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갖다 대자 맛집 메뉴가 바로 떴다
태블릿 필요 없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테이블오더 서비스 개발기
매장 오픈부터 마감까지 한시도 쉴 수 없는 점주들에게 신기술 도입이나 매장 운영방식을 바꾸는 건 크나큰 과제다. 티엠알파운더스의 김영호 대표(28)는 점주들을 위해 비용과 관리 부담이 적은 특별한 테이블오더를 개발했다. 김 대표를 만나 개발기를 들었다.
◇배부르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던 첫 창업
96년생 개발자다. 한국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창업을 꿈으로 못박은 적은 없지만 사람들에게 효용을 주는 서비스 만드는 일에 늘 관심이 많았다. 석사 학위 중 첫 창업 경험을 했다. 자율주행 로봇으로 자재 및 재고 관리를 하는 솔루션을 개발한 회사였다. 이곳에서 공동창업자이자 컴퓨터 비전 분야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근무했다.
- 지금 운영하는 회사와 결이 많이 다르네요.
“창업이 의미 있으려면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부 지원금만 수주하는 회사가 됐어요. 지원금이나 산학협력으로 몇 억원을 턱턱 받아오니 월급은 높았지만 의미가 없었어요. 창업이 이런 건가 허무했죠. 지인들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티엠알파운더스의 정지운 이사도 상담 상대 중 하나였죠. 활력을 찾기 위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하루는 티엠알파운더스 공동창업자 셋이 카페에 모였어요. 우리가 보유한 개발 능력으로 앞으로 뭘 해야 하나 의논하다가 문득 호기심이 동했어요. 이 카페의 사장님은 왜 창업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바로 물어보니 질문에 대한 답은 안하고 창업이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한 이야기를 장장 두시간을 하더라고요. 들어보니 납득이 갔어요.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세금, 노무 등의 분야를 습득해야 사업이 원활히 이뤄지는 구조였죠. 카페 사장님의 하소연에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 분들을 도울 솔루션을 만들기로 했죠.”
◇카페 창업자 지원 플랫폼 개발
카페 사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렇게 240명의 창업 사례를 모았다. 콘텐츠와 가구, 커피 머신, 식재료 구매를 연계한 커머스 서비스도 론칭했다. 임차보증금 지원 사업과 카페 창업 모의 견적 서비스도 함께 운영했다. 자영업자 원스톱 창업 플랫폼 ‘내일의 창업’은 그렇게 출발했다.
- 자영업 중에서도 ‘카페’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21년, 2022년쯤 카페 붐이 일었습니다. 전국에 12만곳 이상의 카페가 설립되던 시점이었어요. 모든 자영업자를 타깃으로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메인 카테고리엔 카페를 전략적으로 택한 것이죠. 사실 거창한 결심을 토대로 시작한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마음이 전부였어요.”
- 호응을 얻으려면 가려운 데를 긁어야 하지 않나요.
“사장님들이 창업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점들을 모아 보니,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게 임차보증금 확보였어요. 좋은 자리에 입점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보증금을 감당해야 했어요. 그래서 보증금을 대신 내고, 매출의 일부를 공유 받는 수익 모델을 도입했죠. 투명하지 않은 기기 구매 견적도 문제였어요. 제품 구성이 똑같아도 A 유통사는 1000만원을, B 유통사는 1400만원을 부르는 일이 비일비재했거든요. 비품 견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모의견적 서비스도 운영했습니다.”
- 창업이란 산 넘어 산이군요.
“맞아요. 카페를 창업하기 위해 21단계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모든 단계가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카페로 성공한 분들과 예비 창업자를 연결하는 프리미엄 컨설팅 서비스도 운영했었습니다. 원하는 분에게 카페 창업 및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 컨설팅 프로그램이었죠.”
◇마냥 편한 줄 알았던 테이블오더의 함정
내일의 창업을 운영하면서 만난 카페 사장들이 공통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영역이 있었다. 테이블 오더와 키오스크 사용에 대한 불평이었다. 태블릿이 필요 없는 테이블오더 시스템을 구상하게 된 계기다.
- 태블릿 기반의 테이블오더를 사용하면 아주 편한데요.
“운영방식이 문제였어요. 도입 시 36개월의 약정 기간과 1000만원 가량의 위약금을 요구합니다. 약정 기간 동안 폐업이라도 하면 골치 아파집니다. 단 기간에 양도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가게 문을 닫고도 임대료를 내야해요. 위약금을 내기 위해서 폐업 후 공장에 다니는 사장님도 있었어요. 기존의 테이블오더를 대체할 솔루션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 어떤 솔루션이요.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어요. 근거리 무선통신(NFC)을 탑재한 스티커 방식의 최소기능모델(MVP)을 개발했어요. 스티커를 테이블에 붙인 후, 휴대폰을 스티커에 갖다 대면 메뉴판이 떠서 비대면 주문을 할 수 있는 방식이었죠.”
- 시장 반응이 어떻던가요.
“처음엔 반응이 저조했어요. 오프라인 영업을 하려고 매장 문을 두드리면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죠. 어떻게 해도 안 팔리는 거 온라인 광고나 돌려보자는 마음으로 아주 소액으로 광고를 집행했는데요. 바로 고객 4명을 유치했습니다. 이자카야와 맥줏집이었죠. 그중 한 분은 다른 테이블오더의 약정 기간이 끝나 가서 저희로 갈아타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어요. 어떤 분은 태블릿을 설치할 수 없는 야장 테이블에 붙일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희가 몰랐던 수요가 나왔어요.”
- 반응이 나와서 좋았겠어요.
