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韓美 FTA협상 때 맞붙었던 두 관료, 무역 문제 두고 재격돌
한국 “韓 기업들 美에 투자·일자리 창출”
미국 “한국도 무역 적자 보면 가만 있겠나”
“한국의 대미 투자액이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높아졌다. 한국은 미국의 훌륭한 파트너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
“미국만큼 한국이 수출 적자를 본다면 한국인들이 가만히 있겠나? 차기 행정부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다시 들여다볼 것이다.” (스티븐 본 전 USTR 대표 대행)
11월 미국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무역·통상 분야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미의 통상 전직 고위 당국자들이 격돌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 당시 통상 정책을 이끌었던 스티븐 본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 대행과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25일 미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엘리엇스쿨에서 미 대선 이후 한미간 무역 정책의 전망에 대해 토론을 가졌다. 둘은 지난 2017~2018년 한미 FTA 재개정 당시 한 방에 마주앉아 치열한 협상을 벌였었다.
트럼프는 모든 상품에 약 10% 관세를 매기는 ‘보편적 관세’ 도입 등을 앞세우면서 세계 교역 질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본은 트럼프의 ‘경제 선생님’으로 불리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측근으로 꼽힌다. 트럼프 2기 때 요직 기용이 유력하게 고려되는 본은 이날 트럼프의 ‘보편적 관세’를 옹호하면서 한국도 예외는 없다고 했다. 여 전 본부장은 한국의 대미 투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만큼 주요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맞섰다.
이날 토론 내내 양측은 한미간 무역 수지 불균형을 두고 팽팽하게 맞섰다. 한·미 무역 협상 실무진들의 ‘실전 협의’가 연상됐다. 이날 토론엔 태미 오버비 전 미국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선임부회장도 참석했다. 미국 글로벌 자문회사인 DGA 산하 올브라이트 스톤브릿지 그룹의 백재민 디렉터가 사회를 맡았다.
스티븐 본 전 대행(이하 본) “한미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미국인들은 실질적인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28%만이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모두가 경제 상황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등으로 실질 임금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투자와 더 많은 일자리 창출, 그리고 더 높은 임금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관세 정책 등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한구 전 본부장(이하 여) “지난 몇년간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새롭게 떠오르는 중요한 산업군에서 미국의 제조업과 공급망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한국 기업들이 상당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미 투자도 2017년 150억 달러(약 19조 9290억원)에서 최근 배에 가까운 280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지정학적 상황 등과 경제 측면 등을 볼때 한미간 더 많은 협력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태미 오버비 전 부회장(이하 오버비) “한국은 전세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전 세계의 자유무역협정을 확대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대선 기간) 미국인들은 민주·공화 후보 누가 이길지 온통 관심이 쏠려있다. 한국 등 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미국인으로서 나는 미국이 이기는가, 아니면 중국이 이기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파트너 국가들은 언제쯤 미국이 예전의 자유무역 정책으로 선회할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환경이 너무나도 극적으로 변했다. 누가 이기든 중국과의 경쟁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초당적 지지를 받는 분야다.”
-한국이 대미 투자를 많이 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는 사상 최고치인 540억 달러(약 71조8092억원)에 달한다. 이 상황이 다음 미 대통령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나.
본 “매년 미국은 우리의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매년 약 8000억 달러(약 1064조 2400억원) 상당의 자산을 팔아치우고 있다. 그 중 500여억 달러가 한국으로 흘러들어간다. 한국 입장에선 이 돈을 현금으로 보유하지 않는 것(다른 자산 투자)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자연스럽게 그 돈을 가지고 (미국의) 공장을 사고, (미국의 건설기계 회사였던) 밥캣을 사고(두산이 2007년 인수), 부동산을 사고, 미국에 있는 다른 자산을 사들였다. 외국 투자자가 소유한 미국의 자산 총액과 미국 투자자가 갖고 있는 외국 자산의 차이가 21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의 엄청난 자산들이 매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긴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도 매년 무역 적자를 보고, 외국인들이 자기네 땅을 사들이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나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다음 행정부가 이 문제를 확실히 살펴보리라고 생각한다.”
