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돌아가셔도 울지 않는다.." 요즘 60대 사이에 퍼지고 있는 이상한 현상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크게 우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담담하게 장례를 치르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이별을 준비해 온 사람일수록 감정을 조용히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슬픔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다.

1. 오랜 간병으로 이미 마음의 이별을 경험한 경우

수년 동안 병간호를 하며 부모를 돌본 사람은 장례식보다 그 이전에 이미 수없이 울었을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부모의 아픔을 함께 지켜보면서 마음속에서는 조금씩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는 눈물보다 허탈함과 안도감이 먼저 찾아오기도 한다. 이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랜 돌봄이 남긴 감정의 결과일 수 있다.

2.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서는 경우

상주가 된 자녀는 조문객을 맞이하고 장례 절차를 챙기느라 감정을 표현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끝까지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가 모든 절차가 끝난 뒤에야 슬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장례식이 끝난 뒤 한참 지나서야 부모의 빈자리를 실감하기도 한다. 슬픔은 즉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3.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세대 문화

현재의 60대 가운데는 어려서부터 "울지 마라", "강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슬퍼도 눈물로 표현하기보다 마음속으로 견디는 것이 익숙한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여도 속으로는 깊은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도 많다. 감정 표현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4. 살아 계실 때 이미 마음의 거리가 멀어졌던 경우

오랜 갈등이나 소원함으로 부모와 자녀가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버린 경우다. 사람은 육체적인 이별보다 먼저 마음의 이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장례식에서 눈물이 적다고 해서 부모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가장 슬픈 관계는 마지막 순간에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실 때 서로의 마음을 끝내 전하지 못한 관계일 수 있다.

장례식에서 얼마나 울었는지가 부모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슬픔은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도, 나타나는 시기도 모두 다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눈물이 아니라 살아 계실 때 함께했던 시간과 서로에게 건넨 마음이다. 결국 후회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부모님께 안부를 묻고,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미리 전하는 것이다.

Copyright © 성장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