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보다 고구마"…변영주 감독의 스릴러 소신[EN:터뷰]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2024. 10. 16. 0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핵심요약
10년 만 MBC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연출로 복귀
변영주 감독. MBC 제공

변영주 감독에게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이하 '백설공주')은 무려 10년 만의 복귀작이었다. 줄곧 영화계에 몸 담았던 그가 지상파 드라마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 따라왔다. 영화 '화차'로 잘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가 무엇인지 증명했던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같은 장르로 승부수를 띄웠다.

처음부터 '백설공주'가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반향을 얻을 것이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변영주 감독은 강렬한 기억의 '화차'로 여전히 회자되지만 지난 10년 간 영화 감독보다는 재치 있는 입담의 '방송인'으로 더 익숙했다. 원작이 한국에서 인기 있는 소설도 아니었으며, 사이다 수사·법정·액션물 외의 장르 드라마가 최근 흥행한 적이 없다시피 했다. 치열한 금토일 드라마 대전 속에서 '백설공주'와 맞붙은 '굿파트너' 역시 대중이 열광하는 '사이다 서사'의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변영주 감독의 예리한 '떡밥' 회수와 이야기의 '끝'을 보고 싶게 만드는 서사 쌓기, 그리고 구멍 하나 없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시청자들을 서서히 매료시켰다. '백설공주'는 최고 시청률 8.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지금까지 사이다 공식에 지친 이들을 끌어 모았다. 10년 동안 미디어 트렌드도, 플랫폼 산업도, 대중의 취향도 많이 달라졌지만 '잘 만든' 작품이란 불변의 공식이 결국 통한 셈이다.

"성적이 낮아도 '내'가 안된 거지, '장르' 탓이 아니다." 변영주 감독의 말처럼 그는 '백설공주'를 온전히 책임졌고, 그 결과 스릴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라는 자신감을 증명했다. 다음은 10년 만에 또 한번 '성공한' 스릴러를 탄생시킨 변영주 감독의 일문일답.

Q '백설공주'가 입소문을 타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A 토요일 아침 8시만 되면 방송사에만 오는 2040 시청률 메시지가 있다. 그 때부터 긴장이 되더라. 매주 금요일마다 영화가 개봉하는 느낌이었다. 시청자분들에게 너무 고맙고, 배우들에게 되게 고맙다. 무거운 내용의 이야기임에도 배우들 때문에 버텨서 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Q 요즘 이런 장르물이 인기지만 보통 짧게 끝나는 에피소드나 사이다 서사를 많이 추구하는 것 같다. 상당히 정통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간 이유가 있다면

A 이 장르가 불호 장르가 됐고, 지난 몇년 간 투자사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보지 않는 한 통쾌함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화차' 이후로 제가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걸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가장 좋아하는 장르라 잘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고민도 깊어졌다. 대중이 원하는 장르에 대한 고민보다는 새로운 실마리들처럼, 대중들이 버틸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또 기본적으로 저는 사이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이다로 이 세상의 문제가 해결된 적이 없다. 오히려 고구마들이 계속 버티기 때문에 세상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변영주 감독. MBC 제공


Q 스크린에서 지상파 드라마로 플랫폼이 달라지면서 느낀 변화도 있겠다

A 매화 엔딩을 쫄깃하게 끝내지 못한 것 같다. 특히 드라마는 각 회차별 교집합끼리 연결이 잘 되어야 하는데 그걸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제 인생 드라마가 '손 the guest'인데 작업을 하면서 한 번 더 느꼈다. 제작비가 적었을 거고, 제한된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잘했나 싶더라.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다.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편성이 되어서 공개되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배우들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었다. 제가 시청자일 때는 잔인한 장면을 은유적으로 처리하면 '왜 이렇게 짜치냐'고 생각했지만 당사자가 되니까 다른 방식의 표현 고민이 많아졌다. 또 다음에 지상파 드라마를 한다면 '노담'(담배가 없는) 세계를 가져가야 될 것 같다.

Q 10년 정도 작품을 쉬다 보니 현장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A 필름으로 두 번 영화를 찍고, 디지털이 되어서 '화차'를 찍었었다. 그런데 또 기술적으로 발전해서 현장이 훨씬 빨라졌다. 내가 준비를 많이 안 해오면 다른 핑계를 못 대더라. 딱 주 52시간 촬영이 지켜지는 것도 되게 좋았다. 예전에는 내 오른팔 같던 조감독님이 52시간을 넘기면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단 단호한 표정으로 현장에 계셨다. 멋있었다. 다른 배우들이 저보다 다 드라마 경험이 많으니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드라마는 계산을 되게 열심히 해야 되더라. 우리 설정 중 시체 없는 살인사건은 10년형 받는 게 사실 어려워서 나머지는 리얼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인 권일용 프로파일러 도움도 받았다. 다음엔 아예 자문으로 급여를 주겠다고 뻔뻔하게 부탁했다.

