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동네 책방 산책, 제로헌드레드와 가가77페이지

짧디짧은 봄이란 계절의 마지막 생존자 같은 화창한 날입니다. 유난히 시간의 더께가 많이 쌓여 있는 골목 초입에서 아담한 서점 제로헌드레드를 만납니다. 망원동에서 또 어떤 책을 사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 제로헌드레드

제로헌드레드

서점 앞 화분도, 서점 안 연두색 벽도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제로헌드레드. 오픈 준비를 하며 화분에 물을 주던 김하림 대표가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들어서자마자 아치형 창과 무민이 눈에 띄어 궁금증이 일었지만, 차근차근 알아가기로 합니다.

Q. 제로헌드레드는 어떤 책방인가요?

제로헌드레드는 독립출판물 위주로 시작한 독립출판 서점입니다. 문 연 지 꽉 채운 6년이 지났어요. 처음엔 독립출판물만 다루다가 2~3년 전부터는 문학 작품이나 그림책, 인문학과 예술 관련 서적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제로헌드레드의 서가
방문자들의 메모

Q. 제로헌드레드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책은 무엇인가요?

제로헌드레드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는 책은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이에요. 토베 얀손은 우리에게 ‘무민’ 시리즈로 알려진 스웨덴의 여성 작가예요. 『여름의 책』은 소녀와 할머니가 바닷가 마을에서 여름 한 시절을 나는 이야기인데, 두 사람은 할머니와 손녀이면서 친구, 동료이기도 해요. 상하 관계가 아니라 ‘메이트’라는 느낌으로 우당탕당, 좌충우돌, 감동도 살짝 있는 여름 한 때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내용을 몰라도 강렬한 제목 때문에 사시는 분들도 많고요, 제가 많이 추천해 드리는 책이기도 해요. 이렇게 잘 보이는 데 두고 소개 글을 써두니 손님들이 흥미를 갖고 많이 데려가 주시더라고요.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

Q. 독립출판물 중에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제가 서점을 혼자 운영하고 있는데요, 독립출판물은 거의 일대일로 직거래를 많이 해요. 작가분들과 스킨십을 하고 싶은 마음에 직접 소통을 하는데, 언젠가 그 단계가 너무 힘에 부쳐서 입고 요청 이메일이 140통 쌓일 때까지 답을 하지 못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외면하고 외면하다가 더 이상 미루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메일을 읽으며 데려오고 싶은 책, 평소 관심 있던 책을 모아 초대를 했지요. 지금 이 테이블은 원래 프로그램이나 책방 모임을 할 때 사용하는 테이블이었는데, 새로 들여온 책이 많아 이렇게 잔뜩 깔아 놓은 상태예요.

제로헌드레드에 새로 들어온 독립출판물들

그중 흥미로웠던 책 중 하나가 뉴던전 작가의 『까까책: 과자 이름 백과사전』이에요. 표지 앞뒤로 대왕 빠다코코넛이 사진이 있는데요, 제목 그대로 과자 대백과예요. 사소하면서도 뭔가 파고드는 아카이빙 북 같은 게 독립출판에서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왼쪽 아래 보이는 책이 뉴던전 작가의 『까까책: 과자 이름 백과사전』

Q. 서점 운영을 하시며 직접 독립출판물을 내기도 하시지요?

이 『나비와 바둑이』는 제가 기획과 발행을 한 책이고, 『티켓팅』은 직접 쓴 책이에요. 『나비와 바둑이』는 저희 서점과 계속 작업하던 디자이너께서 인스타 카툰으로 시작하셨던 작품이에요. 살다 보면 사회에 불만이 생기고 되게 예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새치기하고, 길에 침 뱉고, 염치없는 부자들, 어른들, 혹은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귀엽게 풀어나가고 있어요.

여기 고양이와 강아지 동물 친구들이 도시에서 살면서 빌런으로 활동하는데, 이 아이들이 다 범죄자예요. 되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무서운 애들인데, 사실 이 둘이 처단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더 빌런인, 그런 웃기면서도 묵직한 누아르 장르입니다.

