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원 ‘혼밥 청년’ 얼굴서 행복 봤다”… 김치찌개 퍼주는 신부님 [M 인터뷰]

박동미 기자 2024. 10.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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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식당 ‘청년밥상문간’ 운영 이문수 신부
굶주리는 젊은이 다시는 없게
‘따뜻한 한 끼 해주자’ 마음먹어
2017년 정릉 시작으로 4곳 더
전도? 손님 와도 말도 안 걸어
그저 편히 밥 먹게 해주고 싶어
성당 밖 활동… 부르심 받은 것
이런식당 없어도되는 세상오길
지난달 24일 ‘청년밥상문간’ 이대점에서 만난 이문수 신부. 푸짐한 1인분 김치찌개 냄비를 든 이 신부가 손님들이 붙여 둔 메모지들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맛있다”는 감사 인사뿐만 아니라 취업 등 개인의 소망을 쓴 경우도 있다. 윤성호 기자

메뉴는 3000원짜리 김치찌개가 전부. 라면과 어묵 사리를 추가해도 5000원. 개인 용기를 가져가면 커피도 무료. 이런 식당 있으면, 한번은 가보지 않을 수 없을 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또는 스마트폰을 벗 삼아 ‘혼밥’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시큼하고 걸쭉한 김치찌개를 푹 퍼먹는다. 맛도 좋고, 보기도 좋은 이 밥상, 누가 차려낸 걸까. 주인공은 2017년부터 청년들을 위해 매일 ‘맛있고 따뜻한 한 끼’를 짓고 있는 이문수(50) 신부. ‘청년밥상문간’의 창업자이자, 글라렛선교수도회 소속 사제인 이 신부를 지난달 24일 청년밥상문간 이대점에서 만났다. 식당은 서울과 제주를 포함해 현재 5곳이 운영되고 있다. 올해 개점한 슬로우점(대학로)을 제외하고, 지난해에만 10만 명이 다녀갔으며, 연 4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 식당 이름에 ‘청년’이 붙었는데, 청년 손님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청년들이 가장 많이 오지만, 식당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지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가장 먼저 생긴 정릉점은 다른 곳에 비해 직장인 비율이 높다.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주변 주민들도 꽤 오고. 반면, 대학가에 위치한 이대점에는 ‘혼밥’하는 20대가 대다수다. 혼자 먹기 편하고, 가격이 싸고, 무엇보다 맛있다. 그런 식당이라면 누가 마다하겠나.”

― 어쩌다 신부님이 성당에 있지 않고 ‘식당 주인’이 됐나.

“2015년 수도회 로마 총회 의제 중 하나가 ‘젊은이들이 종교에 무관심하고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었다. 또 당시 서울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한 청년이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나 사회가 떠들썩했다. 우리 시대 청년들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따뜻한 밥 한 끼 해주자’라는 마음에 결심을 했고, 수도회의 공식 절차와 과정을 밟아 창업하게 됐다.”

― 왜 김치찌개인가. 재료비가 싼 것도 아니다.

“우선 ‘집밥’ 같은 맛이었으면 했고, 꾸준하게 음식의 질이 유지될 수 있는 종류를 고민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라서(웃음). 점심시간에 30∼40명씩 줄 선다는 맛집에 가서 김치찌개를 먹어보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35년 경력의 조리사님과 함께 레시피를 연구했고, 여러 단계 수정을 거쳐 지금의 식단이 완성됐다. 2017년 1호점 개점 때도 원가는 3000원에 거의 달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후원이 없으면 유지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 혼자 와서 1인분만 시켜도 되는 눈치주지 않는 식당이다. 이 정도면 무료나 다름없다.

“문을 열고 한 달을 운영해 보니 딱 100만 원 적자가 나더라. 그래도 무료로 할 수는 없었다. 여기는 식당이지 배급소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공짜 밥’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오기 싫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청년들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개인사업자 형식에서 2020년 성북구청 제안으로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이후 방송 출연 등으로 식당이 알려지고 정기 후원이 크게 증가했고, 지점도 늘었다. 지점별 하루 평균 100∼200명의 손님이 김치찌개를 맛보고 간다.”

― 식당 안을 자세히 둘러보지 않으면, 운영 주체를 알 수 없다. 십자가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나.

“여기는 식당으로 포장한 전도·포교의 공간이 아니다. 천주교에서, 또 신부가 운영하는 곳이니 궁금해들 하고, 그러한 목적이 있을 거라고 추측들을 하지만, 아니다. 굳이 정의 내리면 ‘대한민국 청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다. 청년들을 사랑하는 하느님이 신부들을 시켜서 식당을 하라고 하셨고, 청년들이 따뜻한 밥으로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되는 거다. 나는 신의 뜻을 그렇게 이해한다.”

― 밥 먹으러 오는 청년들에게 뭐라도 한마디 더 해주고 싶을 것 같다.

