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출근길 문답, 정말 'MBC 기자 질문'이 문제였나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들, 행사 비공개 전환 때 소리치듯 질문하는 경우 흔해
오바마 대통령 시절 공식 연설 방해한 기자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 직접 대응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중단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대통령실은 이에 대한 논의 진행 상황과 재개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출입기자들의 질문을 고성, 난동이라고 규정했지만 되레 사태를 키운 것은 책임 있는 수습에 나서지 않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문제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18일 윤 대통령에 대한 출입기자의 질문과 이후 상황을 두고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며 출근길 문답을 중단했다. 21일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고성을 지르는 등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이 들었다. 오히려 국민과의 소통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고성이 오가고 난동에 가까운 행위가 벌어지는 국민 모두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는 표현도 했다.
대통령실이 말한 “불미스러운 일”의 현장은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글과 영상으로 보도됐다. 동남아시아 해외순방 때 MBC 취재진을 대통령 전용기에 타지 못하게 한 윤 대통령이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MBC 취재기자가 “뭐가 악의적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이후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이 기자의 질문을 지적하면서, 기자와 이 비서관 사이 언쟁이 벌어졌다.
“불미스러운 일”은 무엇일까. 먼저 기자의 질문이 불미스러웠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대통령의 일정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이뤄져왔다. 문답의 시간이나 개수는 정해지지 않았다. 8월부터는 기자들의 질문 전에 윤 대통령이 먼저 발언을 하면서 질문 개수가 평균적으로 더 줄었다. 윤 대통령은 사안에 따라 질문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고, 답변 기회를 놓친 기자들이 돌아서는 윤 대통령 뒤에 소리 높여 질문하는 일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의 답을 듣지 못한 질문은 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내용이었다. 취임 첫 달인 5월에는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 특별감찰관 임명 여부에 대한 질문이 윤 대통령의 등 뒤로 전해졌다. 6월 “(대선 전 김건희 여사가 약속한) 조용한 내조”가 끝났느냐는 질문을 비롯해 김 여사 관련 질문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7월에는 “윤석열 정부 (인사·채용) 공정이 무너졌다고 국정조사 요구가 있는데 인사 전반을 짚어볼 계힉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은 윤 대통령이 “다른 말씀 없느냐”고 답을 피한 뒤 돌아섰고, 질문했던 기자가 “채용 얘기는 안 해주시는 건가”라고 되물었지만 윤 대통령은 돌아오지 않았다. 8월 이른바 '내부총질'(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향한 비판 문자 논란), 9월 '비속어'(뉴욕 순방 당시 이XX 등 논란) 관련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사안이 여느 출근길 문답과 달랐던 점은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의 개입이다. 이기정 비서관이 “들어가는 분한테 그렇게 얘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이에 발끈한 MBC 기자와 설전을 벌이게 된 일이다. 당시 이 비서관은 “(대통령이) 말씀을 하시고 끝나지 않았나” “보도를 잘 하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MBC 기자는 “반말하지 말라” “지금이 군사정권이냐”며 이 비서관이 질문을 통제하려 든다고 주장했다.
당시 언쟁이 불미스러웠던 걸까. 그런데 대통령실은 “그 설전이 이 사안의 본질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이기정 비서관이 개입한 것에 대해서는 “도어스테핑을 담당하는 주무 비서관”으로서 필요한 지적을 했다는 것이 대통령실 입장이다. 정작 이번 사태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물러난 것은 설전 당사자가 아닌 김영태 대외협력비서관이었다. 대통령실 기자실인 국민소통관 관리를 책임지는 김영태 비서관을 내보낸 일은 MBC에도 상응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압박이자, '출입기자 관리'가 사태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기자가 못다한 질문을 소리높여 하는 일은 제한된 언론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의 질의응답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미국·러시아 정상회담에 대한 질의응답을 마치고 돌아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뀔 것이라고 왜 그렇게 확신하느냐”며 소리치는 CNN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해당 기자가 자신의 입장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면서 “이해가 안 되면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백악관 기자들을 만나 “마지막 발언에 대해 사과해야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에서는 대통령과 기자들의 질의응답을 위해 마련된 자리가 아니어도 기자들이 큰 소리로 질문하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10월 미국 백악관은 임신중단의 법적 장벽을 주제로 한 회의를 도중에 비공개로 전환했고, 이에 여러명의 출입기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큰 소리로 질문을 외쳤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바이든 대통령은 웃음을 지으며 “저들은 이런 일을 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언론”이라고 말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언론의 질문을 조롱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의 연설을 끊고 질문한 기자가 논란을 부른 일도 있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로즈가든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던 때였다. 이때 극우 성향으로 꼽히는 데일리콜러(The Daily Caller) 소속의 기자가 “왜 미국 노동자보다 외국인을 선호하느냐”며 소리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실례지만 질문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기자는 다시 “질문을 받을 건가”라고 물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말하는 동안은 아니다”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일화는 여타 질문들과 달리 백악관 출입기자들도 당황한 사례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백악관 기자단은 대통령이 준비된 발언을 낭독한 뒤 대통령에게 자주 질문을 하지만 로즈가든 같은 공식석상에서 기자가 끼어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전한 바 있다. 이런 기자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번에 질문을 하기 전에는 내 발언을 마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실은 출입기자의 질문을 받는 시간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이유로 출근길 문답을 중단하고, 대통령실이 출입기자 간사단에게 해당 기자의 징계 논의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출근길 문답은 일주일 넘도록 중단된 상태다. 여권 인사와 지지세력은 질문했던 기자가 팔짱을 꼈다거나 슬리퍼를 착용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기자가 예의 없다'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출근길 문답은 대통령실이 발언자료도 공유하지 않는 약식행사이고, 출입기자들은 대통령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청사 로비로 나가기에 편안한 실내화를 신는 경우가 많다. 당황스러운 수준의 이 논쟁에 불이 붙으면서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가 MBC 기자를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려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대통령실은 출근길 문답 중단을 통보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면서 출근길 문답 재개 여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적인 의견 수렴은 없다. 대통령이 드나드는 출입구와 기자실 사이는 나무벽으로 가로막혔고, 기자실을 청사 바깥으로 내보내는 방안이 검토됐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은 기자실 이전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거나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논의가 있었던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 내세웠던 주요 성과, 용산으로의 대통령실 청사 이전을 정당화했던 소통 강화 약속이 무산되고 있지만 국민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해명은 없다. 대통령실은 지난 6월 대통령 취임 한 달의 새로운 변화들을 설명하면서 “출근하는 대통령을 국민이 매일 목격하고, 출근길 국민의 궁금증에 수시로 답하는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역대 대통령과 비교 불가능한 소통 방식과 횟수를 통해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런 혼란을 잠재울 대통령의 목소리나 지시사항은 전무하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이 중단된 뒤 16일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28일 우주항공청(KASA) 설립 관련 메시지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페이스북을 통해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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