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실시간 번역’ 사용해보니…외국어 공부 이제 끝? [김태권·신호철의 ‘AI 비교 리뷰’]

5년 전 영화 〈승리호〉를 보았다. 2092년을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로 여러 발달된 과학기술이 등장하는데 그중 인상적인 것 하나가 만능 통역기였다. 귀에 착용만 하면 어떤 언어든지 실시간으로 통역해준다. 영화를 보면서 과연 저런 미래가 가능할까 궁금했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영화 속 기술이 현실이 되려 한다. 지난해 12월 초, 구글은 ‘실시간 번역’ 기능을 새로 공개했다.
구글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은 예전부터 있었다. 상대의 음성을 문자로 변역해 화면에 보여주는 기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서비스는 영화 〈승리호〉처럼 귀에 꽂은 이어폰을 동시 통역기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마치 유엔 같은 국제회의장에서 이어폰을 끼고 고도로 훈련된 동시 통역사의 도움을 받는 것과 같다.
가슴이 설렌다. 당장 써보고 싶다. 하지만 구글은 이 신기능을 미국·멕시코 등 몇몇 나라에만 베타 서비스 형식으로 공개했다. 한국에서 상용화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얘긴데, 너무 궁금해서 기다릴 수 없었다. VPN(가상 사설망)을 이용해 먼저 이 서비스를 이용해봤다. 독자 여러분에게 사용법과 경험담을 공유하고 싶다.
이제 외국어 공부 안 해도 되는 걸까?
VPN이란 Virtual Private Network의 약자로, 쉽게 말해 내 접속 위치를 다른 나라로 바꿔주는 서비스다. 한국에 앉아 있지만 미국에서 접속한 것처럼 꾸며주는 것이다. 핸드폰에 VPN 앱을 깔고 미국 서버에 연결한 뒤, 구글 번역 앱을 켜면 한국에서도 실시간 번역 기능을 쓸 수 있다. 다만 VPN 앱 중에는 사용자를 기만하는 악성 앱도 많으므로 주의해서 설치하길 바란다.
만약 제대로 VPN을 실행하고 구글 번역 앱을 켜면 아래 그림(왼쪽)과 같은 화면이 보일 것이다. 왼쪽 아래에 ‘실시간 번역’ 아이콘이 보이면 성공한 것이다. VPN을 쓰지 않으면 오른쪽 그림처럼 ‘대화’ 아이콘만 보인다.

이어폰을 연결한 상태에서 ‘실시간 번역’ 아이콘을 누르면 아래 그림처럼 ‘헤드폰을 통한 실시간 번역’ 화면이 보인다. 아래 ‘시작’ 버튼을 누르면 동시 통역이 시작된다.

과연 통역은 잘되었을까? 영어로 된 유튜브 영상 몇 개로 테스트해보았다. 먼저 CNN 뉴스를 들었다. 실시간으로 번역된 한국어가 귀에서 들린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제 외국어 공부 안 해도 되는 걸까? 경탄하던 중 몇 가지 단점이 나타났다. 첫째로, 통역은 화자의 빠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뉴스는 아나운서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실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몇 박자 늦게 번역이 이뤄졌다. 둘째로 영어의 경우 목적어와 서술어의 위치가 한국어와 달라서 부자연스러운 통역이 반복됐다. “우리는 우려합니다. 예, 그린란드 병합을 우려합니다”라는 식이다. 물론 이건 전문 통역사들이 번역할 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셋째로 복잡한 문장이나 전문용어가 등장할 때는 오역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MIT 대학의 경제학 강의 영상을 들었는데, 전문용어를 오역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외국인 친구와 일상적인 수준의 영어 통역에는 무리가 없었다. 상대가 천천히 말해준다면 말이다.
2초의 지연, 생각보다 답답했다
통역의 효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내가 전혀 배우지 못한 언어가 어떻게 통역되는지 경험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1월13일 중국 상하이로 여행을 가게 됐다. 구글 통역 기능을 실전에서 테스트해볼 좋은 기회였다. 호텔, 식당, 상점, 택시 등 다양한 상황에서 중국인들과 대화를 해보았다.
통역으로 덕을 본 경우는 택시 기사를 만났을 때다. 디디(중국판 우버) 앱으로 택시를 불렀는데, 기사가 출발하지 않고 나에게 뭔가를 물었다. 무슨 질문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어서 실시간 번역 기능을 켰더니 “핸드폰 번호 끝 4자리가 뭔가요”라는 질문이었다. 탑승객 확인을 위한 절차였다. 물론 기존 통역 서비스의 음성-문자 번역으로도 해결될 문제이기는 했다. 가장 유익했던 경우는 시내버스를 탔을 때다. 중국어 안내 방송이 번역되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상황에 따라 핸드폰 화면을 볼 수 없어 음성으로만 얘기해야 할 경우 실시간 통역은 편리했다. 중국 전통 마사지를 받는 동안 마사지사와 통역기로 대화를 했다. 외국 손님 가운데 어느 나라 사람이 많으냐고 물으니 싱가포르라고 답했다.
하지만 SF 영화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화는 아직 쉽지 않았다. 길거리 대화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통역에 2초 정도 딜레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2초라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대화 흐름에 꽤 지장을 준다. 화면으로 보는 음성-문자 번역을 이용했던 분들에게, 이 문제는 더 답답할 수도 있다. 물론 시간 지연 문제는 내가 VPN으로 우회 접속을 한 탓일 수도 있다. 정식 서비스가 출시되면 다시 테스트해볼 문제다.
두 번째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직 오역이 많았다. 식당 점원에게 “이 가게는 몇 시에 문을 닫느냐”라고 물었다. 점원은 “어디 문이 열려 있느냐”라며 두리번거렸다. 호텔 담당자와 보증금 환불 문제를 논의했는데, 구글 통역이 답답해서 그냥 영어로 얘기했다.
물론 해외여행을 갔으면 현지어 몇 개쯤 배워서 직접 써보는 게 묘미다. 아무리 훌륭한 통역사라도 화자의 미묘한 감정까지 전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영화 〈승리호〉에서는 찰진 욕설까지 느낌을 살려 통역하던데, 아, 거긴 2092년이었지.
김태권·신호철 (커뮤니티 AI인(aiin.my) 운영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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