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게이트 감독이 보여준 라볼피아나와 비대칭형 백스리

유로 2024 결승에 진출한 잉글랜드. 사진출처=잉글랜드 대표팀 SNS

'라볼피아나와 비대칭형 백스리.'

살짝 아쉬웠다. 딱 이틀. 아니 한국 시간으로 봤을 때, 딱 사흘만 더 기다렸다면 저 단어들을 현실에서 제대로 구사한 감독을 두 눈으로 봤을 것이다. 그랬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유로 2024 대회 내내 비난만 받던 그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였다. 10일 오후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유로 2024 4강전.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라볼피아나와 비대칭형 백스리'를 앞세워 전반 네덜란드를 압도했다.

백스리. 3-4-2-1 전형. 8강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도 들고나온 전형이었다. 당시 잉글랜드의 백스리는 실패했었다. 잔뜩 웅크린 스위스를 상대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다. 전반 45분동안 유효슈팅은 단 0개.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전술 변화는 실패로 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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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전 백스리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비대칭형 백스리가 인상적이었다. 오른쪽 윙백으로 나선 부카요 사카는 사실상의 윙어였다. 공격에 힘을 기울였다. 세 명의 센터백 가운데 오른쪽을 담당한 카일 워커는 줄곧 측면으로 향했다. 센터백이자 사실상의 풀백이자 중앙 미드필더 역할까지 소화했다. 사카가 깊숙하게 올라오고 워커가 뒤를 받치는 상황. 여기에 필 포든도 간격을 조절하며 잘 움직였다. 측면과 중앙을 오갔다. 페널티 에어리어 코너 쪽에서 사카나 워커의 패스를 받은 후 때리는 감아차기 슈팅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벨링엄도 중앙을 받쳤다.

라볼피아나도 잘 돌아갔다. 워커가 측면으로 빠지면 중앙 미드필더인 데클란 라이스가 마크 게히와 존 스톤스 사이로 들어갔다. 볼을 받으면서 빌드업의 출발점 역할을 했다. 코비 마이누가 내려갈 때도 있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허리에 숫자를 늘렸다.

이 결과 잉글랜드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중원을 장악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내세운 비대칭형 스리백 그리고 라볼피아나는 완전 성공이었다. 전반 점유율에서는 63%로 37%에 그친 네덜란드를 압도했다. 전체 슈팅 역시 7대3. 유효슈팅은 4대1로 앞섰다. 골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전반은 1-1로 끝났다. 잉글랜드로서는 아쉬웠지만 동시에 만족할만한 전반전이었다.

사진캡쳐=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여기까지 보면 너무나 아쉽다. 이 경기 이틀 전인 8일 대한민국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건물.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 총괄이사가 발표한 차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딱 들어맞는 인재였다. 이임생 이사는 홍명보 울산 HD 감독의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발표하면서 '라볼피아나 형태와 비대칭 백스리를 쓴다'고 평가했다. 이는 우리 축구 대표팀에 꼭 맞는 전술이라고 극찬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이사는 "선수 장점들을 잘 살려 어태킹 서드에서의 라인 브레이킹, 카운터와 크로스, 측면 콤비네이션 등에서 다양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가 설명한 것들, 즉 한국 축구 대표팀이 홍명보 감독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전술적 특징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 경기 전반전에서 완벽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쉬웠다. 7월 8일이 아니라 유로 2024 결승전이 끝나는 7월 14일 이후까지만 기다렸다면, '라볼피아나와 비대칭 백스리'를 잘 쓰는 감독을 접촉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아쉬운 기회를 하나 날렸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 사진출처=잉글랜드 국가대표팀 SNS

'라볼피아나와 비대칭형 백스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사우스게이트 감독도 후반 들어 실책을 범했다. 후반 시작 직전 키어런 트리피어를 빼고 루크 쇼를 투입했다. 그리고 백포로 전환했다.

이유는 있었다. 우선 트리피어가 다쳤다.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여기에 변화가 많아 안정성이 떨어지는 변형(비대칭) 백스리보다는 안정적인 백포를 구축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후반 잉글랜드의 경기력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답답한 공격력의 늪에서 허덕였다. 후반 말미 교체로 들어간 올리 왓킨스의 골이 아니었다면 연장전 그리고 승부차기까지 갔을 수도 있었다. 어떠한 상황이었든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전술적 역량은 한계를 보였다.

쓸데없는 사족이자 동시에 망상을 해본다. 혹시나 '라볼피아나와 비대칭 백스리'를 잘 쓰던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머릿 속에 '갑자기 대한축구협회가 오퍼를 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