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의 선동열'. 5~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투수. 고교 시절 52이닝 무자책점, 최고 구속 151km.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한국까지 날아와 지켜봤고, KIA 타이거즈는 당시 역대 최고 계약금 10억원을 한 번에 지급하며 데려왔다. '10억 팔' 한기주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선수는 서른두 살에 은퇴했다. 토미존 수술, 어깨 회전근 파열. 투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전부 겪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고교 시절 혹사도 문제였지만, 프로 입단 후 19살짜리를 갈아 넣은 서정환 감독의 운용이 결정타였다.
입단할 때 이미 팔꿈치가 정상이 아니었다

한기주는 광주 동성고 시절부터 혹사의 연속이었다. 동성고는 광주일고처럼 편하게 전국대회 성적이 나오는 팀이 아니었다. 감독의 일자리, 동기들의 취업 문제, 한일전 국제대회까지. 에이스 한기주는 쉴 틈 없이 던져야 했다.

2005년 KIA 입단 당시 메이저리그에서도 입질이 왔지만, 팔 상태가 문제여서 한국에 남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실제로 2009년 토미존 수술 전 검사에서 "팔꿈치 상태는 고교 시절부터 정상이 아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선발투수로 뛰기에는 이미 무리가 있는 몸이었던 것이다. KIA도 이를 알았는지 첫해 동계훈련을 스킵시켰다. 휴식을 준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은 결정이었다.
선발 부진 → 불펜 전환, 그리고 지옥이 시작됐다

2006년 한기주는 5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갔다. 하지만 팔꿈치 통증 때문에 슬라이더나 스플리터를 마음껏 던지지 못했고, 거의 직구 원피칭으로 버텨야 했다. 동계훈련도 스킵한 19살이 구종 제한까지 받으니 선발에서 털릴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동기 신인 류현진이 '랜디현진' 소리를 들으며 리그를 씹어먹고 있었다. 언론은 연일 한기주 때리기에 나섰고, 소심한 성격의 한기주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졌다.

그런데 직구 하나는 워낙 좋으니 불펜으로 돌렸다. 여기서 사단이 났다. 불펜에서 씹어먹기 시작한 것이다. 좀 못했으면 2군도 가고 재활도 했을 텐데, 한기주 불펜빨로 전년도 꼴찌 KIA가 4강에 올라가는 일이 벌어졌다.
19살을 임창용보다 더 혹사시켰다

당시 서정환 감독의 한기주 운용은 처참했다. 임창용이 '애니콜'로 불리며 혹사당하던 시절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거나, 연투 같은 건 오히려 더 심했다. 그것도 미국에서는 유리병처럼 다루는 19살짜리를.
당시 KIA 불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있다. 같은 불펜 멤버였던 신용운의 싸이월드 상태메시지다. "5강 못 가도 되니 애들 굴리지만 맙시다... 딱히 굴릴 애도 없긴 하지만." 선수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007년에는 마무리로 올라갔다. 성적은 커리어 하이를 찍었지만 함정이 있었다. 터프세이브를 7개나 기록한 것이다. 소심한 성격에 마무리에 맞지도 않는 선수가 버티기 힘든 상황마다 올라가서 해결하고 내려왔는데, 그게 전부 데미지로 쌓였다.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무너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까지 땄다. 2년 연속 25세이브, 1점대 평균자책점. 커리어 하이였다. 그런데 2009년 4월, 갑자기 무너졌다. 허리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고, 7월에는 어깨 부상, 재활 중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결국 토미존 수술을 결정했다.

2011년 복귀해 140km 후반 구속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지만, 손가락 부상으로 또 엔트리에서 빠졌다. 2013년에는 어깨 회전근 파열이라는 투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2년 재활 끝에 2015년 641일 만에 1군 복귀, 2016년 1460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지만, 결국 2018년 서른두 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만약 제대로 관리받았다면

한기주가 프로 첫 지도자를 투수 관리에 인식이 있었던 감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고교 시절 던지던 직구를 본 사람들은 지금도 아쉬워한다. 포수 미트에 '꽂힌다'가 아니라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던 공이었다.
'10억 팔'은 그렇게 사라졌다. 5~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 19살에 백정처럼 갈려 나가며 무너졌다. 한국 야구 유망주 관리 시스템의 비극적인 단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