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축이다!

[최수범 한국북극항로협회 사무총장]

'경제성' 보다 더 중요한 '예측성'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라는 글로벌 교역의 두 대동맥이 기후와 지정학 변수에 흔들린 지난 몇 해는, 해운·무역국가의 생존력이 ‘대체경로’ 보유 여부에 좌우됨을 확인시켰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대체 해상회랑(回廊)은 필수적인 보험이다. 이 맥락에서 북극항로는 선박의 운항비용·운항일수·탄소배출량을 동시에 줄이는 실물경제적 대안으로 재평가된다.

다만 경제성은 ‘거리 단축’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예측가능한 제도(규제)와 데이터(해빙·기상·운항), 그리고 합리적 외교 조건이 결합할 때 수익성으로 귀결된다. 본 칼럼은 북극항로의 경제적 기회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외교적 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먼저 경제성이다. 싱가포르를 거쳐 북유럽으로 향하는 구간에 비해 북극항로는 항로 길이와 항해 일수를 유의미하게 줄인다. 그 효과는 연료비·운항비 절감과 탄소배출 저감으로 나타나며, 이는 운임협상의 레버리지가 된다. 관건은 선박의 항차 예측성(predictability)이다. 북극의 계절성과 유빙·기상 변동, 통행료·쇄빙 지원비, 특수보험 등은 총비용을 끌어올린다. 따라서 선사는 운항 가능 기간, 유빙의 정도, 기상·해상 상태를 사전에 합리적으로 가늠할 수 있어야 선적계약과 본선의 운항스케줄을 확정할 수 있다. 이 예측성은 데이터·제도·서비스의 품질에서 나온다. 위성·관측 기반의 고해상도 해빙 데이터와 최적 항로 제시, 통행·항만 절차의 표준화, 빙해 도선사, 수색·구조(SAR) 및 구난(Salvage) 서비스의 상시 가용성은 ‘거리 단축’을 현금흐름 개선으로 전환하는 필수적 투자요소다.

북극해를 지나는 선박.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탄생한다

둘째, 북극항로의 가치는 단순 운송에 그치지 않는다. 북극권의 에너지와 광물 자원 접근은 공급망 다변화와 전략 소재 내재화의 기회다. LNG·석유·니켈·희토류 등은 한국 제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북극항로 활성화와 북극 자원 접근이 병행될 때, 물류–가공–금융이 결합한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작동한다.

이 지점에서 항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부산은 유럽과 아시아의 환적 수요를 흡수하는 고효율 환적 허브로서 항만의 역량 확충과 디지털 트윈 기반 운영 최적화로 선박의 정시성과 화물 처리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울산과 여수·광양은 LNG에서 메탄올·암모니아·수소 산업으로 이어지는 친환경 연료 벙커링(bunkering) 사슬을 구축하고, ‘선박을 건조하고 급유해 북극으로 보낸다’라는 건조–연료–운항의 선순환을 완성해야 한다.

포항(영일만)은 철강·소재(이차전지) 클러스터의 이점을 살려 벌크화물과 자원 물류를 특화하고, 북극빙해 운항·소재 가공·북극항로 안전을 통합하는 북극 전문인력양성과 R&D의 거점으로 기능할 때 가치가 확장된다. 국내 항만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묶는 통합 물류·통관·정박 정보 플랫폼은 가치 극대화의 관건이다.

같은 선박이 부산에서 환적을 마치고 울산과 여수·광양에서 친환경 연료를 보급받아 포항으로 원자재를 내리는 흐름이 단일 데이터 인프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일, 그것이 ‘팀 코리아(Team Korea)’ 전략의 실체다.

대한민국만의 강점이 관건이다

셋째, 한국의 기술력은 북극항로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자산이다. 조선 부문에서는 빙해강화 선체 구조, 저탄소 추진체계 등에서 세계적인 초격차를 확보했다. 쇄빙LNG 운반선과 고(高) 대빙등급(ice class) 상선의 설계·건조·시운전 경험은 경쟁국이 단기간 따라오기 어렵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위성·해빙·기상 데이터를 융합해 최적항로를 제시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디지털 항해지원은 이미 실선 적용의 단계에 들어섰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안전·효율 솔루션을 서비스로 제공하면, 한국은 단순 이용자가 아니라 모든 이용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조력자(enabler)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계약·보험·검사·표준의 영역에서도 한국의 발언권을 높여준다.

