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KBS 공채 20기 아나운서로 데뷔했습니다. 앞서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했지만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탤런트 활동을 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집에서 선생님을 시키려고 하는 바람에 못하게 됐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든 직업을 못하게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나운서로 활동하던 임성민는 2001년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배우로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강남엄마 따라잡기', '공부의 신', '아내의 자격', '가족을 지켜라' 등에 출연하며 연기활동을 이어왔습니다.

2011년 43세에 미국인 대학교수와 결혼발표한 임성민 소속사 측은 “임성민과 예비신랑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늦은 결혼식인 만큼 축하해 달라”라고 밝혔습니다.

임성민의 예비신랑은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고급영화제작수업을 가르치고 있는 마이클 엉거 교수로 미국 아이비리그의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뉴욕 필름 아카데미 부학장을 지냈습니다. 또 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전공했습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엉거 교수는 집안도 화려했는데요. 엉거 교수의 아버지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변호사이자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이며, 어머니는 미국의 유명한 식품회사인 레드닷그룹 창업자의 하나뿐인 딸로 동양 화풍의 영향을 받은 화가였습니다.

임성민은 "남편과 연애 당시에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결혼 날짜를 잡고 나니 우리 식구라고 생각되어 시어머니께서 집안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임성민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남편의 재력을 언급하며 부자들만 사는 동네인 케임브리지에 시댁이 있다고 밝히며 "아마 유산은 조금 받을 것 같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습니다.

임성민, 국제결혼 9년 차에 1년째 별거 중…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뉴욕에서 꿈을 향해 쏘다 - 배우 임성민’ 편이 방송됐습니다. 처음 만난 이후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며, 운명적으로 서로에게 끌렸고, 마이클 엉거 교수는 임성민과의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한국행을 결심하는 등 사랑에 푹 빠져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7년 뒤 임성민은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사랑을 위해 서울로 온 뉴욕 남자를 두고, 꿈을 위해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배우로서의 도전,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를 서는 꿈을 펼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임성민은 “저는 어렸을부터 세계적인 무대에 서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임성민은 쉰이 넘은 나이에 연기를 배우기 위해 1년째 뉴욕에서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임성민의 뉴욕 유학으로 인해 56세인 남편 마이클 엉거 교수와는 현재 1년째 별거 중이었습니다.

아내의 도전을 차마 막을 수 없어 한국에 남은 임성민의 남편 마이클 엉거는 “아내는 지금 뉴욕에 있고, 집안 곳곳 사진들이 아내를 더 생각나게 한다”라고 그리움을 드러냈습니다.

한편, 임성민은 남편 마이클 엉거와 2008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각각 영화제 진행자와 영화사 홍보직원이었던 두 사람은 결혼해 부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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