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흔적에서 관광지까지—‘김일성 별장’의 역사
이 별장은 남북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북녘과 맞닿은 최북단 지역, 강원도 고성에 자리한다. 본래는 1940~50년대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일성이 휴양과 휴식 목적으로 자주 들렀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남북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고, 별장 건물도 전쟁 중 붕괴·소실됐다.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이곳은 2005년, 고성군과 강원도 지자체가 공식 관광자원화하면서 복원사업에 들어갔다.
세금으로 짓고, 관광지로 만든 이 시설. 복원 과정은 “분단의 현장”, “남북 대립의 상징을 미래 관광자원으로 승화” 등의 명분 아래 진행됐지만, 실제로는 김일성의 흔적을 직접적으로 기념하는 시설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누가, 왜 복원했나—정치적 명분과 지역 관광 개발
지역 당국은 “현대사의 아픔과 역사를 되새긴다”, “지역 경제·관광 활성화”라는 취지로 복원을 추진했다. 남북교류 바람이 불던 2000년대 초, 남북 접경지역 관광지 개발 붐과 맞물려 “김일성 별장 복원” 프로젝트가 공론화됐다. 당시에는 남북 교류의 상징이자 분단 관광의 일환으로, 이색 역사 관광지로 키운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정치적 명분에 지역 행정 편의만 더해 김일성 개인 숭배성 관광시설로 왜곡”, “해방 이후 민족의 상처와 아픔이 남아있는 이 땅에, 대한민국 세금으로 북한 독재자의 별장을 복원하는 것은 국가 정체성 훼손”이란 비판 목소리가 즉각 터져나왔다.

3000원 입장료, 무엇을 보여주나—‘빈약한 전시’의 실상
현재 이곳은 입장료 3,000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관람객이 마주하는 것은 실망감뿐이다. 복원된 별장은 당시 원형을 온전히 재현했다기보다 ‘어림짐작’에 가까운 단순 건물이다. 내부에는 김일성 시대와 큰 상관 없는 기사 스크랩, 사진 패널, 남북관계와도 동떨어진 무성의한 전시물뿐.
관광객들은 “별다른 유물도 없고, 국가정책과 연계된 교육 콘텐츠조차 부실하다”, “조악한 패널과 남북/동서 냉전 설명만 나열되어 있어 김일성 관련 정보도, 역사 교훈도, 관광적 매력도 없다”는 혹평을 내놓는다.

국민 감정 역주행—‘왜 세금으로 김일성 별장을?’
최대 비판 포인트는 “왜 대한민국 국민 세금을 들여 김일성 별장을 기념하나”이다. 남북 대립과 분단의 직접적 책임자인 김일성의 개인공간을 ‘유산’으로 복원하고, 이를 위해 국민 혈세를 쓰는 행위 자체가 부적절하고, 국민 감정을 거스른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2016년에는 포천시가 두 번째 김일성 별장(포천 명성산 인근) 복원 계획을 추진했다가, 청와대 국민청원과 각종 커뮤니티에서 “역사적 미화” “북한 미화”라는 거센 반발을 받고 곧바로 전면 중단된 바 있다.

경치만 절경, 위태로운 명분—‘별장의 관광 논란’
강원도 고성의 자연경관은 전국적으로도 손꼽힌다. 동해바다, 금강산 해금강, 해송숲이 어우러진 이곳. 아이러니하게도 경치는 최고지만, “굳이 민족의 적장을 상징하는 장소에 모텔, 별장, 전망대를 엮어서 관광자원화해야만 했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 역시 “충분히 자연·안보·생태 관광 중심으로 (정체성과 감정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인터넷엔 “이 경치를 왜 굳이 김일성과 연결짓나?”, “별장 자체보다 바다와 산, 흔적만으로도 관광객이 찾았을 곳”이라는 냉소가 심상치 않다.

‘기념일까, 거부감일까’—복원의 의미와 남겨진 과제
김일성 별장 복원은 지역사회의 경제적, 관광적 필요와 현대사 교육의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론 남북분단의 깊은 아픔, 국민 정서와 현행법 사이에서 오히려 갈등과 반감만 키운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남북을 연결하는 상징적 공간이 될 수도 있었지만, 콘텐츠 부재와 역사 미화 논란, 국민 혈세 낭비 논쟁으로 ‘애물단지’ 관광지만 남게 된 셈이다.
이제는 “분단의 상처와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미래 지향적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 콘텐츠 전환”, “국민 감정을 고려한 운영 재구성”이 강원북부 접경지역 전체에 필요한 과제로 남는다. 진짜 ‘공감되는 분단의 현장’이 되려면 무엇을 기념하고 어떤 가치를 남길지, 더욱 신중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