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신혼가정 ‘서류상 남남’ 만드는 내 집 마련 ‘결혼 페널티’
부동산 열풍에 청약·세재 불이익 회피 목적 혼인신고 기피…사실혼·비혼출산 역대 최대
부동산 과열 현상이 가족에 대한 가치관까지 뒤흔들고 있다. 사회적인 인정 외에 법적인 인정까지 받아야 진정한 가족이라는 인식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현행 부동산 관련 법·정책 상 혼인신고를 하면 오히려 혼자일 때에 비해 더욱 불리한 것들이 많다며 일부러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혼인신고 시 내 집 마련에 불리하게 적용한다는 인식은 ‘결혼 페널티’라는 신조어를 통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혼과 동시에 ‘생애최초’ 특공 기회 반으로 뚝…청년세대에서 부는 ‘늦은 혼인신고’ 바람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23년 출생통계(확정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법적 비혼 관계에서의 출산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13년 9300명에서 2020년 6900명으로 줄었다가 2021년 7700명, 2022년 9800명 등에 이어 지난해 1만900명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혼인 외 출생아가 전체 출생아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4.7%로 전년 보다 0.8%p 증가했다.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다.
최근 들어 비혼 출산이 급격하게 늘어난 배경에는 혼인신고를 늦추거나 아예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후 혼인신고까지 2년 이상 걸리는 지연신고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대부터 줄곧 5%대를 유지하던 지연신고 비율은 2021년 7.06%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8.15%까지 상승했다.
주목되는 점은 혼인신고를 기피하는 요인 중 하나가 수년째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부동산 열풍과 관련 깊다는 것이다. 최근 청년세대 사이에선 내 집 마련 확률을 높이고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혼인신고를 최대한 미루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부동산 관련 제도나 법이 부부 보단 개인에게 유리하게끔 설계돼 있다며 ‘결혼 페널티’ 운운하는 목소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현행 부동산 관련 법·제도 중에는 혼인신고를 하면 혼자일 때 보다 더욱 불리하게 적용되는 것들이 일부 존재한다. 일례로 생애최초 특별공급의 경우 개인이 아닌 세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각각 한 번씩 총 두 번 있는 기회가 혼인신고를 할 경우엔 한 번으로 줄어든다. 바늘구멍 확률을 뚫기 위해선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부부가 따로 도전할 때 가능성이 두 배로 높아지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취득세 감면, 대출한도 상향 등 ‘생애 최초’ 혜택도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어든다.
혼인신고 전 남성과 여성 둘 중 한 명이라도 주택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엔 ‘결혼 페널티’가 더욱 크다. ‘생애 최초’ 혜택을 받을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무주택자의 경우 생애최초 주택구입 시 취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유주택자와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 무주택자 역시 유주택자로 간주돼 혜택에서 제외된다. 만약 두 사람 모두 혼인신고 전 청약에 당첨돼 집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1가구 2주택으로 간주돼 1가구 1주택자에게만 적용되는 종부세 비과세(12억원 이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서울소재 한 대기업 본사에 재직 중인 김재원 씨(38·남·가명)는 “3년 연애 후 지난해 결혼했지만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며 “혼인신고를 하면 생애최초 특별공급 청약 기회가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가뜩이나 바늘구멍인 청약당첨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와 생애최초 특별공급 청약에 도전해 최소한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당첨되기 전까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소재 한 중소제조업체에 재직 중인 이혜정 씨(33·여·가명)는 “우리 부부는 남편이 결혼 전 시댁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이 한 채 있고 나도 결혼 전에 모아둔 돈으로 구매한 집이 한 채 있다”며 “혼인신고를 하면 1가구 2주택이 돼 세금이나 이런 부분에서 불이익이 생기다 보니 아직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5살짜리 아들을 지금은 남편 호적에 올려둔 상태인데 초등학교 입학 전엔 어떻게든 해결을 할 생각이지만 아직까진 이렇다 할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 부동산 관계자는 “자주는 아니지만 결혼을 앞두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주택을 처분하는 문제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며 “대부분 결혼 후 생애최초 특공 자격을 문의하는데 대부분 설명을 듣고 돌아갈 때는 혼인신고를 늦추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골 손님들 중 자녀가 결혼 후 출산까지 했는데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미혼일 때 집을 물려준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혼인신고를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해질 경우 종국엔 가족에 대한 가치관까지 흔들릴 수 있다며 빠르게 증가하는 이혼율을 조금이라 낮추기 위해선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서둘러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은 사회적인 인정과 법적인 인정을 동시에 받아 성립되는 것인데 둘 중 하나라도 결여돼 있다면 결혼을 포기하는 것도 그만큼 쉬워질 수밖에 없다”며 “소중한 인연의 연결고리를 집 문제 때문에 허술하게 방치하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