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들어 금융당국의 정기검사 대상에 신용협동조합이 올랐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대전 소재 신협중앙회를 상대로 현장 검사를 마쳤다. 대선 이후 검사 강도는 세졌고, 기간도 늘었다. 연체율을 낮추고 금융사고와 내부통제에 엄정 대응을 강조한 이 대통령의 의지가 이번 검사를 시발점으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1금융권도 아닌 상호금융권(농협·새마을금고·신협·수협·산림조합), 이 중에서 3위 신협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농협과 새마을금고는 수년째 '매'를 맞았다. 신협은 급격한 순손실 등 수익성 악화, 끊이지 않는 각종 금융사고와 비위, 쇄신책의 부재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국 검사를 받은 지 1년 만에 또다시 피감기관이 된 이유는 분명했다.
자산 규모 153조원, 지역 조합 865개, 670만명 조합원, 1300만명 고객과 거래하는 신협을 향한 지적이다. 설립 65년의 신협 실적이 뒷걸음질 치면서다. 자연스레 수장의 책임론이 부상한다. 신협 최초의 직선제로 선출, 8년째 조직을 이끄는 김윤식 중앙회장에게까지 시선이 쏠린다.
물론 김 회장의 치적은 높이 살 만하다. 기업인 출신의 그는 2018년 신협중앙회장에 선임, 2022년 연임하며 지역과 서민을 대표하는 금융기관장으로서 포용·나눔금융을 실천하고 전국구 조직으로 키워 조합원 혜택을 늘린 데 이어 여러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신협연합회장에 재차 추대받았고 세계신협협의회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 신협의 가치, 슬로건 '평생 어부바'를 알리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실을 되돌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반기별 실적을 공표하는 특성상 최신 실적은 작년 말 기준으로, 전국 신협의 합산 순손실은 3419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한 2008년에도 순익을 냈던 신협이 지난해 '마이너스' 성적을 받았다. 지역 조합 10곳 중 3곳은 적자를 기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태 여파가 가장 큰 이유다. 시중은행 대비 부동산PF 취급이 쉬웠던 지역 조합들은 대거 고위험 상품을 팔았고, 시장 침체가 이어지자 부실채권이 불어났다. 대응 여력이 미비한 지역 신협은 직격탄을 맞았다. 부실채권은 작년 7조5600억여원으로 전년보다 57%(2조7400억여원) 늘어났다.
연쇄적으로 전체 연체율은 6%를 초과했다. 일부 조합 연체율은 17~18%에 이른다. 관련 지표인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전년에 비해 2.6%p 올라 7%대를 나타냈다. 모두 초유의 상황이다. 자산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김 회장은 전담팀을 꾸려 연체율 조정에 나설 뜻을 밝혔지만 목표치 달성은 요원하다. 올해도 영업 환경은 우호적이지 않다. 대부업에 국한되지 않는, 부실채권 정리에 특화된 자산관리 전문 자회사가 없는 한계에 직면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금융사고는 신협의 불완전한 내부통제에 기인한다. 특히 지역 조합의 실태가 심각하다. 조합 이사장의 전횡은 여전한 데다 횡령, 갑질, 성비위, 직장 내 괴롭힘, 금품수수, 상품권 강매, 대출비리, 개인정보 유출 등 혐의도 다양하다.
중앙회는 이들 조합의 검사·감독권을 갖고 있다. 내규상 2년에 1회 지역 조합을 검사하는데 올해 1~5월 제재가 통보된 건수는 68건으로 집계된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 매달 13건이 넘는 사고가 잇따랐다. 더욱 문제는 얕은 징계 수위다.
올해 182명의 임직원이 징계를 받았지만 정직, 징계면직, 직무 정지 등 중징계 인원은 17명뿐이다. 징계 대상의 71%는 견책 처분에 그쳤다. 당국 고위 관계자는 "같은 지역 출신의 선후배로 묶인 조합들이라 사고가 발생해도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는다"라며 "상호금융권의 공통점이면서 태생적 한계이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더 철저한 감독이 이뤄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다 할 쇄신책도 보이지 않는다. 김 회장 행보는 대체로 사후약방문 격이었다. 일련의 사고들이 터진 후에야 지역본부를 쪼갠 직제 개편과 감독관 증원, 부실채권 매각, 부동산PF 사업장 정리 등에 나섰다.
신협이 선제적으로 채비할 기회는 있었다. 농협과 새마을금고가 집중포화를 맞을 당시 직관했을 뿐 신협은 스스로 개선점을 찾지 못했다. 김 회장은 당장 다른 기관들이 어떻게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도 신협의 체질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2년에 걸친 정부의 고강도 감사를 받고 지금도 쇄신안 달성률을 보고하는 새마을금고중앙회를 반면교사 삼아야한다.
△절대적 권한의 중앙회장 선출 제도를 연임제에서 단임제로 축소 △전국 동시 조합장(이사장) 선거로 투명성 제고 △중앙회장 포함 주요 임원의 책임을 명문화한 책무구조도 △수백 개 시나리오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고도화 △일정 규모 이상 조합의 외부 회계감사 △부동산담보물 소재 지역 조합의 무작위 대출 검토 시스템 등이다.
임기 말을 맞은 김 회장, 유종의 미를 거둘지는 하반기 성과에 달려있다. 수익성과 건전성을 높이고, 사고를 줄이는 것만이 고객 신뢰를 회복할 유일한 길이다.
신병근 금융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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