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우리금융 과점주주‧이사회는 뭐했나

한투 키움 푸본 유진 주인 역할 전혀 못해

“前회장 때 일부 사외이사 인사청탁” 증언

‘선진 지배구조’는커녕 ‘끼리끼리 나눠먹기’

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임기 만료되는 사외이사들부터 자신과 인연이 있는 가까운 사람들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들이 나중에 회장 추천위원으로서 인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룹의 핵심 요직에는 학연 지연 등을 기반으로 충성심을 발휘할 사람들로 그야말로 ‘참호’를 구축합니다. 회장 선임 때 잠재적 경쟁자인 은행장은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순종적이고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앉힙니다. 심하면 은행장을 지주 이사회 멤버에서 배제해 사외이사들과의 접촉을 차단합니다. 자신의 급여와 성과급은 관련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기준을 바꿔 최대한 올립니다. 이런 과정에서 비판적인 언론이 있으면 광고‧협찬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로펌을 동원해 명예훼손 등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을 잘 준비해 실행하면 연임은 기본이고 금융당국이 제동만 걸지 않으면 3연임도 가능합니다. 퇴임할 때는 절대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후임 행장으로 앉히고 퇴임 후에는 상근 고문 등을 맡아 현직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습니다. 주요 인사에도 한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모든 금융그룹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 금융그룹에서 이런 일이 현재 진행형입니다. 주목을 덜 받는 지방 금융지주일수록 더 심합니다.

금융당국도 이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내놓은 게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 모범관행’입니다.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금융지주 CEO가 별다른 검증 없이 연임하거나 후계자 선정에 입김을 행사해선 안된다. 회장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이사진을 구축하고 이사회 기능을 마비시키는 ‘참호구축’ 등의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이사회는 현직 CEO나 해당 회사의 거수기 역할을 해선 안 되며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지주 회장 마음대로 은행 증권사 등 주요 계열사 CEO를 선임해선 안 된다.”

이 같은 ‘지배구조 모범관행’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나요?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이사회가 CEO나 회사의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고 독립성을 지키고 있나요?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국내 은행계열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갖춘 회사는 요즘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금융입니다. 은행에 주인을 허용하지 않는 현실에서 5곳의 과점주주들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2016년 금융위원장 재임 당시 우리금융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야심차게 도입한 ‘선진적 지배구조’입니다.

과점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는 주인 없는 은행에서 제기되는 ‘대리인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도 “과점주주들이 기업가치 제고라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집단지성과 경험을 통해 합리적인 경영을 추구할 것이고,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 중심의 경영지원 체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과점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도입한 우리금융은 지난 8년간 다른 금융사들과는 다른 성과를 냈나요?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KB 신한 하나 우리금융 가운데 경영실적은 물론 주가 등 모든 지표에서 우리금융이 가장 뒤집니다. 손태승 회장 시절만이 아니고 취임 후 1년 반이 지난 임종룡 회장 체제에서도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과점주주로 들어왔던 곳 중에서 한화생명과 동양생명이 이탈했고, IMM PE도 지분을 대폭 축소했습니다. 중간에 푸본그룹과 유진PE가 새로 들어와 현재 우리금융의 과점주주는 중심적 역할을 하는 한국투자증권(사외이사 정찬형, 이사회 의장)을 비롯 키움증권(윤수영) 푸본현대생명(윤인섭) 유진PE(신요환) IMM PE(지성배) 등입니다.

과점주주 중심의 선진적 지배구조에서 우리금융은 경영 성과만 뒤진 게 아닙니다. 사건 사고도 가장 많았습니다. DLF 사태를 비롯 기업개선부 직원 700억원대 횡령 사고, 김해지점 180억원대 횡령에 이어 전 회장 친인척 대출에 이르기까지 끊임이 없습니다.

이 중에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손태승 전 회장 관련 사고입니다. 과점주주들과 이사회만 제 역할을 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태승 전 회장 시절 그와 대척점에 섰던 권광석 전 행장 등 몇몇 인사들은 여러 차례 손 회장 처남 및 부인 관련 대출에 대해 사외이사들과 과점 주주에게 얘기했던 것으로 증언합니다. 그러나 내부 고발은 무시당했고, 조직 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오해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현직 회장의 부인과 처남의 대출과 관련된 일이라면 아무리 적법하게 규정대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또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해소해야 하는 게 금융의 상식입니다. 설령 헛소문이라도 이사회가 정식 나서 진위를 확인해 달라고 집행부에 요청해야 합니다. 왜 과점주주도 사외이사들도 내부 고발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모른 척했을까요?

당시 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들의 증언은 이렇습니다. “과점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들이 국내외 출장이라도 가면 금융지주에서 깎듯이 챙겼다. 심지어 일부 사외이사는 인사철이 되면 인사청탁까지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우리금융 사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끼리끼리 나눠 먹기 문화가 팽배해 있고 조직 개혁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질타했습니다. ‘끼리끼리 나눠 먹기 문화’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금융 과점주주와 사외이사들이 주인으로서 제 역할은 하지 않고 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서로 눈 감아 주거나 나눠 먹고 말았을까요? 결정적인 이유는 이사회 의장을 맡은 한투증권을 비롯 키움증권 푸본현대생명 유진 PE IMM PE에 이르기까지 과점주주가 모두 국내 금융사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서로 너무 잘 아는 사이다 보니 집행부 견제보다는 ‘적당히 주고받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특히 이런 문화는 금융위원장 출신의 임종룡 회장이 취임한 후에는 집행부의 눈치를 보는 관계로까지 변합니다. 이는 우리금융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우리금융 과점주주가 국내 금융사만으로 구성되지 않고 외국계 자본이나 외국계 PE가 일부 참여했다면 지금처럼은 안 됐을지도 모릅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임종룡 회장 조병규 행장 등 현 경영진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경영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이사회나 주주들이 묻는 게 맞고, 판단은 주주와 이사회가 할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금융 대표 주주인 과점주주와 사외이사들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지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금융 사외이사들의 입장은 언론에 대한 개별 접촉은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게 전부입니다. 결국 감독당국이 나서지 않고는 이번 사태는 수습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해결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지난주 금융계에서는 임종룡 회장 사의설이 급속 확산됐지만 이사회는 ‘노코멘트’로 일관합니다.

이번 우리금융 사태와 관련해 가장 크게 책임을 물어야 곳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투 키움 푸본 유진 IMM 등 과점주주와 손태승 회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외이사를 맡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집행부의 ‘거수기’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감시자와 견제자로서 제 역할만 했다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태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선진적 지배구조라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과점주주 중심 지배구조의 실패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체제에서 입증했다는 점에서 큰 불행이자 역설입니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우리금융은 지배구조를 다시 짜야 합니다. 보험사나 증권사를 인수하고 키우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박종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