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로 집주소 옮겼다가 부정입학 엔딩

30년이 넘은 수능의 역사만큼 오래된 대학 입학전형이 있다. 바로 농어촌 특별전형이다. 하지만 이 제도, 시행된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도 여러 논란에 둘러싸여 있다. ‘농어촌전형이 아직도 필요한 건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농어촌 특별전형’이란 단순히 말해 대학이 입학정원과 별개로 읍면 소재지에서 학교를 다닌 학생을 선발하는 걸 뜻한다. 농어촌 전형의 근본적 문제는 결국 ‘대상을 어떻게 뽑을지’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거다.

학생과 학부모 쪽에선 편법까지 동원해 자격을 충족하려 하고, 대학은 정말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공들여 선발할 의지나 동기가 없는데다 뽑을수록 돈이 되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제도를 시행해온 탓이 크다.

과거 감사원에서 이걸 대대적으로 감사한 자료를 보면, 당시 82개 대학 농어촌 특별전형 합격자를 표본조사한 결과 70%에 가까운 55개 대학에서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적발됐다. 농어촌지역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3년 이상 거주, 지금은 6년 거주가 필요한 이걸 거짓으로 꾸민 거다.

수법은 이랬다. 사람이 살 수도 없는 공항활주로나 창고나, 고추밭(?) 등으로 가족이 주소를 이전해서 자녀를 일단 농어촌 지역 고등학교에 보낸 뒤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면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주소를 옮겼다.

고등학교도 한패였는데, 위장전입 사실을 알면서도 추천서를 발급하거나 심지어 학부모를 학교 기숙사 주소로 위장전입시키기도 했다. 학생·학부모·학교가 모두 공범이었던 거다. 대학 역시도 굳이 행정력을 들여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다.

초반 제도 도입 이후엔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 하다가 2000년대 들어 규모가 1만명 이상으로 늘고, 슬슬 악용하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한다.

때맞춰 농어촌 전형을 포함한 특별전형이 전체 모집정원의 30%를 넘어설 정도로 비중이 커지면서 일반 수험생의 불만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제도가 정착된 뒤 이런 허점을 학부모와 학교들이 교묘하게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말만 시골학교인 ‘가짜 농어촌학교’들도 등장했다.

이런 사례 때문에 ‘찐 시골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정작 뒤로 밀리는 결과가 생긴다고 시골 학교 선생님이 국민청원을 낸 일도 있었다.

현재는 거주 요구기간이 늘고 서류 확인도 빡빡해졌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입학 전후로 부모가 거주지를 시골에서 도시로 왔다갔다 했거나, 부모의 직장이 시골에서 출퇴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멀거나 하면 추가 확인에 들어가긴 한다고 한다.

하지만 1차적으로 자격기준 충족여부를 고등학교 교장의 확인서로 판단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사실 모든 자격요건을 제대로 갖췄다고 해도 만사OK는 아니다. 이 제도의 근본적 문제는 결국 ‘누가 사회적 배려를 받을 자격이 되는가’를 가릴지가 쉽지 않다는 건데, 요즘 들어선 단순히 자격요건만 가지곤 이런 구분이 더 힘들어졌다.

먼저 현 제도대로 읍이나 면에 살더라도 이것만으론 ‘시골에 살아서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받지 못했다’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도시에 산다고 해서 무조건 강남 대치동 학원에 다니거나 고액과외를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선 인터넷강의로 장소 상관없이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기도 했다.

원래 농어촌 전형의 역사는 1990년대 중반의 시대적 배경을 봐야하는데 당시는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가 마무리된 직후였다.

농산물 시장 개방에 농민들의 민심이 악화되자 정부는 한국농업전문학교(現 한국농수산대학)을 열기도 하고, ‘신농정 5개년 계획’에 42조원을 투입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게 1996년부터 시행한농어촌 전형이었다.

[김동석 전 한남대 교육학과 교수]

"우리 농업이나 이런 게 장기적으로 많이 좀 어려워질 거다 이런 걱정을 많이 하는 그런 분위기였죠."

또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진학률은 30% 수준이었는데, 대학에 갔느냐 여부가 어떤 직장을 잡느냐로 직결되곤 했다. 즉 대학 갈 기회를 주는 게 계층상승의 기회를 주는 성격도 있었다.

대학들은 농어촌 전형 도입에 대환영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대학 입장에선 정부에서 정해주는 대학별 입학정원과 별개로 추가 인원을 더 뽑을 수 있고, 입학생이 많아지면 수입도 늘어나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다.

[김동석 전 한남대 교육학과 교수]

"대학 입학 학생 유치를 적극적으로 해야 되는 입장에서 정원 외로 그런 통로가 있으면 대학들은 학생 유치나 학생 모집에 도움이 되니까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렇게 활용하고 있다고 봐야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턱대고 제도를 없애자니 실제 시골에서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한 학생들이 전혀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최상위권 대학에선 오히려 도시, 특히 서울 학생들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결국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정말 낙후된 교육환경인 학생들을 잘 구분해 혜택을 줘야하겠지만, 대학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다.

학계가 제시한 해결책은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자격 심사를 한꺼번에 다루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방안. 자격 심사를 대학 제각각 하는게 아니라 수능처럼 자격요건 심사 자체를 일원화하고 그 결과를 대학에 공유하는 방식이라면 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얘기.

다른 방법은 지원 자격과 범위를 더 세밀하게 설정하는 거다. 예를 들어 개별 학교의 규모나 교육과정처럼 이 학생이 고등학교를 나온 지역이 정말 교육환경적으로 낙후된 건지 판가름해서 무늬만 시골학교를 가려내자는 것.

하지만 이런 방안들은 정부나 대학들이 맘 먹고 예산과 인력을 들여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현재로서는 그런 조짐은 없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소수자 전형이라는 게 아무리 가려 뽑더라도 일반 학생의 반감을 사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제도가 계속되는 한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농어촌 전형뿐 아니라 특별전형의 종류가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손을 대려면 전체적으로 팔을 걷어붙여야 할텐데, 정치권이나 교육계 모두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