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드라마 6편, 영화 2편.. 전성기에 돌연 미국으로 잠적해버린 최명길 라이벌

1980년대의 눈부신 스타, 최선아

1980년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깊은 눈빛과 청초한 분위기로 사랑받은 배우가 있다. 지금은 얼굴을 보기 힘들어진 이름, 최선아.

컬러렌즈도 없던 시절, 신비로운 갈색 눈동자와 또렷한 이목구비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그는 당대의 대표 미녀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데뷔는 고교 재학 중이던 1978년 영화 <당신만을 사랑해>. 신인 발굴에 능했던 문여송 감독의 눈에 띄어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문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1983년 <사랑 만들기>를 비롯해 1980년대 중반까지 그의 작품 여섯 편에 연이어 출연하며 주연으로 자리잡았다.

‘캔디 캔디’, ‘내 이름은 마야’, ‘짧은 포옹 긴 이별’, ‘입을 연 석류’ 등 주로 20대 청춘의 사랑을 그린 작품에서 활약하며 관객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최명길과 함께 1985년을 주름잡은 '두 여배우'

최선아는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활약했다.

특히 1985년 KBS 드라마 <꽃반지>에서 주연 연분 역으로 출연하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최명길

그해는 또 한 명의 배우, MBC의 최명길과 함께 '최씨 여배우 투톱'으로 불리던 시기였다.

두 사람 모두 1962년생으로, 같은 해에 각각 MBC와 KBS의 대표 주연급 배우로 떠올랐다.

외모, 연기력, 인기도 모두에서 치열한 비교 대상이었다.

최선아
최명길

최명길이 198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먼저 TV 부문 신인 연기상을 받았고, 최선아가 1986년 드라마 꽃반지로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기상을 받으며 두 사람의 대결은 더욱 본격화되었다.

최선아

1986년 한 해에만 KBS 드라마 여섯 편과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낸 최선아는, 그러나 이듬해 돌연 활동을 멈춘다.

전성기 끝에 찾아온 사랑, 그리고 미국행

1987년 드라마 <사무국>을 끝으로 최선아는 연기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듬해인 1988년, 그는 재미교포 무도인 이원익 씨와 결혼해 조용히 미국으로 떠난다.

당시 이원익 씨는 특공무술을 창시하고 세계특공무술연맹을 이끄는 인물이었고, 미국에서도 잘 알려진 무술가 겸 사업가였다.

최선아 근황

최선아는 인터뷰에서 “나를 보기 위해 매주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던 그 사람의 진심이 보였다”고 말하며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 오스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수백 명의 제자들이 레드카펫을 깔고 장미꽃을 들고 환영했다는 에피소드는 여전히 회자될 정도다.

연예계 복귀 없는, 조용한 제2의 인생

미국에서 두 아들을 낳고, 연예인이라는 이름 대신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35년.

다시 한번 카메라 앞에 선 건 남편 이원익 회장과 함께한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영화 제작자로서의 계획도 언급했지만, 배우로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지금의 시간에 충실하고 싶다”는 말처럼, 그는 여전히 과거보다 현재를 더 소중히 여긴다.

활동을 멈췄던 해와 동갑내기 최명길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약 중이기에, 그 선택이 더 인상 깊게 다가온다. 하지만 최선아는 후회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스승의 곁을 지키는 '대모'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우’라는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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