로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 머니무브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빅테크 및 플랫폼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해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다양한 맞춤형 상품으로 고객들의 수익률과 만족도를 높일 방침이다. 아울러 KB국민·우리은행에서는 수신 이탈에 대비해 더욱 효율적인 방안을 찾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2금융권으로의 예금유출과 관련해서는 낙관적인 시각이 주를 이뤘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예금금리 때문에 2금융권을 선택할 수는 있으나, 1금융권 역시 한도가 늘어나면서 안정성을 중시하는 손님들의 예금을 유치해 순이자마진(NIM)이 커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존 고객과 신뢰관계가 두터운 1금융권에서는 예보한도가 5000만원이든 1억원이든 큰 차이가 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시중은행 간 예금 유치를 위한 출혈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제2금융권을 견제하기보다는 은행끼리 맞붙게 될 것"이라며 "예금 유치 경쟁이 과열되거나 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어 은행 내부에서 긴밀하게 대응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업계는 금리인하 기조에 역행하는 높은 금리의 상품을 내놓으며 예보한도 1억원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저축은행 79곳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평균 3.01%로 5대 시중은행(1.85~2.55%)보다 높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수신 잔액은 98조5315억원으로 전월 대비 1374억원 늘었다. 저축은행의 수신 규모가 증가한 것은 지난해 10월 말 이후 처음이다.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가 공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예보한도를 1억원으로 올릴 경우 저축은행 예금은 16~25%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 저축은행 담당자는 "현재 저축은행 업권의 금리 경쟁력이 올라갔다고 판단된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예보한도 상향 시기에 맞춰 수신 잔액 유입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현재 저축은행 업계는 '6·27 대출규제'로 여신을 마음껏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수신 규모가 과도하게 커질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예보한도 증가로 제2금융권의 수신금리 저하가 유도되는 게 아닌지 살펴보라고 주문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경영기조는 대부분 건전성 지표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수신이 많이 유입되더라도 대출을 적극적으로 내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예금금리가 조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저축은행 업계는 예금보험료율 조정 여부와 관련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올 하반기 예보료율 산정 작업에 착수한다. 변경된 예보료율은 2028년부터 적용된다. 금융권에서는 예보한도가 높아지는 만큼 예보료율도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저축은행의 예보료율은 0.40%로 은행(0.08%), 금융투자회사·보험사(0.15%) 등 다른 금융권과 비교해 높다. 차등평가등급 제도로 건전성·수익성이 악화된 저축은행은 예보료를 추가로 더 내기도 한다. 최근 저축은행중앙회는 금융당국과 예보에 합리적인 예보료율 책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예보료율 조정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책을 세우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라며 "해당 사항이 결정돼야 여신 및 수신 등에 대한 영향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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