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개봉 전날까지 일당 4만원 막노동했던 무명배우

김성균은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마산과 삼천포에서 무대에 섰고, 꿈을 좇아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대학로에서 무려 7년을 버텼다.

오디션은 번번이 떨어졌고, 생계는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택배 상하차를 하며 하루 일당 4만 원을 받았어요. 밤엔 성인극, 아침엔 아동극까지 뛰었죠.”

생활비, 병원비, 아이 분유 값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는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다.

반지하 방엔 곰팡이가 피었고, 습한 공기 속에서 아이를 씻기면서는 ‘이래도 되나’ 싶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들이 눅눅한 면봉을 입에 넣는 걸 보고, 그때야 알았어요. 연극만 고집해선 안 되겠다는 걸.”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출연 제안이었다.

삶을 버티게 해 준 마지막 끈 같은 기회였다.

<범죄와의 전쟁> 촬영 도중 감독은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냐.”

김성균은 진심을 꺼냈다.

“제 아들이 8개월인데 좀 큽니다. 돌잔치 신도 잘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영화 속 돌잔치 장면에 진짜 아들을 출연시켰다.

출연료 대신 받은 상품권으로 마트에 들렀다. 카트를 밀며 장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아들이 번 돈으로 밥을 사는구나.”

반지하에서 시작된 생존기는 그렇게, 한 장면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 영화는 김성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조폭 연기가 너무 리얼해 실제 조직원으로 오해받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어 출연한 <이웃사람>, <화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전환점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였다.

'삼천포' 캐릭터를 맡아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단역·조연 전문이라는 이미지를 깨는 데 성공했다.

지금 김성균은 양평의 전원주택에서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지만, “사 먹는 게 낫더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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