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프리킥. 어디까지 발전할까.

잠깐의 숨고름. 볼을 향한 집중력. 그리고 강력한 임팩트. 볼은 벽을 넘겨 휘어져 들어간다. 골키퍼는 몸을 날린다. 그러나 볼은 그의 손을 지나친다. 출렁. 이어지는 환호.

손흥민의 프리킥은 이제 찰나의 예술이 됐다.

유럽에서 손흥민은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었다. 함부르크와 레버쿠젠 그리고 토트넘에서 뛴 15시즌동안 그가 기록한 '직접 프리킥골'은 단 1골이었다. 2021년 8월 30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왓포드와의 홈경기였다. 강하게 감아찬 프리킥이 바운드된 후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레버쿠젠 시절이던 2014년 11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원정 경기에서 나왔던 프리킥골은 '직접 프리키커'로 나서 때린 골은 아니었다.

유럽 무대에서 손흥민은 프리킥을 찰 기회가 너무나 적었다. 독일 무대에서 직접 프리킥을 찬 횟수는 '제로'였다. 토트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토트넘에서의 10시즌동안 손흥민이 직접 프리키커로 나선 것은 13번에 불과했다.

동료들 때문이었다. 함부르크에서는 라파엘 판 더 파르트라는 확실한 프리키커가 있었다. 판 더 파르트는 자신의 커리어상 직접 프리킥으로 12골을 넣었다. 반면 루키 레벨이었던 손흥민은 직접 프리킥을 차기 힘들었다.

레버쿠젠에서도 전담 키커가 따로 있었다. 바로 하칸 찰하노글루였다. 그는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유명했다.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을 거쳐 AC밀란과 인테르에서 직접 프리킥으로 20골 이상을 넣었다. 역시 손흥민이 전담 키커로 나서기는 어려웠다.

토트넘으로 이적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티아 에릭센 그리고 해리 케인이 버티고 있었다. 둘은 전담 키커로 나서 프리킥을 도맡았다. 특히 에릭센의 킥은 정확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만 직접 프리킥으로 8골을 넣었다.

반면 케인은 프리킥에 있어서만큼은 '탐욕왕'이었다. 에릭센이 이적한 후 붙박이 프리키커로 계속 나섰다. 토트넘에서 직접 프리킥으로 56차례 슈팅을 때렸다.

그 중 골망을 흔든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케인은 프리킥 찬스가 나올 때마다 자기가 직접 차기를 원했다. 그의탐욕을 그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결국 손흥민의 프리킥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였다. 그는 차고 싶어도 찰 수 없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대표팀에서는 프리킥 찬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구자철과 기성용이 도맡아차던 전담 프리키커 자리를 꿰찼다. 날카로운 궤적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프리킥골은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2022년 6월. 2023년 3월 칠레와 콜롬비아를 상대로 환상 프리킥골을 넣었다. 이에 토트넘 팬들 사이에서도 케인 대신 손흥민을 프리키커로 놓아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실제로 두어차례 손흥민이 키커로 나서기도 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었다. 기준은 가혹했다. 두어차례 킥이 모두 실패했다. 토트넘 프리키커는 다시 케인으로 바뀌어다.

그래도 손흥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프리킥을 계속 가다듬었다. 2024년 2월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나온 프리킥골은 압권이었다. 기가 막히게 히어들어갔다. 팀을 4강으로 올려놓았다. 2025년 11월 대전에서 열린 볼리비아전에서의 프리킥골 역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에서 손흥민의 프리킥을 저지할 이는 더 이상 없다. 그에게 이제 프리킥은 ‘허락받아 차는 킥’이 아니다. ‘뺏어와야 하는 킥’도 아니다. 오직 그의 것이고, 그가 책임지는 킥이다. 손흥민의 발끝은 더이상 스피드와 공간을 파고드는 윙어의 무기만이 아니다. 게임의 흐름을 뒤집고, 경기장을 얼어붙게 만들다가 다시 폭발시키는 감각과 직관, 그리고 거듭된 연습이 만들어낸 예술적 필살기다.

미국 무대 첫 골은 프리킥이었다. FC달라스와의 경기에서 환상 프리킥골로 골망을 갈랐다. 미국 무대 첫 시즌 마지막 골도 프리킥이었다. 1-2로 지고 있던 밴쿠버전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은 환상 프리킥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끄고갔다.
유럽에서 단 1골에 머물렀던 직접 프리킥은 이제 그의 미국 무대에서 가장 치명적인 한 방으로 자리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묻혀 있던 능력이, 비로소 빛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손흥민의 프리킥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까.

그리고 그 프리킥의 궤적은, 다음에는 또 누구의 골망을 가를까.