“사실 요즘 너무 유명(?)해져서 식당에 자주 있질 못한다. 하하. 식당에 와도 말은 거의 걸지 않는다. 50대 아저씨가 관심 가져 주는 게 뭐 그리 좋겠나. 그리고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게 고작 ‘어디 사냐’ ‘직장인이냐’ ‘몇 살이냐’ 등인데…. 생각해 봐라, 밥 먹다가 그런 질문에 답하고 싶은지. 그저 편히 밥 먹게 해주고 싶다. 1인분만 시켜도, 사리 추가 안 해도 눈치 안 주는 곳에서 스마트폰 보며 하는 ‘혼밥’…. 그걸 우려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솔직히 그 순간 청년들의 얼굴엔 평온과 행복이 넘친다(웃음).”

― 이 식당이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좀 씁쓸해진다.

“오랜 세월 천주교를 비롯해 종교가 한국 사회에서 ‘비공식적’으로 사회복지의 일부분을 담당해 왔다. 복지제도 등이 정비되면서 점차 그 역할에서 손을 놓게 되고는 있지만, 사각지대가 아직 존재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이런 식당이 아예 없어지는 게 바람이다. 없어도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종교는 종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실천 역시 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배고픈 이에게 빵을 주지 않는 것은 거짓 믿음이다’라고 하셨다.”

― 실천을 강조하는 교리 때문인가. 가톨릭 신부들은 성당 밖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신약 야고보서에선 자신의 믿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라고 경고한다. 인식론적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천주교에서는 믿는 자라면 삶으로도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구원받은 자로서 살라는 것이다.”

― 교구 소속이 아니라 수도회 소속인 것도 관계가 있나.

“아무래도 그렇다. 수도회 소속 신부들은 병원, 요양원, 출판사, 복지시설 등 가톨릭과 관련한 다양한 기관에서 일한다. 교구 소속의 신부님들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매우 많은 신부가 성당 밖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성소(聖召·부르심, 소명)로 여긴다. 그러니까 나는 청년문간에서 일하라고 ‘부르심’ 받은 것뿐이다.”

― 정릉에서 시작해 제주까지 분점을 냈다. 최근 몇 년 사이 청년밥상문간의 확장세가 무섭다.

“청년들을 응원하고 위로한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어서, 사업 확장에 대한 생각은 없었으나, 식당이 알려지고 후원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역할도 커졌다. 정릉점을 시작으로 이대점, 낙성대점, 제주점, 슬로우점(대학로)을 냈다. 가장 최근에 슬로우점이 문을 열면서 식당이 한 번 더 주목받았는데, 이곳은 경계성 지능 청년들이 일하는 곳이다. 이용 손님이 적은 제주점은 곧 문을 닫고, 조만간 새로 안산점을 내려고 한다.”

― 레시피에도 관여했는데, 요즘도 김치찌개 자주 드시는지.

“지난 8년간 족히 700번은 먹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맛있어도 그 정도 먹으면 만날 생각나지는 않는다. 하하. 500번까지는 먹을 때마다 맛있고, 돌아서면 또 먹고 싶었는데 말이다.”

― 식당이 전도의 통로는 아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사제로서의 바람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과학의 시대이고, 종교는 때로 감각적이고 흥미, 재밋거리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0명 중 8∼9명이 그렇게 인식하고 소비한다 해도 1∼2명은 본질에 접근해오지 않을까. 비록 지금의 종교가 한국사회 현대사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던 때와도 다르고, 신학이 지식의 보고, 최첨단의 학문이었던 중세는 더더욱 아니지만 말이다.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종교의 본연에 한번은 관심을 갖게 된다. 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공대 다니다 ‘사제의 길’… 청년과 함께 걷고 2030감독 영화 지원

■ 이문수 신부 ‘나눔의 삶’

‘청년밥상문간’을 창업하고, 또 운영하고 있는 이문수 천주교 글라렛선교수도회 소속 신부는 본래 고분자공학을 공부하던 공대생이었다. 성당에 꾸준히 출석하고는 있었지만, 신부가 되겠다는 생각은 성인이 되도록 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참가한 ‘피정’(가톨릭 신자들의 일시적인 수련 생활)에서 “강렬한 종교적 체험”을 하고,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게 됐다”고 했다. 이후 글라렛선교수도회 소속이 돼 신학으로 진로를 바꿨고, 광주 가톨릭대와 서울 가톨릭대 신학대학원을 졸업, 2008년 사제 서품을 받게 된다. “종교성이 짙은 그 체험을 설명하긴 쉽지 않습니다만, 행복을 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인 예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다, 그러기 위해 신부가 되자, 라는 결심이 이어졌죠.”

3000원 김치찌개로 대표되는 청년밥상문간에는 지난해에만 10만여 명이 다녀갔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직장인이나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도 ‘싸고 맛있는’ 식당으로 널리 알려졌다. 식당은 2017년 수도원 후원으로 신부님이 창업해, 2020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했고,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개인 및 기업 후원 등 도움의 손길이 늘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지점이 늘고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조합과 이 신부는 청년들에게 밥만큼, 때로 그보다 중요한 풍요로운 경험들까지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청년희망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 제주도 올레길을 청년들과 함께 걷고, 청년 영화감독들의 제작비를 지원하고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2030 영화제’도 개최하고 있다. 또 청년들이 주축이 되는 아프리카 해외 봉사활동도 지휘하고 있다. 평소 식당에서는 청년들에게 “되도록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 그는 “밥 먹을 땐 가만히 두고, 주로 이런 활동들을 통해 접점을 만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며 웃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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