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이 외치는 "올 때 메로나"..빙그레, K디저트의 역사를 쓰다

한국의 식품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K푸드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국내 기업 성공기를 전합니다.

"올 때 메로나"

언어가 문화를 지배하는 법. 언제부턴가 먼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 "메로나를 사오라"는 말로 배웅을 하는 건 유행어를 넘어 한국 MZ세대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메로나처럼 특정 제품이 특정 상황을 상징하는 관용어가 되어버린 케이스는 전 세계 언어의 역사를 뒤져봐도 드물다. 그것도 라면이나 즉석밥처럼 끼니를 해결하진 못하는 필수 식료품이 아닌, 메론 맛이 나는 바(Bar) 형태의 아이스크림이.

메로나를 소재로 관용어가 생길 정도로 '국민 아이스크림'의 자리를 오랜 세월 지킨 빙그레의 메로나가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K디저트의 대표주자로 거듭나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 아이스크림 수출액의 3분의 1은 '메로나'였다. 1995년 하와이 수출을 시작으로 브라질·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메로나는 이제 전 세계 22개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세계인들은 어떻게 "올 때 메로나"를 외치게 되었을까.

'32년째 스테디셀러' 메로나

수출용 메로나 이미지. (사진=빙그레)

메로나의 글로벌 인기는 탄탄한 내수 시장의 판매에서 비롯된 결과다. 12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기업의 아이스크림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9.8% 증가한 5900만달러(약 783억원)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빙그레의 아이스크림 및 기타 수출액은 466억원으로 국내 아이스크림 수출액의 약 60%를 차지했다. 특히, 빙그레의 대표 아이스크림 제품인 '메로나'는 빙그레 전체 아이스크림 수출액의 62.2%, 국내 아이스크림 수출액의 37.0%에 해당하는 290억원의 해외 매출을 올렸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 매출(220억원)을 넘어선 수치다.

메로나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범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스테디셀러다. 메로나는 지난 1991년 빙그레 신제품 개발 담당자가 시장 조사차 방문한 동남아에서 멜론을 접한 뒤, 이전엔 느끼지 못한 신선하고 달콤한 맛을 아이스크림에 적용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메로나는 1992년 출시와 동시에 '대박'을 쳤다. 당시 국내에선 멜론이 워낙 고급 과일로 여겨졌던 터라, 멜론맛 아이스크림이 나왔다는 소식에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출시 첫 해 메로나는 총 1억 7200만개의 판매고와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이듬해 2억 8600만개의 판매 실적과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통계청의 주요 인구지표에 따르면, 1993년 국내 총인구는 약 4419만명으로 한 사람당 일 년에 약 6.4개의 메로나를 소비한 셈이다.

1994년엔 메로나가 부라보콘 및 더블비얀코 등 경쟁사들의 제품을 제치고 국내 매출 1등 아이스크림이 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매년 상위권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메로나의 국내 매출은 237억 9100만원으로 투게더·붕어싸만코 등을 이은 5위로 집계됐다.

2014년부턴 '올 때 메로나'라는 말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메로나라는 상품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도 출시됐다. '메로나 칫솔', '메로나 아이스 북 박스', '메로나에 이슬', '메로나 뚜레쥬르 케이크' 등 공산품부터 메로나를 이용한 칵테일, 메로나 빙수 등 음식 레시피도 알려졌다. 특히 2017년 메로나가 휠라코리아와 협업해 제작한 신발 '코트디럭스 메로나'는 출시 2주 만에 초도 물량 6000족이 완판되며 화제를 모았다.

"하와이, 브라질, 미국까지"… 메로나의 해외 영토 확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오리지널 메로나, 메로나 딸기맛, 메로나 코코넛맛, 메로나 망고맛, 메로나 타로맛 이미지. (사진=빙그레)

메로나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입맛은 알고 보니 인류 보편적 취향이었다. 메로나의 해외 수출은 1995년 미국 하와이에서 우연히 이뤄졌다. 당시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 교민이 한국에서 출시된 메로나를 먹어보고 현지에서 통할만한 '비즈니스 아이템'이라 판단해 개인적으로 수입을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교민의 '촉'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하와이 사람들의 입맛을 홀린 메로나는 매월 50만개 이상 팔려나가며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빙그레는 오늘날 K디저트의 대표주자로 거듭난 메로나의 글로벌 기반을 하와이에서 마련했다.

