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종의 아디스 레터]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가장 큰 효도

유덕종 의사 2026. 6. 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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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수막염으로 사경을 헤맨 딸,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성공 따위 중요하지 않아… 가장 큰 효도는 건강히 살아 있는 것
일러스트=이철원

에티오피아 짐마(Jimma) 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성실한 내과 수간호사가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어린 아들이 급성 백혈병에 걸려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급히 달려간 소아과 병실, 닫힌 문틈 사이로 본 그는 네댓 살 아이를 품에 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아이는 고통을 견디기 힘든지 미간을 찌푸린 채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아이의 상태를 물었다. 그는 젖은 목소리로 “이제 곧 항암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며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 흐느낌을 마주한 내 마음도 천근만근 무겁게 내려앉았다. 고통받는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 심정이 어떠한지, 그 처절한 무력감을 나 역시 뼈저리게 겪어보았기 때문이었다.

우간다에서 사역하던 시절, 딸아이가 뇌수막염이라는 사선(死線)에 선 때가 있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병원은 국립 최종 후송 병원이었지만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열악했다. 중환자실에 인공호흡기는커녕 산소탱크조차 없었고, 필수 의약품도 구비되지 않았다. 뇌척수액을 뽑아내야 할 요추 천자용 바늘이 없어 일반 주사기 바늘을 써야 했고, 항바이러스제는 병원뿐만 아니라 수도 캄팔라 시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집 안방을 임시 중환자실로 만들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캄팔라의 칠흑 같은 밤,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모기장 안에서 아이를 지켰다. 머리맡에 항경련제 주사를 두고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약물을 투여했다. 젖은 수건으로 아이의 뜨거운 몸을 닦아내며 밤을 지새웠지만,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학 교과서에서나 본 뇌 손상을 의미하는 ‘수직안진(Nystagmus)’ 증상을 딸의 눈동자에서 발견했다. 의식은 점차 멀어졌고, 임종 직전의 환자들이 내뱉는 거칠고 불규칙한 체인스톡 호흡이 시작됐다. 수많은 환자가 이 호흡 후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는 것은 보았어도, 소생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절망은 예리한 칼날처럼 심장을 파고들었다. 옆에서 우는 아내를 달래려 했지만 실상 나 자신도 가눌 길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1992년부터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유덕종 교수가 2002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세운 베데스다 클리닉. 고아원은 물론 난민촌이나 오지를 찾아가 무료 진료를 한다. /유덕종 제공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사흘간의 사투 끝에 아이의 호흡이 평온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회복은 더디고 고통스러웠다. 아이는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누워만 있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설사 평생 걷지 못한다 해도, 내 곁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기적은 멈추지 않았다.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퇴근해 방에 들어가니 딸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침대 머리에 앉아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직 몸을 잘 가누지 못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딸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웃음과 울음이 교차했다.

그 시련은 고귀한 깨달음을 선물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가장 큰 효도는 그저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였다. 숨이 막혀 봐야 공기의 소중함을 알듯, 아이를 잃을 뻔한 벼랑 끝에 서고서야 생명의 본질을 보았다. 그전까지는 사랑이란 미명 아래 아이에게 내 욕심을 투영하고, 남보다 앞서가길 바라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 아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는 일상 자체가 매일의 경이가 되었다. 성공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짐마 병원 수간호사의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몇 달 후 다시 마주한 그의 얼굴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애쓰는 그의 눈가에는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슬픔을 안고 남은 생을 견뎌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투사한다. 이른 나이부터 치열한 경쟁의 정글로 내몰고, 성적으로 줄을 세우며 부모와 자식 모두가 피곤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자식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어본 부모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내 곁에 머물러주는 것보다 더 위대한 효도는 없다는 사실을.

어느덧 서른을 넘긴 아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의 삶을 일구고 있다. 남들처럼 결혼 소식을 들려주거나 손주를 안겨주는 ‘살가운 효도’와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서운하지 않다.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기도는 충분히 응답받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가장 빛나는 효도이자 엄청난 축복이다. 지금 당신 곁에서 건강하게 웃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가장 큰 복을 받은 부모다.

☞의사 유덕종

1992년 ‘정부 파견 의사’ 1기로 선발돼 우간다로 갔다. 계약을 연장하며 아프리카에 남았고 지금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길러낸 의사만 4000명. 아산상, JW성천상 등을 받았다. 현지에선 아디스아바바를 줄여 아디스라 부르는데 ‘아디스 레터’는 그곳에서 띄우는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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