Q 시청자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았지만 연출자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아쉬운 측면도 있을텐데

A 저는 실시간으로는 제 작품을 안 본다. 냉정하게 복기하고 싶어서 한참 뒤에 본다. 객관화를 잘하면 된다. 나이가 들면서 남탓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겼다. 현장에서 의자 주면서 감독님, 감독님 하는 이유가 있다. 욕도 칭찬도 다 내가 먹고, 책임도 내가 지는 거다. 배우의 연기, 모든 결과까지. 대본을 내가 쓰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다. 글이 영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내 책임이 따른다. 대본 때문에 그렇다는 건 치사한 말이다. 만약 '백설공주'가 기대보다 시청률이 낮다 해도 대중이 이런 장르와 이야기를 싫어한다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한다. 연출자에게 책임 전가를 하지 않고 어두운 정서나 장르 핑계를 대는 게 더 나쁜 거다. 감독이 못 만든 거지, 장르 잘못이 아니다.

MBC 제공


Q 주인공 고정우는 10년을 만기 출소하고 나온 살인 전과자다. 쉽지 않은 서사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변요한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아역을 쓰지 않고 변요한에게 직접 교복을 입힌 까닭도 궁금하다

A  일단 영화 '소셜포비아'의 변요한을 사랑했었다. 오랜만에 한 명이 몰고 가는 드라마인데 정말 요한이 캐릭터 동선에 따라 모든 게 이뤄졌다. 그래서 변요한 배우가 칭찬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저는 배우가 잘하면 호들갑을 떠는 스타일이다. 10대 시절 연기는 '다른 배우가 나오면 재미있을까?' 싶었다. 과거와 끊임없이 연동되는 이야기니까. 만약 부자연스러워 보였다면 제가 '디에이징'(나이가 어려 보이게 만드는 작업)을 제대로 못한 탓이다. 제작비가 좀 더 있었다면…. (웃음) 50대를 20대로 만드는 것보다, 30대를 20대로 만드는 게 더 어렵다.

Q 본업인 연출을 쉬는 동안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도 많이 출연했었다. 출연 기준이 따로 있는지 궁금했다

A 내 일과 관계가 있는 것만 나가자고 생각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시사 토크쇼, 이런 데는 나가지 않는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는 좋은 아이디어나 생각을 대신 취재해주셔서 좋았고, '방구석 1열'은 제가 역사 덕후(팬)이다보니 역사 관련을 하면서 많이 배웠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영화를 적게 보진 않았는데 오랜만에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Q 본인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로 글로벌 OTT 산업이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오히려 영화, 극장 산업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많다. 영화계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우리가 과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영화가 예전처럼 '핫' 미디어는 아니지만 계속 안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티켓값 상승 대비 서비스가 좋아졌는지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들이 서비스 부분을 강화해야 할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키오스크 접근이 어려운 노인 관객들이나 SNS 인증샷을 찍는 관객들을 위한 것들 말이다. 어떻게 해야 더 잘될 지 고민해야 되는 것 같다. 또 영화는 2시간 정도를 즐기는 여가 활동이다. 오히려 여가 시간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복원시키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MBC 제공


Q '백설공주'가 본인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이 있다면? 10년 간 본업을 쉬었는데 이제 자주 볼 수 있을까

A 전 사실 게으른 사람이다. 방송 출연은 먹고 살기 위해 한 게 훨씬 컸다. 계획을 세우면서 살면 영화 일을 할까? 그렇게 산 적이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10년을 쉬었다. 웹툰 원작의 '조명가게'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투자가 어려웠다. 오기가 생겨서 다른 제안을 다 거절하고 어떻게든 '조명가게'를 해보려고 했던 시간이 있었다.그런데 이 작품을 하며 다르게 살고자 반성을 했다. 적어도 3년에 두 작품은 해야겠더라. 10월에 내년 7월에 공개될 드라마 촬영을 시작할 거다. 그리고 내년 하반기에는 영화에 들어갈 거 같다. 그리고 또 다시 드라마를 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 나는 2시간 분량에 특화된 사람이라 드라마 대본이 내 영역은 아니다.

Q 차기작 계획이 빈틈없이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A 일단 '조명가게'는 드라마인데 원작과는 많이 다르다. 원작은 로맨스인데 세계관을 가져와서 스릴러로 풀었다. (원작자인) 강풀 작가가 원작을 왜 사냐고 하더라. (웃음) 그 다음, 다음 작품도 웹툰 원작으로 확정이 됐다. 그 다음 작품은 시간이 있을텐데 얼마 전에 '화차' 원작 소설의 일본 작가님이 고(故) 이선균 배우 묘소에 참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본인 소설 중에 영상화된 것 중에 여전히 '화차'가 제일 좋다고 하시더라. 그 때 '이유'라는 다른 소설의 판권을 주셨다. 기간을 여쭤봤는데 '안하고 싶을 때까지'라고 이야기 해주셔서 감동을 받았다. 그 작품을 언젠가 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드라마 사극을 하고 싶었다. 영화 사극은 보통 전투 규모가 커야 되는데 드라마 사극은 궁 안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도 가능하더라.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등 설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 지가 중요한 거 같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