『나비와 바둑이』

『티켓팅』은 여행의 시작에는 ‘티켓팅’이 있다는 의미로, 여행의 시작에 관한 열 가지 에피소드를 담고 있어요. 저와 다른 책방지기가 ‘강 건너 데칼코마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한강을 중심으로 각각 여기 망원동과 양평동에서 서점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책을 만들 당시 헤어스타일이 이 표지와 같아서 뚜껑이와 부각이로 활동했어요. ‘김뚜껑’이라는 예명이 저인데, 지금은 ‘김부각’ 씨 머리를 하고 있네요.

저희 둘 다 즉흥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다녔어요. 저는 누가 무슨 한 마디만 하면 버튼이 눌리는 편이라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무슨 말을 듣고 여행을 시작했는지 다섯 가지 이야기를 썼어요. 부각 씨 같은 경우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고 여행을 시작하는 타입이라 어떤 콘텐츠를 보고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썼고요. 웃기려고 만든 책인데, 빵 터지진 않아도 약간 미소를 짓게 되실 그런 책이에요.

김하림 대표가 공저자로 제작한 『티켓팅』

Q. 그러고 보니 책방에 무민도 많이 보여요.

가끔 여기가 무민 책방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왜 저희 책방에 무민이 많은지는 이 망원동네책방ZINE 「부큐」를 보시면 나와 있어요.

제로헌드레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무민

Q. 망원동네책방ZINE 「부큐」는 어떤 간행물인가요?

망원동에 있는 책방 네 군데, 제로헌드레드, 가가77페이지, 종이숲, 책방이올시다가 연합해서 만드는 책방 매거진이에요. 망원동에 책방이 정말 많잖아요. 모든 책방지기가 다 같이 모이기는 힘들지만, 우연히 만난 저희 네 명이 우리끼리라도 네트워킹을 해 보면 어떨까, 책방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면 어떨까 싶어 지난겨울에 창간호를 내고 이번 봄에 두 번째 호를 냈어요.

망원동네책방ZINE 「부큐」

「부큐」 뒤를 보시면 스탬프 투어를 할 수 있어요. 구입하신 곳에서는 무료로 도장을 찍어드리고, 이후로 다른 책방에서 책이나 굿즈를 구입하시면 그곳에서도 도장을 찍어 드려요. 책방 투어로 도장을 다 모으시면 다음 호를 드리고요.

책방지기들이 각자 맡은 페이지를 각자 꾸며서 한 바닥씩 만들고 있어요. 저희 책방지기들이 각자 하고 있는 일, 각자의 성향에 관해 알 수도 있지요. 함께 만드는 공통 페이지도 있는데, 첫 호에는 서점 TMI와 맛집 빙고를 했고요, 두 번째 호에서는 모든 서점을 통과하면서 망원동에서 가기 좋은 식당이나 카페를 소개하는 책방마다의 추천 코스를 소개했어요. 회차가 쌓이면 재미있는 묶음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제로헌드레드 김하림 대표
제로헌드레드

서울 마포구 희우정로10길 33 1층 좌측

⁂ 가가77페이지

제로헌드레드에서 구입한 「부큐」를 들고 망원동에서 산 책, 부가 미션을 시작합니다. 바로 스탬프투어이지요.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망원동 동네 책방 중에서도 터줏대감 같은 가가77페이지입니다. 지하1층에 있는 가가77페이지는 오늘 찾은 서점 중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두터운 서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 행사, 강연도 기획하고 있지요.

아쉽게도 외부 일정으로 인해 가가77페이지의 이상명 대표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본 서가를 통해 어느 정도 책방지기를 알게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답니다.

Q. 가가77페이지는 어떤 책방인가요?

가가77페이지는 망원에 있는 동네서점입니다. 다양한 독립출판물과 큐레이션 도서를 소개합니다. 베스트셀러와 신간은 없을 수 있지만, 당신과 나의 취향이 있습니다.

가가77페이지의 서가

Q. 큐레이션은 어떤 기준으로 하시나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책방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시인, 음악콘텐츠 기획자, 북디자이너)의 합집합으로 큐레이션을 진행합니다. 각자의 개성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소개하는 편입니다.

가가77페이지의 서가

Q. 가가77페이지에서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박경환의 『소년, 잘 지내』

최근 읽은 책은 재주소년 박경환 님의 『소년, 잘 지내』입니다. 20년차 가수가 8년 동안 썼다 지운 이야기들을 모아 나온 책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소년의 이야기를 떠올려볼 수 있는 책입니다.

가가77페이지

서울 마포구 망원로 74-1 지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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