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로 출산’ 숨긴 아내... 대법 판례 “혼인 취소 사유 안돼”

정아임 기자 2026. 4. 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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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웨딩드레스 판매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음./연합뉴스

배우자가 결혼 전 성폭력 피해로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다만 법률적으로는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과 입양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혼인 취소가 인정되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20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아내의 과거를 뒤늦게 알게 됐다는 남성 A(43)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중견 제조업체 회계팀에서 일하는 A씨는 직장 동료의 소개로 시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아내 B씨를 만나 1년가량 교제한 뒤 결혼했다.

문제는 결혼 1년쯤 지나 이사를 준비하던 중 벌어졌다. A씨가 아내의 짐을 정리하다 갓난아기 사진과 서류 등이 담긴 상자를 발견한 것이다. A씨가 이를 묻자 B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성폭력 피해를 입어 원치 않는 임신이 됐고 아이를 입양 보냈다”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억이라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머리로는 아내가 겪었을 끔찍한 고통을 납득한다”면서도 “결혼은 서로의 인생을 함께하는 일인데,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결혼했다는 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적어도 결혼 전에는 솔직히 털어놨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저는 이 결혼을 한 번 더 신중하게 고민했을 것”이라며 “아내의 아픔은 안타깝지만 이미 바닥까지 무너져버린 신뢰를 안고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알리지 않고 결혼한 게 사기에 해당하는지, 혼인 취소가 가능하다면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는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고 조언을 구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신세계로의 김나희 변호사는 “민법 제816조 제3호는 사기 또는 강박으로 혼인의 의사 표시를 한 경우 혼인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도 “여기서 말하는 사기는 단순히 과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혼인의 의사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적극적으로 속였는지, 그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는지를 함께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사연자와 비슷한 상황에서 대법원은 “사기에 의한 혼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016년 2월 18일 선고된 판결에서도 결혼 전 성범죄로 인한 임신 및 출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사례에 대해 혼인 취소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과 출산이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에 해당하며, 이를 반드시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범죄 피해가 아닌 단순한 결혼 관계에서의 출산이나 사실혼 관계 중 발생한 출산 사실을 숨긴 경우는 이번 사례와 달리 혼인 취소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혼인 취소가 인정될 경우 재산 분할과 위자료 청구 가능성도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혼인 취소 역시 이혼과 마찬가지로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에 대해 재산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면서도 “보통 혼인 취소 사건은 기간이 짧아 분할할 재산이 많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위자료에 대해서는 “배우자가 중요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거짓말해 결혼에 이르게 했다면 정신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사연처럼 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만으로 곧바로 위자료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면서 “숨긴 경위와 적극적인 기망 행위 여부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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