외교적 과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이제 외교적 과제다. 첫째, 제재·규정 환경 관리가 출발점이다. 현행 대(對)러 제재는 항만·보험·결제·기자재 공급을 제한한다. 한국은 국제규범을 준수하면서 합법적이고 투명한 참여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북극항로 통행·항만 절차의 사전 검증, 선박·화물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점검, 계약·보험 조항에 환경·투명성·데이터 공개를 내재화한 표준계약서 패키지를 마련하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둘째, 거버넌스 공백을 보완해야 한다. 북극이사회 기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의제별 다층 외교가 현실적이다. 항행 규칙·안전·환경·데이터를 축으로 중국·일본·EU 등 이용자 국가들과 이용자 포럼을 구성해 공동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규범 수용자에서 규범 형성자로 이동할 수 있다. 한국선급과 산업계·학계가 함께 극지 설계·운항 가이드라인을 국제표준으로 제안하는 것도 유효하다.

한-러 협력 어떻게 만들어갈까

셋째, 관계 복원이 가시화될 때의 한–러 협력은 단계적이어야 한다. ① 공익·저위험 분야(해빙·기상 데이터 공유, 항로 안전 정보, 연구·교육 교류)로 신뢰를 쌓고, ② 서비스 협력(항만 운영, 통관·검역 표준화 시범, 구조·구난 공동훈련)으로 확장한 뒤, ③ 본격 상업 협력(쇄빙·친환경 선박, 장기 구매계약(오프테이크))으로 진입한다. 전 과정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투명회계를 의무화해 리스크를 제도화한다. 이러한 세 단계는 무리하지 않되 멈추지 않는 속도로, 여건 변화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용하면 된다.

국가 내부의 추진체계도 정리할 때다. 정부내 부처별로 분절된 접근은 속도와 일관성을 떨어뜨린다. 대통령(또는 총리) 직속 국가 북극항로위원회를 법으로 제도화하고, 예산·R&D·민관 협력의 단일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위원회는 항로 개척을 목적화하지 말고, 조선·물류·에너지·제조·금융을 관통하는 정책패키지 안에서 북극항로를 다뤄야 한다.

기술 로드맵은 선박(PC3→PC2 등급), 연료(LNG→메탄올·암모니아·수소), 디지털(차세대 항해지원·예지정비·탄소 MRV 자동화)로 층위를 나눠 마일스톤을 제시하고, 공공–민간이 역할을 분담해 빈틈을 채워야 한다. 인력 측면에서는 극지 공학·빙해 항해·해사법·탄소 회계가 교차하는 융합 트랙을 대학·대학원 단계에서 제도화하고, 현장형 도선·검사(선급)·보험 현장형 전문인력의 양성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비와 시스템이 실제 현장에서 ‘운용’된다.

전통을 존중하는 해사 세계의 관행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항해와 항만은 법과 관례의 집적이며, 북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선하증권·용선계약·보험증권·선급증서라는 문서의 질서가 맞물릴 때 선박은 움직인다. 한국은 법·표준·문서의 질을 앞세워 신뢰를 축적해야 한다. 환경 책임 역시 경제의 한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 메탄 배출과 블랙카본 저감, 연료 규제 준수, 원주민(Indigenous people) 공동체와의 협력은 ‘좋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비용·보험·평판 리스크를 낮추는 사업 요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을 계약과 절차에 선제적으로 내재화하면, 한국은 '깨끗하고 투명한 파트너'라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협상에서 시간을 절약한다.

밀어붙일 집행력을 세울 때다

결론은 간명하다. 북극항로의 경제성은 수익성이 아니라 ‘예측성(predictability)’에서 결정된다. 예측성은 제도·데이터·신뢰에서 나오고, 이는 곧 외교의 성과다. 실행의 순서는 분명하다. 컨트롤타워 법제화 → 기술·데이터 인프라 확충 → 항만 클러스터 일체화 → 규범·표준 외교 주도 → 단계적 한–러 협력의 상업화.

지금 필요한 것은 가능성을 설명하는 보고서가 아니라, 이 다섯 단계를 일괄 패키지로 밀어붙이는 집행력이다. 북극항로는 한국의 해운·조선·에너지·데이터 산업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성장축을 열 수 있다. 투명성과 환경책임을 앞세우면, 우리는 북극에서 신뢰받는 이용자이자 규범 설계자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를 우리 경제의 글로벌 물류 리스크를 흡수하는 상시 운용 가능한 대체 해상회랑으로 편입하고, 대한민국의 차세대 핵심 성장동력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 최수범 한국북극항로협회 사무총장은 2016년 세계 최초로 아시아에서 출발해 북극항로와 러시아 내륙수로를 연계하는 ‘북극항로 상업 운항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이후에 대학원에서 해수부의 지원을 받아 북극원주민을 초청하여 전액장학금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미래의 북극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립인천대학 물류대학원 북방물류사업단 부단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