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로나 직후보다 어렵다" 자영업자 한숨...황학동 거리에 쌓이는 물품
자영업자 폐업 늘며 ‘땡처리 시장’ 발길 뚝
사러 오는 사람 줄어 중고 물품만 한가득
"폐업한 사람 많은데 나아질 기미 안 보여"
[파이낸셜뉴스] "중고 물품이 잘 팔리지 않아 가게들이 연달아 문을 닫았어요. 지난 5월 옆 가게는 장사를 해도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폐업했고, 그 옆 가게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올해 초 장사를 접었죠."
지난 24일 오전 10시께 찾은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 16년째 주방용품 가게를 운영 중인 이모씨(54)는 "예전엔 매일 바빴는데 이제는 새로 가게를 여는 자영업자가 거의 없어 상황이 안 좋다"며 "중고 물품 판매도 어려워 새 제품만 팔아야 할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고를 찾는 손님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이씨 역시 지난해 직원 2명을 떠나보내야 했다.
경기 침체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에 내몰리면서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1980년대 황학동 중앙시장 뒤에 자리 잡은 주방·가구거리는 폐업한 가게에서 나온 가구·집기들을 사들여 새롭게 창업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중고로 판매하는 이른바 '땡처리 시장'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폐업은 늘고, 신규 창업은 줄면서 중고 물품만 계속 쌓여가고 있다.
이날 찾은 황학동 주방·가구거리는 가게 앞 천막 천장에 닿을 듯 쌓인 그릇, 싱크대, 가스레인지 등 중고 주방용품들로 가득했다. 좁은 골목에 자리한 작은 주방집기 가게에선 주인이 흰 비닐에 포장된 중고 제품들 사이에 조용히 앉아 물건을 옮기는 사람만 멍하니 바라봤다. 거리엔 물건을 사러 온 사람보다 물건을 팔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황학동에서 40년째 주방가전을 판매하는 박모씨(71)는 "경기가 안 좋으니 이전엔 10명이었으나, 요즘엔 1명이 온다"며 "어쩌다 한 번씩 중고 물건을 팔겠다고 문의하는 사람들만 있지, 실제 팔러 오는 사람도 줄어 물건을 떼다 가져다주는 중간 상인들도 공치는 날이 많다"고 전했다.
20년째 중고 주방가전을 판매하는 70대 A씨 역시 중고 물품이 쌓여 더 이상 물품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는 "중고 가전을 사 가는 사람이 너무 없어 새로운 물품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있다"며 "중고 팔아서 밥 벌어 먹고살기도 어려워 이제는 그만할까 싶다"고 하소연했다.
자영업자 발길이 이어지던 황학동에 불황이 닥친 것은 신규 창업 대신 폐업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을 접고 폐업 신고한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으로 전년(86만7292명) 대비 11만9195명 증가했다. 지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 역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올해 자영업자 수는 563만6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854만4000명)의 19.7%에 그쳤다. 자영업자 비중이 2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체력이 많이 소진된 측면이 있다"며 "특히 자영업자 비중이 감소하면서 고용 없는 자영업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새 출발을 꿈꾸는 자영업자 발길이 이어지던 황학동에서 문을 닫는 가게들도 하나둘 늘고 있다. 20년째 식품기계 가게를 이어가고 있는 이모씨(55)는 "경기가 어려우니 중고 물품을 사러 오지도 않고 팔러 오지도 않아 코로나19 직후보다 오히려 매출이 더 떨어졌다"며 "주변에 폐업한 사람도 많은데 상황이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잇따라 무너지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들이 버틸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사업 의지가 있음에도 자금조달이 어려운 사업장에 대해선 '체불임금' 지원금 등 선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상가임대료 등에 대해 지원해 주거나, 임대료 인상을 막는 대책도 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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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fnnews.com 장유하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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