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폐광지역 리포트] 26. 격렬했던 3·3 투쟁

김정호 2023. 8.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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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는 광산 무너지는 경제…생계 걸고 터전 지켰다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시행
탄광촌 직격탄 인구 12만→5만명
태백·정선주민 대책 촉구 공동행동
상가철시·삭발·집회 등 대정부투쟁
당시 도의원·군의원 사퇴서 제출도
경제활성 방안·대체산업 논의 활발
1995년 ‘3·3합의’ 5개 조항 포함
폐특법 제정 1998년 강원랜드 설립
▲ 1 고한·사북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나와 정부의 지역 살리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고한·사북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갑작스럽게 시작되면서 강원도내 탄광촌 지역에서는 공동화가 일어났다.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기 전인 1987년 12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던 태백의 경우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폐광이 이뤄지면서 단번에 인구가 5만 명대까지 떨어지며 시 단위 지역 중 전국에서 가장 적은 인구를 가진 곳이 돼 버렸다.

석탄산업합리화는 석탄산업이 지역 경제 전반을 지탱해 오고 있던 탄광촌에 직격탄을 날렸다.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이 지역을 떠나갔고 지역경제는 무너졌다. 지역 곳곳에는 빈집만이 남았고 사람들을 계속 지역을 떠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당시 지역실정과 경제적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으로 탄광촌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그렇게 하나 둘 씩 탄광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더 이상 이를 지켜만 볼 수 없다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1992년 8월 고한읍 문화원에서 열린 지역발전 대토론회에서 송계호 당시 정선군의원이 사회를 맡고 있다.

1993년 태백시 철암과 동점지역 주민들이 나섰다. 이들은 폐광 유보와 대체 산업을 촉구하며 시위를 전개했다. 5월 함태탄광마저 폐광하자 태백시민 전체가 시민궐기에 나서기에 이르렀고 결국 같은 해 7월에는 태백시 중앙로에 1만 명이 참여하는 궐기대회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태백 이외의 다른 폐광지역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동원탄좌와 삼척탄좌 등 국내 최대 규모의 민영탄광이 있던 정선군 사북·고한 지역도 예전만큼의 생산량을 유지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다른 지역처럼 동원탄좌나 삼척탄좌도 문을 닫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지역 곳곳에 스며들었다.

탄광촌의 위기는 현실이 됐다. 정선 지역도 1994년 12월 7일 고한·사북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대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폐광으로 무너지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역주민이 주도로 상가 철시, 자녀 학교등교 거부, 삭발·단식투쟁을 이어나갔다. 1995년 2월부터 공추위를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대정부투쟁은 더욱 거세졌다. 그 현장에는 당시 정선군의원을 맡고 있던 송계호 사북신협 이사장과 강원도의원을 맡고 있던 성희직 정선진폐상담소장도 있었다. 이들은 지역을 살리기 위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지역 이장 및 의용소방대원들과 함께 선출직 사퇴서를 제출하는 등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정선이라는 지역과 탄광이 단순히 자신의 지역구를 넘어 자신이 일했고 지금도 살아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송계호 이사장과 성희직 소장은 모두 당시 탄광에서 근무했던 광부 출신이다. 송계호 이사장의 경우 정선에서 자라 19살 때부터 광부로 일하기 시작해 사북에 위치한 동원탄좌에서 일했다. 성희직 소장도 1986년 정선군 고한읍에 위치한 삼척탄좌에 입사해 노동운동과 관련돼 해고되기 전까지 약 5년간 광부로 일했다.

▲ 송계호 이사장

3·3 투쟁 당시를 회상하며 송계호 이사장은 “1991년에 군의원이 된 이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무너진 지역을 살리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세웠지만 이게 지역 차원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상가철시, 등교거부, 삭발 투쟁까지 했음에도 정부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고 지역이 망가지는데 선출직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의미로 결국 사퇴서까지 제출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성희직 소장도 “당시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주민들이 나서서 투쟁을 이어나갔고 나와 송계호 의원 등을 비롯한 대표자를 구성해 당시 통상산업부 장관실을 찾아가 대책을 촉구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내려왔다”며 “의원직 사퇴는 정치적으로 우리의 결의를 보여줄 수 있는 선언적 의미의 행동이자 마지막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제2의 사북사태를 우려한 정부가 1995년 3월3일 정선 사북읍사무소에서 이른바 ‘3·3 합의’ 5개 조항을 합의했다.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송계호 이사장은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정선이라는 지역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송 이사장은 “당시 합의 과정에서 추진위원들 대부분이 농공단지나 탄광 적정생산량 유지 등만 제시했다”며 “이때 내가 카지노를 아이디어로 냈는데 이게 현행법으로는 안 된다고 하길래 그럼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 차선책으로 취급받던 카지노는 1996년 4월 시행령이 공포된 폐특법에 근거해 대체산업 일환으로 떠올랐다. 결국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가 1998년 설립됐다.

▲ 성희직 소장

반면 성희직 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자신이 도의원으로 있을 당시 정선 지역의 민영탄광이 생산량을 줄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폐광 전에 미리 대응할 수 있었던 점을 꼽았다. 성 소장은 “당시 도의원으로 있다 보니 강원도를 통해 당시 국내 최대 민영탄광인 동원탄좌와 2위 탄광인 삼척탄좌가 여러 해에 걸쳐 석탄 생산량을 감산하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미 태백과 영월의 경우 폐광으로 인한 피해가 커서 두 탄광이 문을 닫게 되면 정선도 같은 처지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주민들과 함께 토론회, 궐기대회 등 투쟁을 통해 3·3 합의라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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