이후 빙그레는 남미 시장으로 '레이다 망'을 돌렸다. 겨울에는 잘 팔리지 않는 아이스크림의 특성상 비수기에는 계절이 반대인 곳에 수출을 해 매출을 방어해야 했다. 빙그레가 2002년 브라질에 진출한 이유다. 메로나의 제품력은 남반구에서도 통했다. 바닐라·초코·딸기가 아닌 '멜론'을 향료로 사용하는 아이스크림은 '혁신적'이었기 때문에 높은 물류비와 통관세로 다소 높은 가격인 개당 2500~3000원 수준으로 팔았음에도 인기는 흔들림이 없었다.

높은 가격은 오히려 현지 레스토랑에서 '고급 디저트' 메뉴로 올라갈 정도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부여하는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메로나가 브라질의 국민 아이스크림이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마침내 빙그레는 2013년 브라질 상파울루에 첫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남미 지역 수출 거점으로 활용했으나 2010년대 후반 브라질 경제 악화와 환율 하락으로 현지 법인을 철수했다. 하지만 빙그레는 여전히 메로나를 브라질에 수출하고 있다.

빙그레 아이스크림 수출액 및 메로나 미국 매출 현황. (그래픽=박진화 기자)

이후 메로나는 식품업체들의 '꿈의 무대'인 미국 시장을 정조준했다. 빙그레는 201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주로 샤베트를 즐기는 미국에서 과일 맛이 나는 '바(bar) 아이스크림'은 드문 제품인데다 멜론의 달콤함과 유지방의 부드러움이 섞인 맛 또한 현지인 입맛에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기 메로나는 한인마켓 위주로 판매됐으나 금방 입소문이 퍼져 메인스트림 유통 채널인 코스트코의 8개 권역에 입점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팔리는 메로나는 현지에서 제조한 것이다. 빙그레는 2017년부터 미국 서부 워싱턴 주 밸뷰에 위치한 '루체른 푸드(Lucerne Foods)'사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계약을 맺고 현지 생산에 나섰다.

때마침 불어닥친 K콘텐츠 열풍은 'K디저트' 메로나 인기를 폭발적으로 끌여 올렸다.  실제로 메로나의 미국 매출액은 2014년 30억원 → 2017년 60억원 → 2020년 160억원 → 2021년 223억원 → 2022년 270억원으로 급상승했다.

미국에서도 탄탄한 '팬층'을 갖춘 메로나는 전 세계 22개국에서 판매된다. 빙그레는 '현지 맞춤화' 전략으로 다양한 메로나 제품을 생산하고있다. 수출 초기 메로나는 메론맛의 오리지널 형태로만 판매됐으나 현지인의 입맛을 고려해 바나나·코코넛·딸기·망고·타로맛 등 여러 제품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인기 제품들은 국내로 역수출되기도 했다.

현지 맞춤화 전략은 곧바로 실적으로 나타났다. 빙그레의 전체 아이스크림 수출 실적은 2018년 298억원 → 2019년 373억원 → 지난해 593억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엔 465억원의 수출액을 기록해 지난해 기록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 가운데 메로나의 순수 매출이 60%를 넘기 때문에 빙그레의 아이스크림 수출 호실적은 사실상 메로나가 견인했다고 봐야 한다.

빙그레의 다음 타깃은 '중동·인도' 시장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중동·인도 지역에선 K컬처의 영향으로 K디저트 역시 프리미엄이란 인식이 있으며, 무더운 기후탓에 아이스크림 소비량 역시 높다"고 말했다. 특히 인도는 높은 경제 성장성과 젊은 소비층까지 갖춘 블루오션이다.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2021년 8.9%, 지난해 7.8%를 기록하며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인구 중 47%가 빙과류 제품의 소비를 주도하는 25세 미만이라 메로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의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