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난 현대차, 미국 투자 36조 늘렸다…트럼프도 못 막는 이 배짱

현대차 조지아 메타플랜트

현대자동차그룹이 전례 없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미국 시장을 향한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 폭탄과 이민 단속 사태라는 이중고를 맞았지만, 정의선 회장은 오히려 미국 투자 규모를 260억 달러(약 36조원)로 대폭 확대하며 ‘미래 생존 전략’에 올인하고 있다.

관세 폭탄에도 흔들림 없는 현대차의 배짱

2025년 현대차가 직면한 미국 시장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부터 한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은 분기당 2조원씩 증발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 관세율이 연말까지 유지될 경우 손실액이 무려 8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자체 흡수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가격을 올리면 판매량이 급감할 것이 뻔하고, 이미 15% 관세율을 적용받는 일본과 유럽 브랜드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기 수익을 포기하고 시장 점유율을 지키겠다는 현대차의 장기 전략을 보여준다.

정의선 회장 미국 투자 발표
36조원 투자, 정의선의 승부수

현대차는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2025년부터 2028년까지 4년간 26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기존 투자액 205억 달러를 훌쩍 넘어서는 역대급 규모다. 특히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에만 27억 달러(약 3조6000억원)를 추가 투자하고 3000명을 신규 고용한다는 계획이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는 미국 사회의 일부이며, 조지아에서만 15년 이상 사업을 운영해왔다”며 미국 시장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유럽에서는 폭스바겐·BMW·스텔란티스와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미국은 현대차가 글로벌 3위 완성차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시장이다.

관세 협상 타결 임박, 숨통 트이나

최근 한미 관세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현대차에도 희망의 빛이 보이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앞으로 10일 안에 무엇인가를 예상한다”며 협상 타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관세율이 15%로 낮아지면 현대차그룹의 관세 부담은 연간 5조3000억원으로 줄어들고, 영업이익률도 7.5%까지 회복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빠르면 11월부터 자동차 관세가 15%로 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관세 인하 기대감을 반영해 현대차 목표주가를 26만5000원에서 27만원으로, 기아는 12만원에서 14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현대차 관세 위기
미국 현지화 전략, 관세 리스크 최소화

현대차는 중장기적으로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대폭 확대해 관세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전략이다. 조지아 메타플랜트는 이미 2025년 3월 준공돼 제네시스 GV70 전기차와 현대 아이오닉5·아이오닉9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2026년부터는 본격적인 양산 체제에 돌입한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미국 내 연간 생산 능력을 120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는 한국에서 수출하는 물량을 대폭 줄이고 미국 현지에서 생산·판매하는 구조로 전환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CEO)는 “글로벌 거점에서의 영향력을 골고루 키워 관세 폭탄을 정면 돌파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이브리드 2배 확대, 전기차 축소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현대차는 미국 시장 전략도 대폭 수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하이브리드 모델 비중을 기존 대비 2배로 늘린다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이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를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현대차도 이에 맞춰 제품 라인업을 재편하고 있다.

반면 전기차 판매 목표는 하향 조정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를 추진하면서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며 수익성 중심 전략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미국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는 중국과 인도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현지 맞춤형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고, 인도에서는 SUV 라인업을 확대하며 판매망 다각화에 나섰다. 현대차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는 만큼 특정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여러 거점을 골고루 강화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가 만든 위기, 기업이 감당하는 현실

현대차가 직면한 위기는 기업 경영 실패가 아닌 정치적 결정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와 보호무역 정책은 현대차뿐 아니라 GM·마쓰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와 전략 수정으로 맞서고 있다.

정의선 회장의 36조원 투자 결정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관세율이 15%로 낮아지고 현지 생산이 본격화되면 현대차는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 견뎌야 할 고통은 만만치 않다. 현대차의 미국 전략이 성공할지, 아니면 정치적 변수에 무릎 꿇을지는 앞으로 2~3년이 결정적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