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 능력이 있는 야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고 상상해 보자.
눈 앞에 박찬호와 최형우가 있다.
놀라운 능력이 생겨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여러 답이 나올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값진 게 무엇일까, 나라면 ‘경험’을 선택할 것 같다.
박찬호와 최형우는 올 시즌 KIA를 지탱하고 있는 두 축이다.
내야의 사령관이자 예비 FA인 박찬호는 어떻게 하다 보니 유니폼에 ‘C’를 달고 뛰고 있다.
주장 나성범이 종아리 부상으로 이탈했고 임시 주장을 맡았던 김선빈도 종아리를 다치면서 자리를 비웠다. 임시주장의 임시주장이 된 박찬호.
최형우는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팀을 상징하는 간판 선수들이 연달아 부상으로 쓰러졌지만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냥 지키는 게 아니다.
올 시즌 리그에서 귀한 ‘3할 타자’인 데다 툭하면 기록을 만들고 있다.
최다 월간MVP 주인공이 된 최형우는 지난 24일 키움전에서는 1회부터 스리런을 날리면서 1700타점도 만들었다.
누구도 넘지 못한 고지를 밟은 최형우는 18시즌 연속 50타점도 동시에 채웠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부상도 실력’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두 사람이다.
지금은 KIA가 가장 믿는 선수들이지만 이들에게도 눈물 나는 어린 시절이 있었다.
화려한 순간도 많지만 잊을 수 없지만 잊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좋은 경험, 안 좋은 경험, 성공한 경험, 실패한 경험 등 이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박찬호와 최형우가 됐다.
이들이 지금 이 순간 KIA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이유, 바로 이 경험에 있다.
물론 박찬호는 ‘최고참’ 최형우에 비하면 아직도 쌓아갈 경험이 많다.
어찌 됐든 험난한 2025시즌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은 입을 모아서 “겪어봐야 안다”라고 말한다.
‘경험’을 해 봐야 안다고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박찬호는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다.
박찬호는 후배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임시주장이자 선배이자, 형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 전 후배들을 모아서 나름의 의식을 진행하기도 하는 박찬호, 그의 이런 부지런함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지금은 KIA의 영건들이 대거 엔트리에 포진해 ‘요즘 야구’를 하고 있지만 박찬호의 신인 시절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나이 차이에 따라 ‘형’과 ‘선배님’ 호칭도 달랐고, 박찬호의 막내 시절에는 ‘선배님’들이 가득했다.
워낙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좌충우돌 혼자 배우는 게 많았다.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
내야를 겨우 넘기던 왜소한 체격까지 생각하면 박찬호의 지금은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움이다.
그래서 박찬호는 기꺼이 말 많은 선배가 되기를 자처했다.
험난한 프로 세계에서 후배들이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박찬호도 여전히 겪으면서 배우고 있다. 박찬호는 올 시즌 또 다른 책임감을 배우고 있다.
“성범이 형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박찬호. 주장 완장이 생각보다 무겁다.
박찬호는 “솔직히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릇이 아니다. 맡겨줘도 정식 주장은 못 할 것 같다”며 잠 못 이룬 밤들을 이야기했다.
“잠을 못 잔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팀이 지면 나 때문에 진 것 같다. 다 어리니까 동생들이니까 내가 형우 선배처럼 해줘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못하니까 어렵다. 감독님도 형우 선배처럼 야구장에서 결과를 내는 것을 기대하셨는데 결과가 안 나오니까 힘들기도 했다.”
지난 시즌 뜨거운 타격으로 우승 질주에 함께 했던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덜컥 주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정도의 그릇이 아니라는 박찬호. 그렇게 또 다른 경험을 하면서 박찬호는 성장하고 있다.

최형우도 “겪어봐야 안다”라고 말한다.
“지들 야구 잘될 때는 안 물어보고 야구 안 될 때 물어본다”며 웃음을 터트린 최형우가 후배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겪어봐야 안다”.
“내가 한 것들을 이야기해 준다고 해도 똑같을 것이다. 정답이 없다. 미친 듯이 쳐야 할 때도 있고, 계속 쉬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것은 시합하면서 느껴보고 겪어봐야 한다. ‘무조건 쳐라’, ‘무조건 쉬어라’라고 말할 수 없다. 이야기를 해줘도 하나부터 백까지 듣는 애들은 없다. ‘알아서 느껴봐라’는 생각이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이런 것들은 스스로 느껴봐야 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겪어온 선배이고, 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 타자지만 야구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결국 스스로가 자기에게 맞는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게 최형우의 설명이다.
말은 이렇게 해도 다가오는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은 큰 형 최형우.
그는 한편으로는 ‘지도자’의 눈으로 후배들을 보게 된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최형우는 “요즘 애들 열심히는 한다. 경기 끝나고도 미친 듯이 친다. 상대 투수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도 물어본다. 후배들 잘하고는 있다. 하지만 성에 안 찬다. 미친 듯이 훈련하는데 그만큼 결과가 안 나오니까 애들도 답답하고 나도 답답하다. 애들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니까 코치, 감독 입장에서 보게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더 성에 안 차고 ‘더 이길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답답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충분히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춘 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최형우는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백문불여일견’이라는 걸 알기에 최형우는 기다리고 있다.

경험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물론 그 경험의 폭과 질은 다르다. 긴장감 가득한 1군 무대가 경험의 무대가 될 수 있고,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는 퓨처스리그가 경험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달려 베테랑, 슈퍼스타가 되는 경우는 없다. 많은 이들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발전했고, 성공한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면서 ‘주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KIA 선수들에게 질 좋은 경험을 할 있는 무대가 펼쳐졌다. 붙박이 주전들이 대거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많은 백업 선수들의 고민은 “지금 못하면 다음이 없다”라는 것이다. 타석에 서 있으면서도 다음 타석 걱정에 준비한 것을 제대로 못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팀 상황상 많은 선수가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다음과 다음이 경험으로 축적되면서 KIA는 다른 팀이 되어가고 있다.
위기가 그냥 위기로 끝난 게 아니라 바닥을 다지는 시간이 됐다. 이제 그다음 단계는 안 좋은 순간을 얼마나 빨리 털어내느냐이다.
최형우가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최형우는 “후배들이 업다운이 심하다. 누구나 타석에서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도 있다. 매번 잘할 수는 없다. 못 한 것은 빨리 잊고 타석에서 편하게 하면서 조금 더 기복의 폭을 줄이면 좋겠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투수들이 좋다. 그래서 믿고 있다”며 또 다른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KIA의 부상은 나빴다. 하지만 그 부상이 ‘경험’이라는 귀한 선물을 줬다. 그래서 나중에 돌아보면 더 극적인 KIA의 2025시즌이 될 수도 있다.
+직접 겪어 봐야 알지만, 모든 걸 다 겪지 않아도 더 빠르게 원하는 목적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온갖 경험을 통해 오늘에 이른 베테랑,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지름길이 보일 것이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