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게만 느껴지던 F1이 대중과 한 발 가까워지기까지, 그 뒤에는 윤재수 해설위원이 있었다.

윤재수
깊은 애정으로 꾸준히 F1의 세계를 대중에 알려온 이. 블로그, 유튜브, 트위터 같은 SNS부터 TV 방송사와 OTT 플랫폼까지 그의 목소리가 닿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
· 쿠팡플레이 F1 해설위원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카레이싱, 특히 F1의 불모지로 여겨졌다. F1 드라이버도 없고, 저변도 탄탄하지 않은 한국에서 F1을 논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윤재수 해설위원은 그 몇 안 되는 국내 F1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해박한 지식과 명쾌한 설명력 덕에 모터스포츠 팬 사이에서는 ‘걸어다니는 F1 백과사전’으로 통한다.
F1 시장의 전반에 관해 묻기 위해 그를 만났다. “어떤 계기로 해설위원이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F1의 역사부터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는 이제 어쩌면 소수의 관심사에 머물지 않을지 모른다. 최근 국내에서도 F1을 향한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F1에 관한 콘텐츠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대중의 관심이 확대되었음을 체감하나?
실제로 F1 관련 콘텐츠가 F1에 대한 많은 이의 관심을 촉발했다고 느낀다. 특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F1, 본능의 질주]는 국내 팬층을 최소 5배, 많게는 10배까지 확장시킨 결정적 계기로 보인다. 여기에 지난해 개봉한 영화 [F1 더 무비]가 또 한 번 불을 지피며 팬층을 추가로 5배 가까이 키운 듯하다.
사실 [F1 더 무비]는 한국에서 흥행할 조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영화였다. 국내에서 자동차 영화가 흥행한 사례가 드문 데다, 한국은 F1 드라이버도 없고 현재 F1 그랑프리를 개최하지도 않는 국가다. 그래서 [F1 더 무비] 특별 프로모션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F1을 처음 접했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미국과 중국에 이어 한국은 관객 수 3위를 차지했다. F1팀의 메인 본부가 밀집한 영국과 F1 드라이버를 보유한 일본보다 훨씬 많은 관객 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성과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국내 F1 팬들의 포용적인 태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팬들에게 배타적인 서양과 달리, 한국 팬들은 입문자가 던지는 기본적인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하고 알려 준다. 덕분에 F1 저변이 얕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콘텐츠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콘텐츠를 통해 F1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 자연스럽게 팬덤으로 흡수된 데에도 이런 문화가 한몫했다고 본다. 가벼운 관심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애정으로 이어지려면, 기존 팬들이 새로 유입된 이들을 수용하고 이끌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평소 개인 방송을 할 때도 신규 팬 유입을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알려 주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건 곧 진입장벽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그렇다. F1은 기술, 규정, 전략 등 복잡한 요소가 많지만 국내엔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는 자료나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오랜 기간 F1 블로그를 운영하며 느낀 점은, 방문자들이 남긴 질문이 대부분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라는 거다. 처음엔 질문 하나하나에 답변했지만, 비슷한 질문이 반복되면서 개별적으로 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F1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본 개념을 정리해 블로그에 특집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랑프리 블랙북] 시리즈를 출간하게 되었다.
Info. 입문자를 위한 F1 영화