여 “각국의 무역 적자의 원인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대미 흑자)엔 미국에도 매우 건전한 무역 적자라고 본다. 미국의 이웃 국가들은 미국으로 대량 수출을 하지만 일자리는 미국에서 창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미국에서 창출한다. 그리고 미국의 대한국 무역 적자의 절반은 자동차나 부품, 배터리 중간재 등에서 온다. 한국 기업들이 공장을 잇따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 공장이 완공되면 (불균형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모든 건 ‘윈윈’이다.”
-미국의 대중 강경 무역 조치로 한국이 부수적(collateral)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여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반도체나 자동차 등의 산업은 한중일, 미국과 유럽이 모두 서로 얽혀 있다. 미중간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해 매우 민감한 첨단 분야에서 중국에 많이 투자했던 한국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중국을 겨냥해 시행됐던 무역확장법 232조 등과 관련해서도 한국 기업들은 중국산 부품, 소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과거)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조금 더 균형 잡힌 상태로 공급망을 옮기는 일종의 ‘탈위험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정책입안자들은 이런 한국의 미묘한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본 “한국은 한미 경제 관계를 두고 만족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FTA를 개정안에 서명했다. 만약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50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냈다고 생각해보라. 한국 유권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대미 흑자는) 한국이 얻은 이익이지만, 이로 인해 정치적 긴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한국도 이해해야 한다. ‘무역 불균형’은 미국으로선 큰 도전이다.”
-차기 미 행정부가 FTA를 다시 한번 개정하려고 할까.
본 “(2기)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 정부가 트럼프 1기 당시 매우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한국이 매우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다른 국가들 보다 먼저 매우 개방적이고 솔직하게 우리와 마주 앉아 협상에 임했다. 그 결과 몇 가지 수정 사항을 매우 신속하게 도출할 수 있었다. 자동차 공급망 등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무역 불균형 중) 일부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차기 행정부)은 분명히 협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 의회에 가서 새로운 합의를 비준받으려고도 할 수 있다.”
여 “(양국간) 소통이 중요하다고 본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고 기존의 모든 무역 협정을 다시 검토한다고 보자. 10%의 보편 관세 등의 시행 여부를 따질 것이다. 그런데 이를 한국에 적용하려고 할 때 다른 조항과 겹치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측이 정말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때 가장 먼저 무역 협상을 타결한 나라였다. 그런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새 행정부와도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우리 정부는 당시 쿼터제로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대신 관세를 면제받았었다. 이 조치는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에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 조치가 향후 행정부에서도 계속 될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본 “전 세계적으로 철강 공급 과잉이 심각하다는 점을 모두 인식해야 한다. 큰 문제다. 미국 철강 산업은 위험에 처해 있다. 미국이 철강 산업을 굳건히 유지하지 못하면 국가 안보 약화로 직결된다. 따라서 미국이 지속 가능한 철강 산업을 유지하려면 해당 기업들이 일정 수준의 가동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미 상무부 등의 판단이다. 미국 정부는 수입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수준의 가동률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이 생각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같았다. 철강 제한 조치는 계속될 거다.”
이날 토론에선 동맹국인 한국의 특별한 관계를 미국이 양해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잇따라 나왔다. 그러나 본 전 대행은 단호했다.
본 “미국과 무역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말씀드리겠다. 대미 투자 증가 등에 대한 주장을 이해한다. 미국에 투자하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많이 만나는 (미국 기업 및 정부 소속) 사람들은 두 가지를 원한다. 하나는 무역 흑자, 하나는 세계 무역 시스템의 안정이다. 이 두 가지 목표는 서로 상충되기 마련이다. 항상 흑자를 내는 국가들이 모여 있고 항상 적자를 내는 국가들이 모여 있다면 글로벌 무역 시스템은 안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상시적으로 무역 적자가 발생하면 적자 국가는 피해를 입게 된다. 미국도 무역 흑자를 내고 싶고,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고 있다. 흑자를 내고 있다면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흑자가 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미국은 항상 무역 흑자를 냈고 결국 대공황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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