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머그샷부터 버닝맨까지: 예술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2023 올해의 사진
시인이자 문화비평가인 켈리 그로비에가 올해 지금까지 나온 사진들 중 가장 강렬한 것 6개를 골라 상징적인 예술 작품과 비교했다. 트럼프의 머그샷, 버닝맨이 열린 사막의 교통 체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대성당 미사일 공격 등이 포함됐다.
1. 트럼프 머그샷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이 머그샷(범죄인 인상 착의 기록용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조지아주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후 이 머그샷은 지난 8월 24일 애틀랜타 교도소에서 촬영됐고, 바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사진 속 강렬한 눈빛은 순식간에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불과 몇 시간 만에 트럼프는 자신의 선거운동 사이트에서 머그샷 브랜드 머그컵과 티셔츠, 음료 쿨러 등을 판매하는 등 화제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미국에서 머그샷은 신비롭고 매혹적인 소재다. 약 60년 전 앤디 워홀은 뉴욕 경찰청의 수배자 명단에 있는 머그샷을 활용해 13개의 초대형 초상화 시리즈를 만들었다. 앤디 워홀은 이 팝아트 작품을 1964년 세계 박람회 당시 뉴욕주 파빌리온에 도발적으로 게시했다. 하지만 논란이 일었고, 이 작품 위에는 페인트가 덧칠해졌다.
2. 의회의 풍경
음영에 대한 옛 거장들의 생각은 틀린 적이 없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오늘날에도 살아 있었다면, 지난 1월 미국 하원 회의장에서 찍힌 사진 속 빛과 어둠이 만들어 내는 음모의 느낌에 매료됐을 것이다. 이 사진에선 평소 논란을 많이 일으키던 공화당 하원의원이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맹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이 스마트폰을 든 채로 동료인 몬태나주 출신 매트 로젠데일에게 도널드 트럼프와 통화해보라고 설득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빛, 그린이 뻗은 팔,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는 로젠데일의 손, 장면에 집중력을 더하는 어두운 빛깔의 헝클어진 천 등은 카라바조의 명암법이 표현된 캔버스처럼 윤곽과 대비를 잘 보여주고 있다.
3. 로봇 시연
지난 여름 ‘베이징 이촹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23 세계 로봇 컨퍼런스에서 유창하게 몸짓 표현을 하고 사람의 표정을 흉내내던 로봇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중에서 붉은 옷을 입은 남성 로봇 '마스터'의 동작을 따라하는 여성 로봇들의 기이한 모습은 젠더 자체가 기술적으로 의미가 없는 경우에도 성 역할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19세기 황금기 덴마크 화가 콘스탄틴 한센의 프레스코화에는 그리스의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빚은 점토 인형이 붉은 옷을 입은 아테나 신이 생명을 부여할 때까지 잠든 채로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과 로봇 컨퍼런스의 사진은 수 세기를 뛰어넘는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준다.
4. 루비알레스의 키스
스웨덴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키스는 말이 불필요해졌을 때 말을 멈추고자 본능적으로 고안된 사랑스러운 속임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페인 축구 연맹의 수장인 루이스 루비알레스가 지난 8월 20일 스페인 축구 대표팀이 사상 첫 여자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뒤 미드필더 헤니페르 에르모소의 입술에 키스를 했을 때, 그가 연설을 끝내며 “말이 불필요해졌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큰 착각일 것이다. 에르모소가 제기한 강제 혐의를 루비알레스는 부인했지만, 에르모소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루비알레스가 자신에게 키스한 것은 “나의 동의 없이 이뤄진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문화사에서 남겨진 키스 장면들이 과연 얼마나 진심을 담은 것인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7~1908년 작품 ‘키스’를 통해서 이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 버닝맨
버닝맨은 예술과 자기 표현에 전념하며 일주일간 휴식을 갖는 행사다. 하지만 올여름 버닝맨이 열린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에서 자동차들이 기나긴 교통 체증에 갇힌 숨막히는 광경은 버닝맨의 평온함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 초유의 사태는 행사 폐막 직전 폭우와 홍수로 인해 도로 폐쇄로 교통이 전면 통제돼 발생했다. 당시 정체된 차량 행렬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상공에서 촬영한 병목 현상 사진에는 1974년 ‘캐딜락 랜치’로 알려진 텍사스 애머릴로의 유명한 세단 퍼레이드보다 더 거대한 작품이 모래 위에 만들어졌다. 아마도 지금 시점에서는 누구라도 그 퍼레이드의 일부가 되고 싶을 것이다.
6. 우크라이나 대성당 미사일 공격
어떤 사진은 우리를 뒤흔든다. 하지만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것도 있다.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오데사 중심부에 있는 유서 깊은 ‘성 변모 대성당’ 내부에 러시아 군의 미사일이 떨어져 파괴된 잔해를 신도들이 치우고 있는 사진을 보자. 폭격은 이미 지나갔지만, 정적인 이미지 속에서 기둥과 샹들리에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은 마치 이 사진에 기록된 트라우마와 비극이 영원히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동시에 사진은 흔들리는 공간에서 절대로 넘볼 수 없는 평온함을 발산하는 듯하다. 1630년대에 프랑수아 드 노메라는 프랑스의 바로크 화가도 기묘한 운동감이 느껴지는 그림 '교회의 폭발'(최근에는 '우상을 파괴하는 유다의 왕 아사'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 이와 같은 인상적인 효과를 담아냈다. 건축물의 폭력적인 파괴(오른쪽)와 난공불락의 안식이 가진 외형(왼쪽)을 균형 있게 표현한 이 작품은 최근 오데사에서 촬영된 사진과 마치 한 장의 캔버스에서 잘라낸 듯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