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송금 실패한 수표를?” ‘촉’으로 보이스피싱범 잡은 은행원

이민경 기자 2025. 2. 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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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서울 성동구의 한 국민은행 지점. 손님이 뜸했던 점심시간, 평범한 중년 남성 A씨가 은행 창구에 8700만원어치 수표를 들고 왔다. A씨는 은행원에게 “이 돈을 다른 은행에 송금해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입사한 새내기 은행원은 수표 8700만원을 일괄 송금하려는 이 남성의 말에 ‘보이스피싱 수익금’이라는 촉이 왔다고 한다. 이들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보이스피싱 현금 전달책이었다.

지난 3일 서기용 성동경찰서장(가운데)이 보이스피싱 현금책 검거에 기여한 국민은행 은행원들에게 감사장을 수여하고 있다. /성동경찰서

이때 은행원과 함께 범인 검거에 기여한 8년 차 대리 이모(34)씨는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며 “새파랗게 얼굴이 질린 은행원이 ‘고객이 범죄 수익금을 들고 온 것 같다’고 말했을 때가 생생하다”고 했다.

A씨를 상대한 이 은행원은 수표를 받은 뒤 신분을 조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단 한 번도 국민은행에서 은행 거래를 한 적이 없었다. 이 대리는 은행 금융사기대응팀에 “거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 8700만원이라는 거액을 송금해 달라고 한다”고 신고했다. 이어 몇 분 후 금융사기대응팀에서 “며칠 전 타 은행에서 송금을 시도하려다 거절된 수표”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때부터 현장에 있던 은행원들은 신속히 행동했다.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다. A씨에게 “수표를 자금화해서 다른 은행에 보내려면 본점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불안해진 A씨는 “수표랑 신분증을 돌려달라”고 해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지만, 경찰이 신고 5분 만에 도착하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이어 경찰과 은행원들은 A씨를 은행 내 한 회의실로 옮겼다. 경찰을 본 A씨는 손을 떨며 긴장했다고 한다. 조사를 거쳐 A씨가 들고 온 8700만원은 실제 보이스피싱 수익금인 것이 확인됐고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A씨는 지난달부터 텔레그램으로 지시를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범행 전날인 16일 수표를 전달받고 송금하라는 지시를 이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대리는 “신입 은행원 때 보이스피싱 수익금을 송금하려는 사례를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직접 내가 막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은행에서 자주 사기나 보이스피싱 수법, 예방법을 배워서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이 대리는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면 은행원의 ‘촉’으로 범죄를 막아내겠다”고도 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범죄 수익금을 모두 압수하고 A씨와 보이스피싱 일당을 조사하는 한편, 범인 검거에 기여한 은행원 2명에게 지난 3일 감사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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