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은 왜 14년 간 스크린에 돌아오지 못했을까...데뷔 2년만에 꺼진 스포트라이트

당신이 잘 몰랐던 장항준 감독<1>
장항준 감독은 ‘라이터를 켜라’(2002)로 장편영화 연출 데뷔를 했다. 박정우 작가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였다. 장 감독은 당초 ‘라이터를 켜라’의 메가폰 잡는 것을 원치않았다. ‘박봉곤 가출 사건’(1996)의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이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밑그림으로 데뷔작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당시 야심차게 준비 중이던 시나리오는 진척이 더뎠다. 장 감독은 ‘라이터를 켜라’를 마냥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작가의 시나리오라는 거부감을 딛고 연출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라이터를 켜라’는 원래 김상진 감독이 욕심내던 시나리오였다. ’주유소 습격사건’(1999)과 ’신라의 달밤’(2001)으로 기세를 이어가던 흥행 감독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 다른 사정이 생기면서 메가폰은 장 감독에게 넘어갔다. 장 감독으로서는 행운이었다.

‘박봉곤 가출 사건’으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후 6년 만의 감독 데뷔였다. 1999년 크랭크인을 눈앞에 두고 데뷔작 제작이 무산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장 감독으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일이었다.
장 감독은 원래 영화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그는 1989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1992년 복학한 후 그는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을 목표로 글을 썼다. 1994년 졸업 후 선배의 소개로 방송국에서 일하게 됐고,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항로는 예상치 못 했던 변수로 바뀌기 마련이다. 장 감독의 20대가 그랬다. 연극과 입학 동기인 장진 감독이 의도치 않게 장 감독의 삶을 흔들었다. 친구 사이였던 20대 두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장항준 감독은 어떻게 영화라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됐을까.
함께 방송작가로 일했던 대학 동기

장진 감독은 1993년 현역병으로 군생활을 마친 후 대학 교정으로 돌아왔다. 장진 감독은 장항준 감독을 만나고 조금은 놀랐다. 신춘문예를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듣고서다. 장진 감독은 1994년 재학 중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됐다. SBS 예능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의 방송작가 일이었다. 장항준 감독이 방송작가로 함께 일했다.
1994년 연말 ‘좋은 친구들’ 관계자들의 회식 자리였다. 장진 감독은 생각지 못 한 연락을 받았다. 1995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발표될 신춘문예 당선자 명단에 들었다는 소식이었다. 희곡부문이었다. ‘천호동 구사거리’라는 제목의 희곡으로 정식 등단을 하게 된 거다. 함께 회식을 하다 장진 감독의 당선을 알게 된 장항준 감독은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더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분야에서 친구가 먼저 성취를 이뤘으니 좌절감을 느낄 만도 했다.

장항준 감독은 회식 다음날 방송작가 일을 바로 그만뒀다.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분야는 바뀌었다. 희곡 대신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또 일어났다. 장진 감독이 ‘개 같은 날의 오후’(1995)로 명함에 시나리오 작가라는 명칭을 추가하게 된 것이다. 장항준 감독에겐 강력한 자극제 같은 일들이 잇따랐던 셈이다.

장항준 감독은 몇몇 영화사를 전전하다 장진 감독보다 1년 늦게 시나리오 ‘박봉곤 가출 사건’을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전업주부 박봉곤(심혜진)이 어린 시절 꿈인 가수가 되기 위해 집을 나갔다가 겪게 되는 일을 웃음으로 전하는 영화였다. 장 감독은 ‘박봉곤 가출 사건’으로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 부문 후보가 됐다. 20대 후반 신인 작가로서는 흔치 않은 성취였다. 장 감독은 곧바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장진 감독은 ‘기막힌 사내들’(1998)을 시작으로 ‘간첩 리철진’(1999), ‘킬러들의 수다’(2001)를 잇달아 연출하며 장항준 감독보다 훌쩍 앞서갔다.
두 번째 영화 ‘불어라 봄바람’을 만들긴 했지만

장 감독은 ‘박봉곤 가출 사건’을 발판 삼아 장편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또래 영화인들에 비하면 비교적 순탄한 출발이었다.
장 감독은 연출 데뷔작 ‘라이터를 켜라’ 이후 곧바로 후속작을 만들었다. ‘불어라 봄바람’(2003)이었다. ‘라이터를 켜라’를 개봉한 후 1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었다. 장 감독이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불어라 봄바람’은 ‘라이터를 켜라’ 후반 작업을 할 때 떠오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초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 여러 커플들의 사연을 담으려고 했다. 남자 교사와 조금 문란한 여고생, 택배기사와 외로운 부잣집 여인, 소설가와 다방 아가씨, 미용사와 고독한 소설가 등이 주인공이었다. 여러 커플들의 개별적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는 구조로 이뤄진 영화였다.
시나리오 작업이 끝난 후 출연이 결정된 한 배우가 자신의 비중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다방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소설가 역할을 맡은 배우였다. 시나리오 수정이 이어졌고, 영화는 다방 아가씨와 소설가가 스크린 중심을 차지하는 걸로 변모했다. 미국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1997)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정작 비중을 늘려달라 했던 배우는 출연을 중도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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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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