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이끼' 옥상정원 제안하다..."기후변화 시대 끝내는 대안 될 수도"
건물 옥상에 '이끼'를 기르면...공기정화, 이산화탄소 흡수, 산소공급 '일거다득'(一擧多得)
도시농업을 하다보면 먼저 건강한 먹거리 생산을 떠올린다. 하지만 건강한 먹거리 생산을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래서 도시농부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우리 도시농업 시민단체인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의 주요연구 과제는 빗물과 이끼이다.
그 중에서 우리가 왜 이끼에 대해 연구를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지 말해 보고자 한다.
이끼 연구의 출발은 옥상녹화 운동에서 시작됐다. 도시를 덮고 있는 빌딩숲 위 옥상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고 방수를 위해 화학물질로 범벅을 해 놓은 출입금지의 영역이다.
콘크리트 상태이거나 우레탄 방수처리한 옥상은 태양빛을 그대로 반사시켜 대기의 온도를 올려 도시열섬화를 가속화한다. 그래서 우리 도시농부들은 도시열섬화 방지를 위해 옥상녹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일부 옥상정원이 꾸며진 곳이 있지만 무거운 흙이 주는 하중문제와 식물의 뿌리로 인한 건물의 손상으로 인한 누수 문제, 지속적인 관리의 필요성에 따른 비용문제 등이 옥상녹화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멋들어지게 만든 옥상정원을 철거하고 다시 우레탄 방수로 돌아가곤 한다.
도시농부들은 옥상녹화를 위해 건물에 하중을 주지 않으면서도 생명력이 강한 식물을 찾아나섰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강한 생명력의 이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흙이나 바위 위에서 녹색 쿠션처럼 자라는 이끼는 단순한 식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환경에 놀라운 영향을 미치는, 작지만 강한 자연의 영웅이다.
이끼는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도 잘 견디는 강인한 식물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도시의 미세먼지와 자동차 배기가스로 탁해진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잎 표면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공기 중의 유해 물질을 흡수하고, 대신 산소를 배출하는 것.
자연이 선물한 공기 청정기 같은 존재이다.
연구에 따르면 30cm×60cm 크기의 이끼 한판은 30년생 소나무 세그루와 맞먹는 이산화탄소 흡수와 산소 배출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끼는 또 옥상녹화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하중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끼가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흙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얇은 상토에서도 잘 자라고 부직포나 헌 옷감 위에서도 기를 수 있다. 이끼가 주는 잇점을 알았으니 이제 필요한것은 실천이다. 해보는 거다.
지난달 노원구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 옥상에 있는 태양광시설 아래에 이끼 재배시설과 이끼 정원을 만들었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감탄했다. 성급하게도 옥상녹화의 성공을 기뻐했다. 하지만 그곳은 태양광 아래 음지였다.
이끼 옥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옥상처럼 태양이 작열하는 그런 곳이 필요했다.
옥상녹화를 위한 실험적 장소를 물색하는 차에 생태환경에 관심 많은 노원초등학교와 이야기가 잘 돼 옥상에 거대한 이끼재배 시설을 만들었다.
노원초등학교 옥상은 접근성과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악하지만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분들이 매년 녹색커튼을 설치할 정도로 환경에 관심이 많아 우리 시민단체와 협업으로 옥상에 이끼재배장을 만들게 됐다.
실험을 고려한 시설이었다. 각파이프 재배대를 만들고 한 곳에는 이끼 씨앗을 뿌리고 차광막을 덮어 이끼를 키웠다. 다른 곳에는 천수텃밭 숲속에서 모판 위 야자매트에 키운 이끼와 이끼연구소에서 구매한 탄소꽃이끼를 깔아 자연광을 고스란히 받게 재배했다. 그리고 두 곳 모두에 자동관수 방식으로 수분을 공급했다.
이끼를 옥상의 뜨거운 태양에 노출시켜 키우는 방식이라 실패의 염려도 있지만 자연상태에서 이끼가 어떻게 자라고 적응하는지 실험하고자 했다. 또 자연상태로 재배하는데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보완해 도심의 인공지반 옥상녹화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많은 단체가 힘을 합쳤다. 실험결과를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 데이터 수집은 생태 환경 적정기술 선구업체인 하늘나무에서 센서를 설치하고 온라인으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도록 했다.
필자가 운영하는 그린메이커스는 기반 시설의 설계와 설치를 맡았다. 그리고 LH와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는 연구 과제 진행을 위한 전체적인 틀과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노원초등학교는 장소를 제공했다. 여러 단체가 협업한 아름다운 사례이다.
시민들에게 이끼의 공기정화능력을 알리고자 하는 노력은 이전부터 계속해 왔다.
2023년에 서울과학관에서 열린 메이커페어, 노원구 차없는거리, 도시농업박람회 등 다양한 곳에 출품한 공기정화 이끼벤치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이끼의 효능을 알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간혹 구매할 수 있겠냐는 제안도 받았다.
생태환경 수업에서 이끼 테라리움을 만들면서 이끼에 대해 토론하는 과정 또한 수없이 반복했다. 사실 우리 단체의 인기 수업 중 하나이다.
필자는 우리 주변에 아주 흔하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끼야말로 탁월한 공기정화능력을 갖춘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한다.
이 작은 영웅이 기후변화 시대를 끝내주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