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도시 두 여자의 집밥이 전하는 따스한 위로

내란사태에, 제주항공 참사에, 사법부 테러까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어수선한 세밑 새해다. 마침 긴 설 연휴는 회복과 재충전의 기회다. 여러분들을 치유해줄 특효약 같은 오티티(OTT) 콘텐츠를 소개한다. 부디 근심과 시름을 잊는 시간이 되기를.
음식 만들기는 노모토(히가 마나미)에게 큰 즐거움이다. 근사한 요리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SNS)에도 올린다. 다만 아쉬운 건 자신의 식사량이다. 음식을 잔뜩 만들고 싶지만 혼자 사는데다 입도 짧아 그러질 못한다. 그런 노모토의 눈에 이웃집 여자 카스가(니시노 에미)가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카스가는 늘 푸짐한 음식을 손에 들고 있다. 노모토는 카스가에게 함께 밥을 먹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의 식사가 시작된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드라마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는 대도시에 혼자 사는 두 여자가 함께 집밥을 만들어 먹는 이야기다.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회당 15분 분량으로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두 주인공이 서로를 조심스럽게 배려하는 무해한 내용이다. 오므라이스, 돼지고기 덮밥, 미트볼 스파게티 등 요리 장면은 식욕을 자극한다.
여성과 음식을 둘러싼 편견도 꼬집는다. 회사에 도시락을 싸 오는 노모토에게 직장 동료들은 ‘남편 될 사람은 좋겠다’고 말한다. 노모토는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요리가 남자를 위한 일로 여겨져 속상하다. 좋은 음식은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돌아가는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카스가는 양껏 음식을 먹지 못한 설움이 있다. 둘은 이런 속내를 털어놓으며 해방감을 느끼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애정을 키워나가는 지엘(GL·걸스 러브)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티빙·웨이브·왓챠에서 볼 수 있다.

천재를 낳아서 키우면 얼마나 행복할까? 많은 부모가 이런 환상을 품지만 진저리를 치면서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셸던 쿠퍼의 부모다. 셸던 쿠퍼? 맞다. 인기 시트콤 ‘빅뱅 이론’의 그 잘난 척하고 눈치 없으며 노벨상을 수상한 천재 과학자 셸던 쿠퍼(짐 파슨스)다. 지난해 시즌7로 마무리된 ‘영 셸던’은 셸던의 9~15살 성장기를 그린 스핀오프 드라마다.
텍사스의 평범한 가정의 셸던(이언 아미티지)은 월반해서 고작 9살에 형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부모에게 큰 자부심일 것 같지만 잘난척쟁이에 이기적인 셸던을 키우는 건 여느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10배는 고난도다. ‘영 셸던’은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이전의 세상에서 가족이 함께 티브이 보고 식사하며 지지고 볶고 위기에 함께 머리를 맞대던 시절의 이야기다.
늘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는 할머니와 믿음직한 부모, 아웅다웅하는 형, 쌍둥이 여동생과 살아가며 셸던은 그저 머리가 비상한 천재에서 배려와 우정 같은 인간적 가치를 익혀가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영 셸던’은 진하고 강렬한 드라마가 진을 친 요즘 티브이에서 대단할 것 없는 에피소드들을 엮으며 순한 웃음과 함께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떼돈을 벌기 위해 빨래방으로 위장한 불법도박장을 운영하는 ‘야심캐’이자 아이들의 구루인 할머니의 활약이 ‘킬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미치광이가 붓질한 그림. 권총을 쏘아 스스로 삶을 마쳤다는 요절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명작들엔 이런 편견이 따라다닌다. 동료 폴 고갱과의 언쟁 끝에 귀를 자르는 등 여러 기행이 전해지지만, 단순 광기의 산물로 재단하는 건 금물이다. 원색의 단선과 점들을 집약해 섬광처럼 수놓은 인간 군상과 풍경 화면은 고도의 이성적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강요배 화가는 단언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 또한 미치광이 천재라는 식의 편견을 걷고 투시한 고흐 삶의 내면 이야기다. 125명의 화가가 10년간 원작을 토대로 작업한 6만장 넘는 유화들이 꿈틀거리면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아를의 우편배달부 룰랭의 아들 아르망이 고흐의 사후 뒤따라 세상을 뜬 동생 테오의 부인에게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전해주러 떠난다. 주변 인물들 증언을 들으며 자살설에 얽힌 미스터리와 거장 삶에 깃든 진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들이 펼쳐진다.
마지막 장면, 아를로 귀환한 아르망은 밤 부둣가에서 아버지 룰랭과 별을 올려다보며 고흐의 편지 끝자락을 읽는다. ‘왜 우린 창공의 저 별에 닿을 수 없을까? 혹시 죽음이 우릴 별로 데려가는 걸까? 편안히 죽으면 저기까지 걸어서 가는 거야.’ 화면은 고흐 원화 속 일렁거리는 밤하늘의 별들로 서서히 올라가다 이내 고흐 자화상으로 바뀌면서 솔 가수 리앤 라 하바스의 노래 ‘빈센트’가 뒤따라 흐른다. 형언하기 벅찰 만큼 눈과 귀에 와닿는 울림이다. 왓챠에서 볼 수 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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