F1을 소재로 한 영화는 여럿이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러시: 더 라이벌]이다. 영화는 1970년대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실제 두 F1 드라이버, 제임스 헌트(James Hunt)와 니키 라우다(Niki Lauda)의 라이벌 관계를 그렸다. 고증이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F1의 본질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하다. 극한의 중력가속도 속에서 한계를 시험하고 프런티어를 탐험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특히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우린 살아 있음을 느낀다(The closer you are to death, the more alive you feel)”라는 제임스 헌트(크리스 헴스워스 분)의 대사를 통해 자유롭고 틀에 얽매이지 않은 F1의 정신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시간을 들여 블로그까지 운영하게 만든 F1의 매력은 무엇인가?
수집가적 면모랄까. 개인적으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편이다. F1은 다른 모터스포츠는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지녔다. 19세기에 태동한 초창기 모터스포츠의 본질, 즉 ‘누가 제일 좋은 차를 만들어 경주에 나서고, 그 기록으로 차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F1이다.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F1과 비슷한 레이싱 대회를 새로 만든다 해도, 같은 무게와 가치를 지니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블로거로 시작해 현재는 해설위원이 되었다
여러 우연이 겹쳤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전에는 게임업계에서 오래 생활 했다. 하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영암에서 처음 코리아 그랑프리가 개최됐다. 그랑프리 개최 50일을 앞두고 영암 서킷에서 레드불 팀이 실제 트랙 주행을 선보이는 행사가 열렸다. 당시 F1 파워 블로거로 활동하던 덕분에 초청을 받았다. 현장에는 당시 중계권을 가진 MBC 스포츠플러스 중계진도 왔고, 그 가운데 F1 캐스터로 오래 활동한 이명진 캐스터가 있었다. 트위터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행사 당일 만찬 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며 저녁 늦게까지 대화를 나눴다. 그때 전라남도가 KAVO(카보)라는 프로모터를 설립했는데,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F1 해설을 맡고 있던 분들이 그곳 이사진으로 가게 되면서 갑자기 해설위원 자리에 공백이 생긴 상황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한 20년쯤 뒤에는 F1 해설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진 캐스터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중계 해설을 한번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선수 출신도, 심지어 업계 관계자도 아닌 사람이 스포츠 생중계 해설을 맡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상황이 긴박했던 터라 PD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곧바로 생방송에 투입됐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해설자의 길로 들어섰다.
성공한 덕후가 된 셈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나?
여러 방송사를 거쳐 현재는 쿠팡플레이에서 활동 중인데, 지금이 가장 만족스럽다. 이렇게까지 F1에 진심인 곳은 처음 본다. 중계권이 있으니 방송을 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F1을 국내에 제대로 보급하겠다는 인식을 모든 관계자가 공유하고 있다. 보통 해설자는 객원으로 왔다 가는 역할에 그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쿠팡플레이는 내 이야기를 중심으로 방송을 구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하다. 의견을 내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현장 생중계다. 흔히 스튜디오 중계만 생각하지만 실제 그랑프리 현장에 가보면 완전히 다르다. 쿠팡플레이에서 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덕분에 2023년부터 현장 생중계를 이어오고 있다. 현장 생중계가 있는 날이면 하루에 40km 가까이 걷는다. 촬영을 위해 서킷을 걷는 거리는 5km 남짓이지만 중간중간 이동할 일이 많아 실제로는 훨씬 많은 거리를 오가는 셈이다. 솔직히 힘들다.(웃음) 그렇지만 재밌다. 그래서 한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이면 못 했을 거다.
현장은 무엇이 다른가?
우선 F1 머신의 엔진 사운드부터 다르다. 귀를 울리는 굉음과 진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여러 관계자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현지 서킷에서 중계하며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례로 2025 영국 그랑프리 생중계 때는 한국계 최초 F1 드라이버 한세용 선수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섭외부터 일정 조율, 이동까지 품이 정말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이 밖에도 개러지 투어, 카 프레젠테이션, 드라이버 인터뷰 등 현장에서만 가능한 콘텐츠가 있기에 이야기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실제와 가장 가까운 F1 체험, 택시 타임

F1의 감각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제대로 느끼려면 실제 현장에 가봐야 하고, 나아가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택시 타임’이다. 전문 드라이버의 옆자리에 탑승해 극한의 속도감과 중력가속도(G-포스)를 체험하는 이벤트다. 이때 “G-포스를 제대로 느끼게 해달라”고 요청해보자.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속 300km에 이르는 코너링에서 몸무게의 최대 5배에 달하는 압력이 몸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국내 모터스포츠 이벤트의 경우, 티켓을 구매해 참가하면 티켓 가격 외 추가 비용 없이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한 단계 더 깊은 경험을 원한다면, 프랑스의 포뮬러 레이싱 학교(Winfiled Racing School)를 눈여겨보자. 이곳에서는 클로즈드 휠이 아닌 오픈 휠 머신에 탑승해 볼 수 있다.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체험은 평균 3시간 동안 진행된다. 비용은 450유로(약 76만원)다.
ㅣ 덴 매거진 2026년 3월호
에디터 조윤주(yunjj@mcircle.biz)
사진 김덕창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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