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트넘이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10일 영국 버밍엄 빌라파크에서 열린 애스턴빌라와의 2023~202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8라운드 경기에서 4대0으로 승리했다. '캡틴' 손흥민은 1골-2도움을 기록했다.
꼭 필요한 승리였다. 이 경기 전까지 토트넘은 승점 50으로 5위였다. 4위 애스턴빌라가 승점 55. 승점차는 5점이었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서 토트넘은 승점 53이 됐다. 여전히 5위였지만 애스턴빌라와의 승점차를 2점으로 좁혔다. 더욱이 토트넘은 애스턴빌라보다 1경기를 덜 한 상태이다. 4위 다툼을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4대0의 대승 그 의미를 짚어보자.

#4득점보다 값진 0실점
무실점 승리가 가장 중요하다. 토트넘은 12월 15일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원정 경기에서 2대0으로 승리했다. 그 이후 리그에서 무실점 경기가 하나도 없었다. 9경기에서 16실점했다. 9경기동안 경기당 1.77골이나 내줬다. 경기당 1.77골을 내준다면 상위권에 있을 수가 없다. 28라운드 현재 팀 순위를 보더라도 경기당 1.77실점 이상의 팀들 모두 7위권 바깥에 있다.
토트넘이 최근 9경기 1.77실점을 하고도 5위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공격력 덕분이었다. 9경기에서 30골을 넣었다. 그 덕분에 5승 2무 2패를 거두며 5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격력은 좋았지만 수비 불안은 언제나 큰 걱정이었다. 특히 애스턴빌라 원정에서는 더욱 그 걱정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진다면 4위 도전은 사실상 물건너간다. 지지 않으려면 실점이 없거나 최소화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실점 승리가 나왔다. 상징성이 크다. 수비진과 선수단 전체에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수비의 중심인 미키 판 더 벤이 후반 4분만에 부상으로 교체아웃됐다. 대신 라두 드라구신이 빈자리를 대체했다. 드라구신에게는 토트넘에서의 사실상 첫 실전이었다. 1월 이적 시장을 통해 토트넘으로 왔다. 3경기에 나섰다. 5분, 2분, 1분. 3경기 합쳐 8분만 뛰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브라이턴전, 울버햄턴전, 크리스탈팰리스전에서는 벤치만 달궜다. 애스턴빌라전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드라구신을 투입했다. 그는 41분을 뛰었다. 드라구신은 안정적이었으며 동시에 빨랐다. 판 더 벤의 공백을 잘 메워주었다. 판 더 벤이 최근 들어 유리몸 기질을 보여주고 있다. 부상의 빈도가 잦아졌다. 특히 근육 부상이 많아졌다. 때문에 드라구신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해졌다.
드라구신의 합류로 토트넘은 수비 전술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당장 이번 시즌은 아니더라도 다음 시즌 유럽 대항전(챔피언스리그가 됐든, 유로파리그가 됐든)에 나갔을 때 스리백 카드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판 더 벤, 로메로, 드라구신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스리백 라인을 통해 상대 맞춤형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손톱이 정답' 재확인
손흥민의 원톱 배치는 검증된 카드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애스턴빌라전을 하기 전까지 13골-6도움을 기록했다. 13골 가운데 최전방 원톱으로 나섰을 때 넣은 골이 10골, 도움은 2개였다. 왼쪽 날개로 나섰을 때보다 공격 능력이 더 높았다. 올 시즌 초반 손흥민을 원톱으로 기용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감독들 입장에서 손흥민 원톱 카드는 한 편으로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선 손흥민은 윙어로도 너무나 잘한다. 왼쪽 날개로 나선 10경기에서도 3골-4도움을 올렸다. 감독은 특정 선수가 아닌 팀 전체를 봐야 한다. 특정 선수의 역량이 조금 줄더라도, 팀 전체의 역량이 올라간다면 그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축구는 팀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손흥민을 왼쪽 날개로 배치하고 히샬리송을 원톱으로 놓아서 팀 전체의 역량이 높아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감독 자신에게 베스트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히샬리송도 잊을만할 때 골을 넣어주곤 한다. 결국 손흥민과 히샬리송을 동시에 기용하려고 하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손흥민 윙어, 히샬리송 원톱 카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애스턴빌라전을 통해 손흥민 원톱 카드가 정답임을 증명했다. 손흥민은 1골-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4대0 대승을 이끌었다. 단순히 공격적인 수치 때문만도 아니다. 경기 내내 원톱 손흥민은 넓은 지역을 커버했다. 90분 내내 뛰어다니며 볼을 받아주고 뒷공간으로 뛰어들어갔다. 애스턴빌라 수비진들은 그를 따라다니다보니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손흥민은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다. 히샬리송이었다면 이 정도의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팀에 더욱 힘이 되는 것은 히샬리송 원톱이 아닌 손흥민 원톱이었다.

토트넘의, 엔지 감독의 철학과도 부합한다. 애스턴빌라전이 끝나고 손흥민은 이렇게 답했다.
"저희가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이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캡틴' 손흥민이 '엔지볼의 철학'을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축구하는 방식이 진짜 많이 뛰고 서로 도와주면서 많은 공간을 창출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엔지볼을 피치 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가 바로 '손톱'이었다.

#미묘해지는 4위 경쟁 기류
애스턴빌라 원정에서 거둔 토트넘의 4대0 대승. 이는 4위 경쟁 기류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우선 토트넘은 4개월만에 클린시트를 달성했다. 그리고 원정에서 대승을 거뒀다. 상승세로 전환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실제로 리그 2연승을 달리면서 좋은 분위기를 타게 됐다. 다음 상대는 풀럼이다. 원정 경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볼만 하다.
반면 4위 애스턴빌라는 쫓기는 입장이 됐다. 더욱이 우나이 에메리 감독 체제 이후 처음으로 빌라 파크에서 무득점 패배를 당했다. 선수들도 많이 지쳤다. 애스턴빌라는 유로파컨퍼런리그를 병행하고 있다. 토트넘과의 경기에 앞서서도 아약스 원정을 다녀왔다. 그리고 아약스와의 유로파컨퍼런스리그 16강 2차전 홈경기를 치러야 한다. 16강까지 올라갔기에 유로파컨퍼런리그를 포기할 수도 없다. 1차전 원정에서 0대0으로 비기면서 유리한 상황을 점했다.
주말 웨스트햄원정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아약스전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8강에 오른다면 그것도 고민이다. 애스턴빌라의 전력상 더블 스쿼드를 꾸리기는 힘들다. 결국 유로파리그냐 아니면 프리미어리그냐를 놓고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애스턴빌라 입장에서는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했다면, 아니 비기기라도 했다면 남은 일정을 여유있게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나 패배하면서 자신들이 그리고 있는 4위권 수성의 플랜이 흔들리게 됐다.
미묘한 파장의 끝에는 어떤 결론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