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형제경영 이면에 가려진 세아그룹 오너 3세들의 일탈

이석 기자 2024. 10. 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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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ㆍ이주성 사장이 경영 전면 나서면서 계열 분리설도 가시권에
양대 지주회사 체제 구축 과정에서 불거진 편법적인 사익추구 논란은 “부담”

(시사저널=이석 기자)

세아그룹은 지난 30년간 형제경영에 이어 사촌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그룹의 모태 회사는 고(故) 이종덕 창업주가 1960년 부산에 설립한 강관 제조업체 부산철관공업(현 세아제강)이다. 경제 개발에 따른 강관 수요 증가와 수출 호조로 최근까지 고속성장을 이어왔다. 세아그룹은 2017년 동국제강을 제치고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이어 철강 업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형제경영이 시작된 것은 1995년이다. 이 창업주의 장남과 차남인 고(故) 이운형 회장과 이순형 회장이 각각 회장과 부회장에 취임하면서다. 지금의 그룹 체제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 2013년 이 회장이 불의의 사고로 별세하자 이순형 당시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했다. 이 회장은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일방통행식' 경영을 하지 않았다. 중요 사업을 추진할 때는 반드시 가족 협의를 거치도록 한 창업주의 유지 때문이었다.

유성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감시국장이 2023년 9월25일 기업집단 '세아' 계열회사들의 부당내부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32억원 부과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성ㆍ이주성 승진으로 3세 경영 본격화 

2018년에는 양대 지주회사(세아홀딩스·세아제강지주) 체제로 전환됐다. 장남 가문이 세아홀딩스를 통해 특수강 회사인 세아베스틸과 세아창원특수강 등을 거느리고, 차남 가문이 세아제강지주-세아제강으로 이어지는 강관 사업을 맡는 느슨한 연합체 형태였다.

세아그룹은 2022년 고(故) 이운형 회장의 장남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부사장과 이순형 회장의 장남인 이주성 세아제강지주 부사장을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들은 1978년생으로 동갑내기다. 그룹 경영에 합류한 시점도 2008년과 2009년으로 비슷하다. 이후 2011년 이사→2013년 상무→2015년 전무→2018년 부사장으로 나란히 승진했다. 이번 사장 승진으로 세아그룹은 오너 2세들의 형제경영에 이어 3세들의 사촌경영에 돌입한 것으로 재계는 평가했다.

그동안 세아그룹을 두고 계열분리 가능성이 재계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세아그룹의 동일인은 이순형 회장이지만, 경영은 장남과 차남 가문이 특수강과 강관 사업을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세아그룹이 장남과 차남 가문으로 계열분리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3세 체제에 들어서면서 세아그룹 오너 일가의 지분 황금비율이 많이 희석된 상태다. 이전까지는 고(故) 이운형 회장과 이순형 회장, 이태성 사장, 이주성 사장 등이 세아홀딩스 지분을 17%씩 나눠 가졌다. 2013년 이운형 회장이 작고하면서 이 균형이 깨졌다. 이태성 사장이 상속세 재원 마련 차원에서 세아제강지주 및 계열사 지분을 대부분 처분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 지분 황금비율 깨진 지 오래

현재 이태성 사장은 세아홀딩스의 지분 35.12%만 보유하고 있다. 이 사장의 개인회사인 에이치피피(HPP)가 보유한 세아홀딩스 지분 9.38%를 더하면 전체 지분율은 44.5%에 이른다. 작은아버지인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사장이 보유한 지분(17.95%)의 2.5배 수준이다. 이순형 회장이 지난 4월 세아홀딩스 지분 4.65%를 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 이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이주성 사장은 세아제강지주 지분 21.6%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이순형 회장(12.56%)과 오너 일가 개인회사인 에이팩인베스터스(22.82%)의 지분까지 더할 경우 57%에 이른다. 지분 구조상으로만 보면 두 가문이 언제 분리돼도 이상하지 않은 구조인 것이다.

