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연타석포…이정후 최고의 영입인데, 잘린 사장, 부사장만 억울해

조회 184,6512025. 4. 13. 수정

봇물 터진 홈런포

그야말로 봇물이 터졌다. 이정후(26)의 홈런포 말이다.

마치 드라마 찍는 것 같다. 치기는 제법 친다. 그런데 자꾸 2루타만 쌓인다. 그러자 말들이 나온다. 홈구장 탓인가? 그래도 3번 타자 아니냐. 중요할 때 큰 것 하나씩 쳐줘야 한다. 끝도 없는 요구 사항이다.

그런 불만을 들은 것 같다. “이런 거 말씀하는 건가?” 하면서 슬슬 히든카드를 꺼낸다. 그 속에서 연달아 홈런포가 쏟아진다.

주말(한국시간 12~14일) 양키스 3연전이다. 원정 시리즈는 완전히 그를 위한 무대였다.

첫날 결승 3점포는 예고에 불과하다. 마지막 3차전에서 불꽃이 폭발한다. 우리 시간으로는 월요일 새벽 시간이다.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을 터트렸다. 기어이 자기 손으로 승부를 뒤집는다. 0-3으로 끌려가던 스코어는 단번에 4-3으로 뒤바뀐다.

상대는 좌완 카를로스 로돈(32)이다. 지난해 16승 9패로 활약했다. 이날도 나쁘지 않다. 싱커와 슬라이더, 커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자이언츠 타선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한다.

5.2이닝 동안 거의 완벽했다. 삼진 8개를 빼내며 농락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딱 한 명 때문이다. 바로 3번 자리에 버틴 타자가 뜻대로 안 된다.

1회 첫 타석은 그럭저럭 넘겼다. 카운트 2-2에서 5구째 슬라이더였다. 타이밍은 맞았다. 타구도 직선으로 뻗는다. 그러나 중견수 정면으로 갔다. 어렵지 않게 이닝을 마쳤다.

그러면서 타선의 지원을 받는다. 1회 1점, 2회 2점. 스코어 3-0으로 승리를 꿈꾼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처음 본 커브에 완벽한 반응

그렇게 4회 초를 맞았다. 자이언츠 타자들은 두 번째 턴이다. 1사 후 주자는 없다. 문제의 타자가 등장한다.

어쩐지 심상치 않다. 유인구에도 잘 걸려들지 않는다. 실랑이가 벌어진다. 카운트 3-2까지 간다. 그러던 6구째다. 결정구는 86마일 슬라이더였다. 낮은 쪽으로 떨어트린다. 헛스윙이나 땅볼을 기대하는 볼 배합이다.

그런데 이걸 쳐낸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눈치다. 완벽한 타이밍으로 걷어 올린다. 타구는 우중간으로 까마득히 솟는다. 출구 속도 103.2마일, 발사각도 29도짜리 미사일이다. 124미터(406피트)를 날아가 담장 너머로 사라진다. 추격의 솔로 홈런, 점수는 1-3으로 좁혀진다.

결정타는 다음 타석이다. 6회 1사 1, 2루의 찬스가 걸렸다. 양키스는 살짝 긴장한다.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 미팅을 갖는다. 끝내 투수 교체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 된다.

로돈과 이정후의 재대결이다. 이번에도 투 스트라이크까지는 선점했다. 카운트 1-2에서 5구째다. 회심의 커브(82마일)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이정후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구종이다.

그러나 소용없다. 타자는 아무렇지 않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진작 좀 주시지.’ 하는 반응이다. 냉큼 스윙이 나온다. 거칠 것 없는 기세다.

이번에도 비슷한 곳으로 날아간다. 우익수 뒤편이다. 출구 속도 95마일, 발사각도 25도짜리 타구다. 363피트(111미터)를 비행해, 관중석에 기념품으로 제공된다. 단번에 승부를 뒤집는(스코어 4-3) 역전 스리런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좌타자에게 첫 연타석 피홈런

승부는 결국 5-4로 끝났다. 5점 중 4점을 혼자 해결했다. 데뷔 첫 뉴욕 원정을, 데뷔 첫 연타석 홈런으로 찐~하게 장식한 셈이다.

‘덕분에’가 많다. 자이언츠는 원정 3연전을 2승 1패로 끝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위닝 시리즈는 흔치 않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덕분에’ 죽음의 조 NL 서부에서 상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선발 로건 웹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승리투수가 됐다. 초반 3실점으로 고전했지만, 기분 좋은 2승째를 거뒀다.

반대로 상대 로돈에게는 뼈아픈 일전이다. 그동안은 좌타자에게 저승사자 같은 투수였다. 자이언츠도 왼쪽 타자를 모두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유일하게 남긴 1명이 이정후다. 그걸 넘지 못해, 1패를 당한 셈이다. 10년 차 로돈이 처음으로 좌타자에게 연타석 홈런을 허용한 게임이었다.

이날 활약상에 중계석도 흥분했다. 자이언츠를 전담하는 NBC 베이 에리어는 전설의 타자들을 모두 입에 올린다. 베이브 루스, 미키 맨틀, 레지 잭슨의 이름을 외친다. 이날 정후 리의 활약이 그들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MLB.com 공식 홈페이지도 그의 활약상을 메인 화면에 올렸다. 전국구 스타로 손색이 없다.

3타수 2안타 1볼넷. 홈런 2개로 2득점과 4타점을 쓸어 담았다. 타율은 0.352로 올라갔다. OPS는 무려 1.130이 됐다. 압도적인 수치임은 물론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작년 10월 구단 수뇌부의 경질

작년 10월이 생각난다. 샌프란시스코의 가을은 유독 을씨년스러웠다. 구단 수뇌부가 모두 교체된 것이다. 파한 자이디 사장과 피트 푸틸라 GM(단장)을 동시에 경질했다. 대신 버스터 포지와 잭 미내시언이 그 자리를 채웠다.

파한 자이디는 꽤 유명한 인물이다. 영화 머니볼의 배경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잔뼈가 굵었다. 단장 보좌역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4년 다저스로 이직해, 앤드류 프리드먼 사단에 합류했다.

그러던 2018년 샌프란시스코로 직장을 옮겼다. 일약 사장으로 발탁, 스카우트된 것이다. 침체된 자이언츠를 깨워 달라는 기대가 걸린 파격적인 인사였다.

하지만 6년간 이렇다 할 실적은 없었다. 대신 라이벌 다저스의 약진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더 속이 쓰렸는지 모른다.

해임 과정에 달갑지 않은 이름이 언급된다. ‘바람의 손자’ 영입에 대한 의문이다. ‘그 정도 선수는 아닌 것 같다’, ‘너무 많이 준 것 아니냐(6년 1억 1300만 달러)’ 같은 얘기들이다.

사실 딱히 반박할 말도 없다. 뭔가를 보여줄 시간도 없었다. 겨우 37게임이 전부였다. 타율 0.262로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그나마도 다쳐서 일찌감치 시즌을 마쳐야 했다.

지금은 둘 다 재취업에 성공했다. 파한 자이디는 다저스로 돌아갔다(사장 특별보좌역). 피트 푸틸라도 브레이브스 부단장으로 계약했다.

그런 생각이다. 이번 양키스 원정 3연전 말이다. 여기서 이정후의 눈부신 활약이 펼쳐졌다. 그걸 보면서, 적어도 자이디와 푸틸라가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본 게 맞다. 충분히 그 정도 가치 있는 영입이다.’ 그걸 입증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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