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단 환자들은 전시상황···전공의, 제발 돌아와주길"
루게릭병 등 희귀질환자 불안 커
응급변수 많아 "아프지 않길 기도"
아동복지학회·장애인연합회 등
"건강권 지켜달라" 공백 우려 성명
“병원 갈 일이 생기면 끝이라고 외줄타는 심정으로 의사들의 집단 행동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들은 순간적으로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 하기 때문에 지금은 그야말로 전시 상황입니다.”
25일 한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환자의 보호자가 최근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등으로 벌어진 의료 대란을 바라보며 전한 심경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행동에 들어간 지 일주일째 환자들의 고통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루게릭병처럼 언제든 상태가 나빠질 수 있는 희귀질환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평소 다니던 대학 병원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루게릭병이란 대뇌와 척수 이상으로 근육이 약화되고 쇠약해지며 온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희귀질환이다. 루게릭병이 진행되면서 호흡에 사용되는 근육도 점점 약화되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호흡을 도와주는 인공호흡기를 사용한다. 식사하기가 불편해 유동식을 배에 직접 넣는 관을 삽입한 환자들도 많다. 주기적으로 이런 기기를 교체해야 하고 응급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변수가 많다.
이 루게릭병 환자 보호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갑자기 아프지 않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며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에 가도 ‘의사가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라고 하면 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사들도 언젠가는 환자가 될 텐데 저렇게 환자 목숨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나 생각 든다”면서 “나이 들어 노인이 됐을 때나 아이들을 생각하면 의사 증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어떻게든 빨리 타협이 됐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비영리 단체인 승일희망재단의 박성자 상임이사도 “혹시라도 환자의 호흡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을 찾으러 돌아다닐 수 있는 여유가 없어 환자들과 환우회 분들이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며 “응급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지금은 구급차를 타도 병원을 찾기 어렵고 기존에 다니던 병원 내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의료진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야 하는 당원병 환자들의 불안감도 크다. 당원병이란 선천적으로 체내에서 당을 만들지 못하는 탄수화물 대사 이상 질환이다. 당뇨병과 유사하게 적정 혈당을 꾸준하게 유지하지 못하면 저혈당 쇼크가 올 수 있다. 강원도 인제에 거주하는 김은성 한국당원병 환우회장은 “주치의 교수님은 평소에도 주변 지역 내 의사 부족으로 주 3회씩 당직을 서고 야간 당직 때 경북이나 강릉에서 몰려오는 환자들을 받곤했다”며 “지금은 교수님의 당직이 더 늘어나고 업무 부담이 너무 커져 차마 연락을 못 드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회장은 이어 “당원병 환자들은 급한 수술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병원에서 전분 처방이나 혈액검사 결과에 따라 식단 플랜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점이 가장 불안하다”면서 “특히 학교나 어린이집 신학기를 앞두고 교수님과 아이들의 밥 먹는 시간, 약 먹는 시간 등을 일대일 상담해야 하는데 소통이 끊기면 아이들 혈당이 40~50씩 순식간에 떨어지는 저혈당 쇼크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헌신하는 교수님이 계시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교수님의 건강이 악화할까봐 두려움이 크다”며 “환자들을 위해 정부와 의사들이 조금씩 양보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아동복지학회는 이날 ‘아동의 건강권을 지켜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최근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과 관련해 전공의 선생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 치료가 필요한 우리 사회 많은 아동들이 심각한 의료공백 상황에 놓일 위기에 있다” 면서 “특히 자라나는 아동들에게 적절한 시기의 치료는 아동과 가족의 삶의 질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만큼 전공의 선생님들께서 하루 속히 치료 현장으로 복귀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현합회도 “장애인들은 평소에도 이동이 어려워 병원에 가기조차 힘들고 지방에서 오거나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외래 진료를 예약하기 위해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번 의료 공백 사태로 더 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노력해 의료 공백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환자들이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박홍용 기자 prodigy@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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