“대면 영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계속 문을 두드렸는데요. 점주들이 텔레마케팅에 지쳐 있더라고요.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온라인 광고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점차 광고비를 올렸고, ‘태그히어는 힙하다’, ‘정말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소구점으로 잡았어요. 콘텐츠도 한 몫 했습니다. 타 테이블오더와 비교하는 영상을 올렸더니 곧바로 조회수 14만건을 기록했어요. 태그히어를 통한 거래액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어요. 첫 주 차에 1억원, 두번째 주에 2억원 이런 식으로 커졌죠. 요즘은 한 주에 10억원 정도의 거래가 발생합니다.”
◇대형 PC방과 호텔도 도입
2023년 10월, 내일의 창업 서비스를 종료하고 태그히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태그히어 정식 버전도 출시했다. 사용법은 MVP모델과 유사하다. 테이블에 부착된 태그에 휴대폰을 갖다 대면 메뉴판이 뜬다. 애플리케이션 설치나 로그인 같은 번거로운 절차가 없다. 원하는 메뉴를 담아서 주문 버튼을 누르면 매장의 포스기에 연동된다. 전기공사 및 설치, 충전이 필요 없어서 간편하다. QR코드 기반의 서비스와 달리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없다. 방수 소재라 테라스나 야장 테이블에도 도입 가능하다.
- 매장 운영에 이런 최신 기술이 필요한가요.
“2000년대 초반 내비게이션을 구매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길 안내 소프트웨어를 휴대폰에 설치해서 사용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이행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아직 점주들이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자영업자들은 기술의 소외계층입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기술과 이를 못 따라잡는 점주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휴대폰과 NFC는 현 시점에서 가장 최선의 매개였고요. 만약 더 파급력 있고 효율적인 수단이 생긴다면, 언제든 이를 활용할 계획이에요.”
- 태그히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인상 깊었던 사례가 몇 가지 있었어요. 400평 규모의 대형 PC방에서 태그히어를 도입했습니다. 보통 PC방에서 컴퓨터로 식사를 주문하면 아르바이트생이 주문자의 자리에 단말기를 가지고 와서 결제를 진행하는데요. 태그히어로 식사 주문 시 아르바이트생이 자리에 와서 결제하는 단계가 생략됩니다. 주문뿐만 아니라 결제까지 한 번에 해결 가능하거든요. 강원도 평창의 켄신텅 호텔도 태그히어를 도입했어요. 룸서비스 주문과 특산품 구매를 연계했죠. 지방이 호텔은 신규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태그히어를 도입해서 프론트로 가는 콜(call)수를 줄이면, 인원을 다른 업무에 투입할 수 있어요. 투숙객에게 효용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호텔 운영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죠.”
- 이해관계자들은 이 솔루션으로 어떤 효용을 얻을 수 있나요.
“인건비 절감 효과가 가장 큽니다. 직원을 둘 고용한 넒은 주점이 있다고 가정할게요. 술이나 메뉴를 추가하려면 호출벨을 누르고, 직원과 일대일 소통을 해야 합니다. 그 테이블에 묶인 직원은 다른 테이블에 신경을 쓸 수가 없게 되죠. 아무리 불러도 직원이 오지 않으면 손님은 추가 주문 의욕이 꺾이고요. 태그히어를 도입하면 직원과 소통할 필요 없이 동시 주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건비 효율은 오르고, 동일 시간 대비 주문 건수가 증가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요.”
◇유명 프랜차이즈와 계약, 사용자 수 80만 돌파
지금까지 6500개의 테이블에 태그히어를 설치했다. 점주들에게 심적 부담을 주는 약정기간과 위약금은 과감히 없앴다. 소비자와 점주 모두에게 편리한 서비스라고 소문이 나면서 하루 20건 이상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 본사 와도 계약했다. 사용자 수는 80만명을 돌파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22년 내일의 창업 아이디어로 정주영창업경진대회 본선에 진출했다. 지난 4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 점주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태그히어를 설치하고 매장의 모든 메뉴판을 버린 사진을 보여준 분이 있었어요. 이제 메뉴판 없이도 주문이 가능하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였죠. 모든 투자사들의 인터뷰를 해준 점주도 두 분 있었어요. 강점과 약점을 솔직하게 말해준 덕분에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죠. 아직 작은 회사지만 우리 서비스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격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여러가지 새로운 기능 도입을 앞두고 있어요. 우선 다국어 메뉴판을 론칭할 계획입니다. 그럼 외국인 손님도 무리 없이 받을 수 있겠죠. 혼잡 시간대에 한정해 태그히어 내 결제 건의 수수료율을 낮추는 방언도 추진하고 있어요. 태그히어로 테이블에서 결제하는 게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높은 수수료 때문에 점주분들이 섣불리 도입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점심시간처럼 붐비는 시간대에 한해 태그히어로 결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수렴해 한시적으로 수수료율을 낮추기로 했습니다. 올해 설치 가맹점 6000곳을 달성하는 게 목표인데요. 차츰차츰 서비스를 고도화하다 보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 엘리트 창업을 했다가 자영업자들의 세계로 유입된 소회가 궁금해요.
“첫 창업 때는 취미로 골프도 치고 비싼 차를 알아보고 다닐 정도로 보수가 괜찮았어요. 지금은 야근 후 집에 늦게 들어가서 아내에게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게 일상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하게 힘든 게 아니라 기분 좋게 힘들어요. 이 일을 택하길 잘한 것 같아요. CEO지만 점주분들과 직접 소통해요. 모든 절차를 끝낸 후 듣는 ‘고맙습니다’그 한마디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거든요. 매일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또 쌓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