재계에서는 세아베스틸이 지난해 3월 물적분할을 단행한 것에 주목한다. 당시 세아베스틸은 특수강 제조 부문을 사업회사인 세아베스틸로 떼어내고, 투자 부문을 세아베스틸지주로 중간지주사화했다. 이에 따라 세아홀딩스 지배구조는 기존의 '세아홀딩스→세아베스틸→세아창원특수강'에서 '세아홀딩스→세아베스틸지주→세아베스틸·세아창원특수강'으로 바뀌었다. 이미 지주회사인 세아홀딩스가 있는 와중에 세아베스틸지주라는 중간지주사를 또 설립한 것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두 집안 간 지분 구조가 남아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요컨대 세아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이태성 사장이다. 하지만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사장도 각각 세아홀딩스 지분 8.66%(현재 4.01%)와 17.95%를 쥐고 있었다. 계열분리를 추진하려면 이태성 사장이 이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구책 차원에서 중간지주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세아제강지주가 2016년 말 세아 대표상표권의 50%를 세아홀딩스에 양도한 것도 계열분리의 연장선에서 보고 있다. 이전까지 세아그룹의 대표상표권은 세아제강(현 세아제강지주)이 보유하고 있었다. 세아제강과 세아베스틸, 세아창원특수강 등 13개 계열사는 세아제강지주에만 상표권 사용료를 지급했다. 하지만 세아제강지주가 대표상표권 일부를 양도하면서 사업기회 유용 의혹이 일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말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대의 한 관계자는 "세아제강지주는 계열사들로부터 안정적인 상표권 사용료를 수취할 기회를 이태성 사장이 최대주주인 세아홀딩스에 양도해 손실을 입힌 의혹이 있다"면서 "세아제강지주 이사회에 공문을 보내고 공정위에도 조사를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가 공정위 조사 요청이라는 카드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태성·이주성 사장이 경영권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계열사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 스테인리스 강관을 계열사인 씨티씨(CTC)에 헐값에 판매해 부당 이득을 안긴 혐의로 3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세아창원특수강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이태성 사장은 2014년 경영컨설팅사인 HPP를 설립했고, 이듬해 이 회사를 통해 CTC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계열사의 암묵적인 지원이 있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세아베스틸은 당시 CTC를 인수할 수 있는 기회를 HPP에 양보했다"면서 "(오너 회사인) HPP가 사업활동을 통해 현금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공정위, 과징금 철퇴 내려

이후부터 CTC의 수익 개선을 위해 스테인리스 강관을 경쟁사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판매했다. 이전부터 CTC와 거래가 있던 세아창원특수강의 영업이익률은 20~30% 수준이었다. 하지만 HPP 인수 이후 영업이익률이 -5%로 감소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CTC의 주요 생산제품인 반도체용 강관의 경우 1원의 단가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면서 "CTC는 세아창원특수강으로부터 정상가 대비 600원(kg) 더 낮은 가격에 제공받으면서 단기간에 업계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CTC가 오너 일가가 소유한 개인회사의 자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공정위가 확보한 세아창원특수강 내부 문건에는 대표이사 지시사항으로 'CTC는 적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표시돼 있었다. 덕분에 HPP의 매출은 해마다 증가했고, 현재 세아홀딩스의 지분 9.38%를 보유한 2대 주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정위가 정작 사익편취 수혜자인 이태성 사장 등 총수 일가는 고발하지 않으면서 뒷말이 나왔다.

이순형 회장과 이주성 사장의 행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100% 지분을 보유한 에이팩인베스터스의 경우 현재 세아제강지주 지분 22.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내부거래로 몸집을 키운 세대에셋과 해덕스틸 등을 잇달아 흡수하면서 몸집을 키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세아그룹은 공정위의 과징금 철퇴를 맞기도 했다. 이 사장 역시 이들 기업의 유상감자를 통해 마련한 현금으로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었다. 이런 행보는 향후 지분이 승계되고, 3세 경영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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